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두고서 떼는 뒷걸음

(5)

by Hazelle

“빨리 온나!”


“알았다, 가시나야. 오줌 싸는 거 까지 제한시간을 주고 난리고…”


그게 시급해서 달려온 것이었다. 이제는 확인을 해 볼 때가 되었다. 나를 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무슨 일이 있어 연락이 안 되는 것인지… 강일을 기다리는 사이 충호가 꼼짝 않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신간을 뽑아다 친절히 가져다준다.


“근데, 강일이 행님 연애 하나?”


“뭐라카노. 돈 없는 복학생이 뭔 연애. 그라고 게을러서 몬해. 연애.”


“그렇제? 근데 보니까 화장실에서 오줌 안 싸고 문자질하던데… 저 행님 웬만하면 전화 때리잖아. 귀찮다고…”


“뭐, 빚쟁이 거나… 그러게… 맨날 문자 하라 해도 막 전화해서 짜증 나게 하는데… 웬일로 문자를 한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강일이 돌아왔다.


“이거 봐. 조선 종자들, 뒷간을 몬 간다이가.

하도 뒷담화를 때리싸니까… 화장실을 갈라믄 귓구녕을 내놓고 가야 돼. 안 그라면 오줌 싸는 동안 귀 가려워서 죽어.”


“뭐라카노. 오줌 안 싸고 누구한테 문자질 중이었다더만.”


“뭔데, 이 만화방 화장실에 씨씨 티브이 있나? 완전 변태 영업소네!”


“내가 아까 큰 거 보고 나오는데 행님 그냥 세면대에 기대서 문자 열나 길게 뽑고 있더만요. 하도 집중해서 못 들었는갑지예. 이거 봐. 의심스러워. 연애한다니까.”


“진짜가? 니 연애하나?”


“할까 말까 하는 중이다 왜! 니만 연애하란 법 있나. 그래서! 뭐 우짜라고. 니 님한테 전화 함 해보라고?”


“어! 바로 해봐. 오빠 니 전화는 받는가 봐야겠다.”


“… 알았다.”


강일은 비장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장 선생을 연락처 목록에서 찾아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참을 들고 있더니 음성메시지 안내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렇게 한 다섯 번을 성실하게… 그래, 내 선배 오빠는 해 줄 만큼 해 줬다.


“만화 볼래, 술 마실래.”


다섯 번째 안내 메시지 후 강일이 물었다.


“내가 지금 정신 차려서 뭘 읽어야 하겠냐?”


“야밤에 뭔 삼겹살이야.”


“니 오늘 점심 안 먹었지?”


“먹긴 했는데… 뭐 그냥저냥…”


“그러니까… 한 끼라도 좀 챙겨 먹으라고. 없는 살림에 사 주는 거니 꼭 꼭 씹어서 잘 무그라.”


강일은 삼겹살을 정성스레 구웠다.


“쌈 싸서 먹어라, 영양실조 걸린다.”


“북한 사람이가. 영양실조는 무슨…”


“… 잘 챙겨 먹어라. 객지 생활하는데 몸 아프면 큰일 나.”


“… 그래서… 니가 볼 땐 희망 없다고? 아니 왜 갑자기?? 그날 밤에 내 맛 갔을 때 무슨 얘기했는데? 아무리 내가 필름을 또 감고 풀고 해 봐도 그때 둘이 무슨 이야기한 거 아니면 아무것도 없어.”


“별 얘기한 거 없다.

그라믄 니는 뭐 이별이 꼭 대판 싸우거나 큰 이유가 있어야 발생하는 그런 불상사라고 생각하는 기가? 나는 가끔씩 아직도 생각한다. 내가 대체 첫사랑이랑 왜 헤어졌을까. 생각도 안 나는 같잖은 이유로 헤어졌다니까. 이거 봐. 지금도 내가 생각해볼라 하는데 기억이 안 난다니까.”


“웃기고 있네.

니가 그 언니 사귀는 와중에 미팅 대타 뛰러 나갔는데 그중에 그 언니 친구 있어 가지고 걸렸다이가. 무슨 이유가 없어.”


“아! 맞다.

근데 그거 봐. 그기 어디 대단한 이유야? 내가 누구를 사겨서 양다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친구가 하도 부탁해서 대타 한 번 해준 거 가지고 그걸로 두부 자르듯이 자른 가시나가 모진 거지. 그게 오데 합리적인 이별의 이유야? 그 이별의 표면적 이유는 미팅 대타였지만 깊숙한 내면의 이유는 뭐 결국 작은 용서도 아까울 만큼 더 작은 사랑… 그거라고.”


“거 봐라. 니 얘기할 때는 게거품 무네? 그라믄 내가 지금 그런 같잖은 이유라도 있어서 마음을 접어야 하는 긴지 그날의 숨은 스토리를 풀어보라고!!”


“별 거 없는데… 에이… 그 행님도 취했다이가. 그날… 혹시 니 그 컨설턴트 전 남자 친구 때문에 빈정 상한 게 아직도 안 풀렸나? 도저히 넘어갈 수 없나?”


강일은 뭔가를 아는 듯도 하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도 하였다. 어쨌건 강일이 구워 준 삼겹살은 맛났다. 맛있는 것을 먹다 보니 약간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도 같다. 어느새 장 선생으로만 국한되었던 취중 주제는 여러 방면으로 튀어 나가고 있었다.


“억수로 사랑해도 이것만은 절대 안 된다. 나는 이라면 다시는 안 본다. 하는 거 말해봐.”


강일이 물었다.


“내가 진짜 너무 사랑한다면… 웬만한 건 봐주겠지만… 뭐 나도 일반적으로 절대 안 된다 하는 건 안돼. 도박, 바람, 폭력! 뭘 또 물어! 저번에도 똑같이 시시한 질문 했었잖아.”


“정상적이고 건강하네… 그냥… 그때 물었을 땐 네가 만나는 사람이 없었고 지금은 홀딱 빠진 사람이 있으니까 바꼈나 해서…”


그다지 의미 없는 대답을 담담히 하더니 강일은 평소보다 좀 가라앉은 모습으로 열심히 삼겹살을 올리고 굽고 자르고를 신중하게 진행하는데 몰두했다. 이상하다. 장 선생도… 주위 인간들도… 내 느낌인 걸까. 그냥 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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