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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le May 27. 2024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은 호기심…

(3)

상무님은 절대 체통 없이 앞장서지 않는다. 하지만 상무님은 지금 배가 고프시다. 그러므로 모시는 자들이 어여 엉덩이를 움직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매 드디어 시장한 상무님이 모냥 빠지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타이밍에 식사하실 수 있게끔 하여야 하는 것이 마땅한 본분이다. 나가는 순서도 당연히 졸자들부터… 그러므로 대리 썰물에 또 만나게 되는 한 대리. 이 아저씨는 나 이 회사 프로젝트 안 들어왔으면 심심해서 죽었을 거야… 말 받아주는 사람 없어서…


다행히 오늘은 전층 회식은 아니고 내일 발표할 프로젝트 보고에 관련된 업무 쪽 갑들과 개발한 ‘홀로 을’ 내가 참석해야 하는 부분 회식이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걸어 다니는 법인카드 홀더 요정 경미 씨가 참석한다. 그러므로 오늘은 좀 더 맛있는 것을 먹을 것 같다. 일단 장 대만이 속 썩이는 것은 짜증이지만 혼자 사는 싱글녀로서 고기 먹는 회식 솔직히 반갑다. 정 못 견디게 힘들 때는 혼자 고깃집 가서 2인분을 구워 먹기도 하지만 나를 정말 고기에 걸신들린 여자처럼 보는 주위의 시선이 심히 부담스러우니까.



“자 거국적으로다가 일단 파도 한 번 타지! 그간 수고했고, 2차 회장 발표 준비도 차질 없도록 하자구! 자! 오케이!”


“00케이!!”


당시 유행하던 기름집 슬로건을 상무의 선창에 맞추어 서울대 상대 동문 일동이 목이 찢어져라 우렁차게 복창한 후 눈부신 절도감을 뽐내는 파도타기가 시작된다.


일단 제정신은 견딜 수 없다는 모토다. 단체로 한 바퀴 삥 돌고 정신도 일단 반 바퀴 삥 도는 빈속의 거국적인 소주 한 잔. 이미 빠른 인간들은 목소리를 키웠다. 벌써 귓구녕이 잘 안 들린다는 소리다. 저렇게 술 약하면 진짜 대한민국 회사 다니기 힘들 텐데… 하는 매번 드는 우려… 그리고… 이미 경미 씨 반칙이다. 혼자 파도 밖에서 몰래 한 잔 더 꺾는 거 내가 다 봤다. 어여 저 여자 사각지대로 자리를 옮겨야겠다… 


“김 대리! 차돌 먹을래? 내가 따로 시켰는데…”


나를 제일 부려먹기 때문에 회식 자리에서 회사 돈으로 엄청 나만 챙겨주시는 안 부장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냉큼 일어나서 차돌의 품으로 안긴다. 일단 경미 씨랑 거리를 좀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곧 저 여인이 변신 술 로봇이 되면 같은 여자로서 이만저만 챙겨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그녀의 끝도 없는 읍소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처럼 깨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주사 레벨이 최고치일 때이므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김 대리! 그 자식 전화 안 했지?”


아뿔싸… 차돌에 너무 집중해서 안 부장 옆에 앉아 있는 한 대리를 간과했다. 저 인간이 분명히 대만 씨 이야기 꺼낼 텐데… 그러면 안 부장이 궁금해할 텐데… 쓸데없이… 그러면 나는 내일부터 사무실 나가면 대만 씨랑 사귀는 김 대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왜냐… 안 부장의 아줌마력은 한 대리의 그것과는 가히 비교불가다. 노총각 나부랭이랑은 비교불가, 범접 불가한 명실공히 가공할만한 수다력과 친화력, 상상력을 보유하고 있으매 인간 뻥튀기가 있다면 자신 있게 안 부장이라고 말할 판이니까… 


한 대리 발견 즉시 스친 우려는 동시다발적으로 바로 현실화되어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안 왔습니다아…”


“거 진짜 웃긴 자식이네… 가만있어봐 봐. 내가 지금 전화를 어디…”


“하지 마십시오… 한 대리님.”


