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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어들다…

(3)

by Hazelle Jul 11. 2024

오늘 내가 이 인간한테 바지락 칼국수 쏜 값은 뽑나 보다. 노총각 겸 숫총각 부장이랑 네 시간 동안 드라이브하는 것보다는 이 시덥이랑 농담 따먹기라도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는 좋을 것 같다.


 “네? 아니 왜요? 먼저 출발하세요. 저, 같이 갈 일행 있어요.”


취중진담이 진짜였는 모양 한 대리는 장 선생의 연락이 없단 것을 알고 더 적극적이 되었다. 오전 회의 끝내고 워크샵 가는 길이니 태워다 주겠다고 전화를 해 온 것. 


 “네, 네, 네!”


금 부장이 태워다 주는 거냐고 넘겨짚길래 대충 그렇다고 한다. 굳이 고등학교 선배가 어쩌고 썰을 풀기도 귀찮은 것이다. 그러다가… 만약 장 선생이 태워주겠다고 했다면…이라고 생각하다 힘 없이 웃어버렸다. 그가 없을수록 내 모든 것은 그를 더욱 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알고 보니 ‘기다림’이란 감정만큼은 내 마음대로 갖고,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었다…


“김 대리 확실히 괜찮겠어? 차가 좀… 장거리 뛰기엔 뭔가…”


“아닙니다. 부장님 걱정 붙들어 매세요, 

제가 특수 부대 출신 같아 보여도 운전병 출신이라 핫핫핫”


칼국수 집에서 나오면서 강일이 오빠가 데려다 주기로 했다고 금 부장한테 전화를 할 참인데 마침 금 부장도 한양증권 전산 팀장과 근처에서 샤부샤부를 먹고 나오다 마주쳤다.


“아니 저기… 그 드라이버의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저 차가 지금 과연 괜찮은 상태인지가…”


“저래봬도 멀쩡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고작 몇 시간 전에 소유물이 된 본인 차를 조금이라도 폄하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청난 애착심을 보이고 있는 고향 오빠가 참으로 미덥지 않은 것은 맞다. 


“그라고, 제가 또 공대생입니다. 기계의 기본은 또 알죠, 제가.”


“그래애요? 뭐 저도 기계공학 공돌이긴 한데… 내 소견으로는 과히 좋아 보이지 않는데예?”


합천 출신 금 부장과 진해 출신 강일이 오빠는 서로 간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뭐 가다가 서면 그러려니 하죠 뭐. 일단 설악산에서 뵙는 걸로 해요, 부장님.”


가다가 서면 그러려니 하죠 뭐…?

진짜 배짱 센 거 아님 저런 허풍은 떠는 게 아니다…

점쟁이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둔하지 않은 인간은 가까운 본인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때가 실제로 많이 존재한다는 것에 은근히 동의할 것이다. 어쩌면 나는 알았다. 몇 시간 후 이 촌놈이랑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인지를… 그럼에도 나는 모른 척했다. 

대체 왜… 왜… 우리는 어리석은 인간이라 그렇다. 

우리는 가끔 그 자그마한 게으름에 쉽게도 항복하니까…


“… 오빠야, 이거 진짜 멀쩡한 거 맞나. 왜 시동도 잘 안 걸리는데?”


“추워서 그렇지. 원래 할배들이 잔기침 잦은 거 모르나, 야도 멀쩡은 하지만서도 연식이 있응께 잔기침 좀 해야 시동이 걸린다이가.”


내가 이 인간을 선배로 가까이서 모신 지도 어언 6년이 넘는데 나를 이 똥차만큼 감싸준 적 없다. 진짜 다음에 성공해서 람보르기니라도 사는 날엔 아주 그냥 차에서 숙식 해결할 애차인의 소질이 다분히 엿보인다.


“니 또 연애한다매?”


“또라니! 누가 들음 난봉꾼인지 알겠네!”


“난봉꾼 맞다이가. 니 그때 그 코쟁이랑 헤어질 때 다시는 연애 안 한다매.”


“뭐 사람이 다 그렇지. 다시는 안 한다, 다시는 안 먹을 끼다, 다시는 안 올 끼다… 그러다가 살다 보면 또 바뀌기도 하는 거지. 그래서 오빠야 니는 경주 언니랑 헤어지고 일부러 지금 연애 안 하는기가? 안 생기서 몬하는거지.”


