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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신곡2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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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le Nov 11. 2024

05. 가라앉기를 기다려라, 무엇이 그토록 탁하였는지

(20)

“깽판 되야부린 굿판은 뭣땀시 다시 기웃거리러 왔소. 드르븐 업을 잔뜩 묻히고는... 불쌍한 내 새끼. 머리 한 번 얹는게 이리 어려워서야... 온갖 잡귀 기웃거리고, 자살영은 천하에 몹쓸 짓 한 손으로 피묻히고 돌아댕겨쌌고... 니 어미가 방금 전까지 패악을 떨고 갔어야. 알고 있긋제?”


한주가 산으로 다시 올아왔을 때 썰렁한 굿판에 오돌오돌 떨며 선 양보살과 성숙이 파리한 얼굴로 엉망이 된 음식이며 제수들을 챙기는 중이었다.


“... 엄마라... 여전히 이상한 이름이군. 엄마라...

제기랄. 아까 주정뱅이 영이 돋보기한테 기어 들어갔을때 대체 어찌된 인연인지나 좀 따질걸.”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 네 엄마의 혼도 풀어야 하고 네가 꼬아놓은 것들도 처리를 해야할거야. 가심에 품고 있는 그 가이내를 망쳐놓고 싶지 않으면 말야. 아니, 이미 망쳤는지도 모르지. 하기사 파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살영한테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여.”


“... 저 놈이 다 업고 가면 윤조는 살지도 모르잖아.”


추위에 이를 딱딱 부딪히며 성숙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양보살에게 속삭였다.


“지랄. 그런 양심이라도 있는 놈이면 이런 짓거리들을 하고 돌아다니질 않지. 보통 자살영들은 이런 산 속에 숨어서 쳐 울기나 하다 야밤에 산에 처 올라오는 미친 놈들이나 놀리는 재미로 지낸다구. 그런데 저 놈은 도를 넘었어.”


“윤조가 그걸 태워버리면 괜찮을지도 몰라.”


“날샜어야. 죽기 전 부터 그 가이내랑은 영이 얽힌 놈인께. 그 딸래미가 지 손으로 끊어내야 하는디 ... 내 보기에 그 년도 절대 그럴 심지가 못되제. 마 됐고. 추워 뒤지기 전에 얼른 이거나 챙겨서 차로 싣자고.”


한주는 양 보살이 떠드는 소리에 대꾸도 없이 듣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나뭇가지에 앉아 음산한 휘파람을 불었다. 모짜르트의 레퀴엠.

한주는 사실 윤조가 이 곡을 칠 때 가슴이 설레던 적이 있다. 정말 장송곡을 장송곡 답게 친다고 생각했었지만 어느새 그 장송곡을 목놓아 부르고 있는 윤조가 아팠기 때문이었다.


“저 저 미친놈. 양귀신도 아닌 놈이 저런 얄궂은 곡이나 처 뽑아쌌는다이.. 쯔쯔...”


성숙은 사실 한주의 휘파람이 나쁘지 않았지만 오늘 굿판이 틀어져 가뜩이나 화가 난 엄마의 심기를 거스릴까봐 조용히 징을 보따리에 싸고 있었다.


“그 놈이라도 아쉽은따나 받을라 했더만 하필 그 놈한테 빚진 년이 나타나서 패악을 떨어쌌고... 에라이. 다시 날 받아서 이 잡것들 없는데에다가 깨깟하니 다시 판 깔아야 쓰겄다. 가자.”


마침내 퍼뜨려 놓았던 음식까지 야무지게 싼 양보살이 큰 팔자걸음으로 앞장을 서자 가녀린 어깨를 늘어뜨린 성숙이 죄지은 사람 마냥 뒤를 따랐다.


“저렇게 살아도 이승이 좋은가...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네...”


“당연히 이승이 좋지. 죽을 수라도 있는 이승이 좋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만.”


한주가 사라지는 모녀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는데 어느새 나타난 주정뱅이 영이 막걸리를 들이키며 손사래를 쳤다.


“... 보고싶은 사람이 있소?”


“... 웬일이여. 다른 걸 꼬치꼬치 캐물을줄 알았는데...”


“보고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었소.”


“.... 있지... 지금은 사람이 아니지만서도... 내 새끼... 내 새끼는 보고싶제”


“... 그렇군. 보고싶은건 사람들이 부르는 사랑이라는거요?”


“당연하지. 복잡할것 없어. 보고싶은것이 바로 사랑이여. 너는 안 보고 지낼 자신이 없어서 그 처자를 그리 못 놓는건가?”


한주는 되려 물어오는 주정뱅이 영에게 대답이 없었다.


“그란데... 사랑하면 지켜주는거라고도 하더라. 인간들이... 그것도 맞는 말이겄고...”


“지켜주려면 안 봐야 하는 건데... 그럼 그것도 사랑인가? 뭐가 이리 복잡해.”


“뭐 까짓거 꼴리는대로 해 뿌려!”


“가만보면 참 무식하고 무책임해.”


“썩을놈이 왜 괜히 골 빠개지는 질문은 해서는 사람을 욕을 보이는겨!”


한주는 투덜대는 주정뱅이 영을 자리에 두고 미나가 있을 병실을 향했다.


“왜 이리 일찍 나가니? 아직 도시락 다 안 쌌는데... 잠깐만 기다려봐.... 어머 얘가... 윤조야!!”


7시도 되기 전 윤조는 집을 나서고 있었다. 


그때가 아마 새벽 4시가 좀 안 되어서였을 것이다. 분명 잠을 자고 있었는데 정신이 들었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눈 앞에 무언가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눈을 떠야 할까 계속 감고 있어야 할까... 분명한 것은 이 기운은 처음 느끼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한주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주정뱅이 아저씨일까도 잠깐 생각했지만 한 번도 집으로 부른적이 없으니 그이가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했다.


“내가 누군지는 아마 영원히 모를수도 있고, 또 그저 저절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일수도 있고... 나는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지. 사실 ‘대기 è143243984번’을 보러온것은 아니었고... 미친놈을 만나 경고를 주려고 했는데 말야. 이미 해서는 안되는 짓을 하기 시작해서 냄새를 여기저기 묻히고 다니는 통에 잡을 수가 없네.”


얼굴은 없으면서 텅 빈 구멍에서 희미한 파란 빛을 쏘는 무언가가 윤조가 누워 있는 침대 머리맡에 떠서 나즈막히 읊조리고 있었다.


‘대기 è143243984번은 나를 말하는건가...’


“맞아. 너야. 무슨 번호냐고는 묻지마. 난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으니까. 내가 누구를 찾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지금 어디에 있나.”


‘나...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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