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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신곡2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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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le Oct 19. 2024

05. 가라앉기를 기다려라, 무엇이 그토록 탁하였는지

(12)

“아씨! 너 문 안 열어? 이 한주!! 너도 거기 있지? 다 알고 있으니까 빨리 문열라고!! 내 친구 가만두라고!!!! 너 진짜 완전 사라지게 해버릴거야!!!”


한 시간 전...

야간 자율학습이 시작되는 종이 쳤다.

하루종일 윤조는 집중이 되지 않았다. 윤조가 내내 걱정하고 있는 것은 미나가 혹시 돈이 마련되지 않았다 생각해 무작정 도망을 간 건 아닌지, 혹은 다시 그 더러운 바닥으로 제발로 찾아 간 것은 아닌지... 집안이 망한 후 내내 병원 신세를 지던 미나의 엄마가 딸을 두고 팔자를 펴 보겠다고 20살이나 위인 영감의 재취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아 미나가 그 나이에 혼자 산다는 것은 공공연한 아이들 사이의 비밀이었다. 

너무 달라 가까워질 수 없다고 서로 생각했지만 윤조와 미나는 둘 다 중심에 끼지 못하고 겉도는 처지에 어쩌면 서로 가장 이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등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신이다. 학교수업에 기반이 되어 우열을 가리는 내신제는 아이들을 서로 경계하고 배척하도록 내몰게 된다. 아주 사소한 것에도 점수와 관련이 있으면 첨예하게 긴장하는 것이다. 


1학기 중간고사 시즌, 실습 점수가 들어가는 가사시간이었다. 가사선생은 가뜩이나 평소 예민한데 임신막달에 접어들어 거의 사람과 마녀를 오가는 중인 광포한 문 선생이었다. 비주류에 없어도 되는 과목을 가르친다는 자격지심은 그녀를 더욱 엄하고 까다로운 선생이 되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녀의 수업시간은 룰이 많았다.

자세가 구부정해서도, 소리를 내어서도, 선생이 말하는데 끊고 질문을 해도 회초리를 맞아야했다.


“이번 중간고사는말야, 이번 실습이 30퍼센트 반영되고 필기가 70퍼센트다. 그러니까 이 실습이 꽤 비중이 큰거 알겠지? 감점 요인은, 잘 들어라!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피 보면 빵점 처리다. 알겠냐? “


이런식이다.

그녀는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아이들을 우선은 윽박질러 놓고 보곤 했다. 방금 탈북한 북한 소녀들처럼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는 아이들을 한껏 몰아세운 후 그녀는 그 대단한 ‘떡국 만들기’ 실습에 돌입했다.


그리고 시작한지 5분도 되지 않아 조별 실습 중 무를 담당했던 윤조는 무를 썰다 엄지도 살짝 같이 썰게 된다. 아픈것은 둘째치고 아니, 윤조는 아픔따위는 느낄 여유가 없었다. 내신의 세계는 꼴랑 한 반 뿐인 여자 이과반 윤조의 반에서는 더욱 치열하다. 1점 차이로 수연에게 1등급을 내 줄 수도 있다는 것에 예민해진 윤조는 얼른 손을 썰자마자 마녀의 행방을  쫓았다. 다행히 마녀는 다른 조를 뒤지느라 등판을 보이고 있다. 그때였다. 


“이리 내. 미쳤냐? 일단 이걸로 꽁꽁 매고.... 이걸로 다시... 그러고 손을 앞치마 근처로 숨겨... 한 시간 동안 가능하겠어?”


얼른 피가 뚝뚝 흐르는 윤조의 엄지를 잡아채서 어디서 났는지 면으로 된 끈을 가져다 칭칭 동여 맨 후 그 위에 검은 비닐 봉지를 씌우고 있는 것은 미나였다.


“1등 뺏기면 너 집에서 아작나는거지? 

드럽게 아프겠다... 참을 수 있겠어?”


“...응... 고마워…”


손가락이 썩는듯 쑥쑥 아려왔지만 윤조는 참을 수 있었다.


“야! 1조, 잠깐!”


그럼 그렇지... 마녀가 그리 허술할 리 없지...

윤조는 끝장이구나 싶어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조 미나! 이게 이게... 앞치마가 이게 뭔 꼴이야? 왜 끈은 떨어졌어?”


“아.. 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쪽 구석에서 물통 들고 10분 서 있어.”


다행히 걸린 것은 윤조가 아니었다. 앞치마를 제대로 여미지 않고 선 미나.... 하지만 그녀의 끈이 왜 떨어졌는지는 윤조만이 알고 있었다.



곧 있을 모의고사를 생각하면 있는대로 집중하고 막바지 스퍼트를 올려야 할테지만 윤조는 오늘 하루 미나에게 신경이 쓰여 도통 집중할 수 없었다.


‘이 한주... 조 미나 어딨는지 좀 알아봐주면 안돼?’


‘야! 이 한주.... 너 내가 부르면 오게 되어 있는거 아냐?’


‘잠깐 좀 보자….’


남들이 보면 아주 미친 듯 공부에 열중하는 것으로 보일만큼 머리를 감싸고 문제집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윤조의 눈 앞으로 쪽지 하나가 스윽 들어왔다. 옆을 보니 성숙이 촛점 없는 눈동자를 돋보기 안경 너머로 희미하게 굴리고 있다. 윤조가 쳐다보자 성숙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먼저 뒷문을 나섰다. 


“뭐야?”


“살리고 싶으면 지금 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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