“왜! 이런 밥통은 대놓고 말 안 하면 절대로 못 알아듣는다고.”


“하지 말라 했습니다. 한. 대. 리. 님.”


나의 또박또박한 딕션과 답지 않은 정중함에 한 대리가 위협을 감지하고 멈칫한다. 한 사무실에서 하루 평균 열 두 시간 얼굴을 맞대고 지낸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인간 사이를 친밀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그는 칠갑산을 어째서 죽어도 2절은 부를 수 없는 것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알았어. 안 할게요…”


“오…. 뭔데, 뭔데, 김 대리. 이왕이면 거 우리 김 대리 밀레니엄 쇼크 잘 구제할 때까지 지긋하게 기다리는 인내심의 미덕을 가진 도령이면 좋겠구먼?”


저거 봐라… 안 부장의 유독 작은 눈동자가 좁쌀 다이아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이가… 대충 둘러댈 말도 마땅치 않은데 다행이다. 안 부장을 아줌마에서 숫처녀로 변신시킬 절대 권력자, 회식의 상감마마, 이 밤의 주인께서 본의 아니게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아이고 우리 김 대리. 거 첫 화면에 번쩍거리는 거 빼 달라 했는데 그거 했나? 내가 또 여린 남자라 갑자기 번쩍거려대니까 가슴이 콩닥거려서 말야. 나 좀 지루하더라도 평안한, 그런 인트로 좋아하는 거 알제?”


해장할 때 빼고는 국물류 안 좋아하고 굽는 거 좋아하는 상무가 이쪽으로 올 줄 알고 있었으므로 잘 구워진 차돌, 변두리에 잘 널어놓고 기다리던 참이다. 호감을 얻는데도, 지속시키는데도 항상 끊임없는 세심함과 센스가 필수다. 등장하면서 치는 멘트도 내 예상과 토씨 하나 차이 나지 않는 그것이다. 어차피 내가 지루한 벽지 스타일로 인트로 했으면 임팩트가 없다면서 좀 더 강하게 해 보라고 했을 테다.(실제로 요 전 발표에서 있었던 일임) 그의 본분은 한두 번은 밑 사람을 뺑뺑이 돌리는 데에 있응께.


“네. 잘 수정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종갓집 벽지 분위기로 백그라운드도 좀 조절했구요, 어차피 상무님이 샘플 중에 골라주신 거 대로 했으니 괜찮으실 겁니다.”


“거 내가 고를 때부터 벽지 스타일이라고 하더만 계속 그러네.”


“… 벽지 맞는데요…”


“푸하하하하. 니가 고른 건 뻔쩍거리는 게 카바레 같더만.”


“카바레 안 가봐서 모릅니다.”


“카바레는 요즘 영동포 금마차가 잘 나간다 하더라고요.”


저럴 거면 두꺼운 등심을 시키지 싶게 차돌을 한 네 장씩 겹쳐서 먹고 있던 한 대리가 한마디 거든다.


이 사람들은 참고로 아직 취하지도 않은 상태인데 대략 이렇다. 원하는 일은 다 해주지만 내 의견은 굽히지 않는 나의 소신을 상무가 다행히도 무척 좋아했다. 문제는 너무 좋아해서 필요 이상으로 자주 말을 건다는데 있고, 회식 자리에서 대부분 근처에서 농담 받이나 괜히 거는 시비에 적당히 응수해줘야 하는 피곤한 애로점이 있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지. 야이 야이야… 이렇게 살아가고 어쩌고 저쩌고…’ 


구슬프기 짝이 없는 한 대리의 핸드폰 벨소리… 모두 싸늘하게 한 대리를 쏘아본다. 


“… 여, 여보세요.”


상무가 아예 본인 방석 끌고 꼈기 때문에 살짝 눈치를 보면서 한 대리가 옆으로 돌아 앉으며 전화를 받는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아젤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면 댓글 남겨주시면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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