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장님, 저 오늘 이만 물러가요.”
“이미 알고 있었어. 님한테 아주 그냥 신 나서 전화할 때부터… 조심해서 들어가고, 알제? 마음은 항상 반만 내놓는 기다. 우째 될지 모르니께, 기억해라이, 내 마음의 반은 반드시 내가 지키고 있는다. 그래야 연애가 잘 안 되었을 때도 데미지가 덜 해. 단디 기억해라이.”
“네네! 알아서 하겄습니더!”
일단 흔쾌히 보내주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지만 속으론 그렇다. 그게 마음대로 되면 사랑입니까? 계산하는 대로 반은 적금에 넣어두고 반은 막 쓰고… 월급도 반 쟁이는 게 안 되는데… 마음이… 그게 되나요… 그게 되면 사랑이 아니겠죠…
그가 말했던 십 분이 채 되지도 않아 건물 앞으로 나가자 그의 까만 세단이 어느새 비상등을 켜고 하얀 입김을 연신 내뿜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내려와서 커다란 건물 문에 비치는 마지막 모습을 한 번 더 점검하려던 소소한 계획은 무산되었다. 약속시간이 어찌 되었던 상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원래 걸음도 마음도 바빠지는 거다.
온통 까만 그의 차는 잠깐 발걸음을 멈춘 사이 하얀 밍크 털을 보송하게 뒤집어쓰고 있었다. 평소에 택시 탈 때 예쁘고 우아하게 올라타는 법 좀 연습할걸… 하는 소심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하다가 스스로에게 놀랜다.
“왔어? 고 몇 발짝 걷고 코가 빨개졌네, 이리 와 봐, 오빠가 코를 좀 문질러서 따뜻하게 해 줘야겠다.”
“왜 이래, 하지 마. 화장 지워집니데이…”
남자가 진짜 코를 만지려 하자 화들짝 놀래 몸을 뒤로 빼는 순간이었다. 내 심장이 덜컥 떨어지려고 한 것은…
“맞아예! 김 대리 화장 지워지면 우리 바로 봉사 됩니데이! 까꿍! 김 대리! 나도 왔지롱!”
바로 요즘 들어 더 자주 보는 고향 선배 때문에…
까꿍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대체 왜 풋풋하니 설레 죽겠는 신생 커플의 데이트에 자꾸 끼냐고. 우아한 처지에 말로 쏟을 순 없는 욕을 눈에 가득 담아 찰랑찰랑하게 뒷자리에서 얄미운 고개를 갑자기 쳐드는 선배 오빠를 지그시 바라봐 준다.
“아이고 마, 눈빛 마… 야생이네 야생.”
예상했던 대로 선배라는 작자는 나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가볍게 무시했다.
“내를 미워하지 마. 느그 남자 친구가 내 섭외한 거야. 맞지예, 행님. 야가 지금 눈으로 저한테 칼 쏘는데예, 뭐라 말 좀 해주이소. 저 칼 눈깔에 사망하겠습니더.”
넉살 하나는 대한민국 최고다.
“우리 조금 먼 데 갈 건데… 괜찮지? 강일 씨는 내가 불렀어. 우리 지금 가는 곳은 여럿이서 왕창 먹어줘야 뿌듯한 데거든. 안 본 지도 좀 되었고…”
“안 본 지 좀 되긴? 꼴랑 며칠이거든? 내 선배랑 사귀지 아예?”
“흠… 보통 남자에게 질투하기란 드문데 말이지… 일단 출발하자. 딱지 끊기 전에.”
“희한하게 혹 달고 만나는 걸 좋아하는 듯? 것도 내 쪽 혹을 꼭 붙여.”
“혹 이라이, 사람한테… 그라면 몬 써!”
뒷자리 혹이 참 말이 많다.
“혹이 있어야 안전하지. 늑대가 양을 만날 때 옆에 든든한 양치기 개가 있으면 한가롭게 풀을 뜯을 수 있잖아.”
뭔 소리야… 본인이 위험한 늑대란 소린가…
이 오빠가 자기한테만 오빠라 부르라더니 진짜 친오빠 노릇을 하기로 했나… 입이 저절로 오 센티쯤 튀어나온 상태로 옆자리에서 운전 중인 오빠야를 원망스레 한 번 바라보았지만 남자는 한층 들뜬 모양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신나게 운전을 하고 있다. 차는 늘 가던 강남방향과는 반대 차선을 달린다.
“아 오늘은 저희 동네 쪽에서 회포를 푸실 예정이십니까? 신촌 복잡시러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