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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le Oct 16. 2024

단 하나를 위한…

(8)

지금 점심 회식 상이 하나, 둘… 다섯 개가 붙어 있다. 

직장인들이 다 같이 모여 점심이든, 저녁이든, 술을 마실 때는 불문율이란 게 있다. 모르는 인간은 죽어도 모르지만 직장생활 좀 한 제대로 승진되는 케이스의 인간들은 다 아는 룰이다. 이름표가 자리에 붙지 않아도 상석은 제일 높은 상사팀이 앉는다. 상석은 상사의 취향에 따라 가운데 자리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가장 안 쪽 자리가 될 수도 있는데 이 기름집 상무 같은 경우는 안 쪽 자리를 좋아하고 우리 본사 사장 같이 본인 주목형은 가운데 자리를 선호한다. 첫 번째 중요한 룰 하나, 상사와 같은 테이블을 쓰는 인간들은 주로 다음번으로 높은 인간들이지만 특이점은 상사가 가장 아끼는 대리급 인사가 하나 정도 낀다. 왜냐. 아무리 대빵보다 밑이라 해도 높은 인간들만 모인 그 테이블에 부장이 반찬 리필 주문하고 밥 볶고, 고기 뒤집을 순 없으니까. 


상사에게서 멀어질수록 말단들의 테이블이다. 하지만 말단들도 한꺼번에 뭉쳐 있으면 눈치 없단 소리 듣는다. 말단 중 하나 둘씩은 상사의 테이블 사이에 위치해서 좌우의 테이블 상황을 긴밀히 파악하여 떨어지기 전에 반찬 리필, 물 대령, 조리가 필요한 경우 열과 성을 다하여 제대로 굽기 혹은 끓이기, 볶기 등을 담당해야 한다. 어차피 누구나 다 배고픈 시간이다. 일단 허기진 내 배를 채우다 보면 나는 영원히 말단이다. 배는 상사랑 있을 때는 한껏 채우는 게 아니다. 물론 좋은 한정식 집이나 고깃집을 가면 담당 아줌마가 수시로 와서 챙겨주지만 잊지 마라. 이 상사는 내 상사지 저 고깃집 아줌마의 상사가 아니다. 상사를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게 하지 않도록 아줌마와의 긴밀한 연락을 도모하는 것 마저도 모시는 자들의 몫인 것이다.  조금 더 쓸데없이 상세해 보자면, 반찬 떨어졌다고 상사 말씀 중이신데 목소리 드높여서 ‘아줌마, 여기요!!’ 이러면 안 된다. 상사는 내가 아줌마와 긴밀한 연통 중인 것을 눈 있으면 알아볼 것이다. 마치 야구 투수와 포수의 관계처럼 아줌마와 민첩하게 손 싸인, 눈짓, 입모양 만으로도 얼마든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밥집 아줌마들의 눈치는 국보급이다. 믿어도 된다.


“맞아요, 점심엔 너무 바쁘시니까… 여자라서가 아니라 제일 어린 제가 볶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기쁜 모양 밥을 볶겠다고 나서지만 사실 계산된 행동이다. 그 와중에 저 신임 경리는 진짜 눈치가 없다. 저 멀리 테이블에 앉아서 처음 만난 이 회사 말단들과 신이 나도 저렇게 신이 났을 수 없고, 저 테이블엔 밥을 벌써 두 번째 볶는 모양이다. 직장생활에서 상사가 제일 키워드란 것을 모르고 있다. 지금 동무 사귀러 온 게 아닌데 말이다… 


“에헤이, 그 밥을 왜 김 대리가 볶노, 손 다치면 우리 예산 프로그램 누가 해! 김 대리 손 떼고, 거기 흔해빠진 손. 안 부장 손이 볶아 보자.”


계산된 행동이었다고 말한 이유… 어차피 진심을 다해 먼저 나서면 충성스러운 진심은 접수되고 내 몸은 고생을 안 한다. 대한민국 아저씨들의 모순이란, 여자라서 이런저런 걸 해주길 은근 바라면서도 또 막상 여자가 나서면 여자가 그런 걸 하냐며 갑작스러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다.


“에헤이… 저 봐라… 아, 살짝 걱정된다이.”


배고픔에 날림 면접을 본 것이 볶음밥쯤 먹을 때 되니 슬슬 후회가 되는 듯 상무는 본인이 거의 단독으로 뽑은 새 경리 쪽을 기가 찬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정확히 꽂혀 있는 저 멀리 말단 테이블을 한 번 더 바라보는 순간 밥을 다 먹은 테이블 사람들에게 사이다를 한 잔씩 돌리겠다면서 병 사이다의 뒤통수를 소주 때리듯 팔꿈치로 콕콕 야무지게 다지고 있는 그녀가 눈에 너무 잘 들어왔다.


“점점 눈치를 줍겠지요….”


그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회생활 2년만 해봐도 생기는 인간 레이더. 어떤 인간들은 봄날의 싸리눈이 쌓이는 법 없듯 눈치가 아무리 해도 안 돋아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너도 나도 다 알고 있었다… 인사는 인간이 관장하는 일이라 때로 실수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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