같은 시골 출신을 만나면 내 안의 진짜 내가 튀어나온다. 

투를 다듬지 않고 자연스럽게 쏟아지는 사투리에는 내 진정한 소울이 담겨있다.


“참 나. 니가 우찌 아노, 내가 일부러 연애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하기사 돈 없어서 못하는 이유가 한 98프로 된다이 히히”


지금은 독립해서 혼자 살지만 강일이 오빠, 충호, 또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강일이 오빠 사촌동생 강준이, 그리고 천재지만 세상에서 제일 희한한 사고방식을 가진 혜중이까지 우리는 몇 년을 같은 하숙집 지붕 아래서 같은 밥을 먹던 사이다. 


세상 최고의 운전병이라더니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운전에 몰입한 강일이 오빠의 옆모습을 보다가 문득… 이렇게 가족만큼 편한 사람이랑 연애를 한다면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다 알지 못해 애타지 않아도 될 텐데… 상념들이 끼어들기 시작한다.


“우리 아직 휴게소는 들리지 말자. 좀 더 가서 들르자.”


“왜? 할배 다시 시동 안 걸릴까 봐 걱정인갑지?”


“아이다! 차는 아주 멀쩡해. 보면 몰라? 일단 운전에 지금 매우 적응이 되는 상태니까 좀 더 가자는 거지.”


운전병이 여러 번 강조해서 차는 멀쩡하다니 그런가 보다… 한다… 

프로그램 잘 짠다고 컴퓨터 조립도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아는 내가 운전 좀 한다고 누구나 차 수리공 급은 아니란 것은 놓쳤다.


만남의 광장을 뒤로 보내고, 기흥 휴게소도 가볍게 제친다. 


“그래서, 뭐 하는 남정넨데? 이번에는 어디 멀리 안 떠나는 놈으로 잡았나?”


그래, 요 전 연애가 끝날 때 세상 다 저버릴 것처럼 울고 또 울고 슬픔의 바다에 익사하려 할 무렵 매일같이 세상만사 귀찮다는데도 끄집어내고, 뭐든 먹이고, 애도 아닌데 놀이동산까지 데리고 다녔던 오빠야다. 좀 귀찮지만 그는 이 정도는 캐물을 자격이 있다.


“백수.”


“에… 웃기네. 다 들었다이. 충호가 그라던데 서울대 의대 나온 의사라매? 우와… 니 진짜 너무 의사 모으는 거 아이가? 가시나야, 너무 쑤시놔서 아파도 코 앞에 있는 세브란스 응급실은 못 가게 만들어 놓은 주제에 서울대까지 그래도 되나?”


누가 들으면 의사만 골라 사귀는 그런 여자인 줄 …

공교롭게도 그간 데이트 한 남자들 중 유독 의사가 몇 있었을 뿐… 


“현재 상태는 백수 맞거던? 쉬는 중이라니까… 그라고, 내가 의사들 타입인 게 내 잘못이가.”


“마, 방구 잦으면 똥 싼다고 그래 쌌다가 결국은 의사 사모님 되겠구마. 이 오빠야가 더 튼튼한 변기 연구하는 동안…”


“뭐 되면 나쁠 거야 없지.”


어느새 달린 지가 2시간이 넘어간다. 이 고물 차가 생각보다는 멀쩡한가 보다. 하지만 설악산에서 다시 서울로 오는 길은 절대 이 차에 몸을 싣고 싶지 않다… 잠깐… 나를 설악산에 데려다주면… 이 인간은 어쩌겠다는 거지?


“근데… 나는 워크샵 가면 2박 3일 있어야 되는데 니는? 내 델따 주고 다시 갈끼가?”


“어, 그랄라고. 왜. 감동이가? 다음번엔 돌아서면 배 꺼지는 얄구진 밀가루 말고 꼬리곰탕 이런 거 쏘나?”


“에… 진짜?? 떨궈주고 그냥 바로 간다고?”


“당연하지. 내가 그 대단한 대기업 사원도 아니고 뭔 수로 거기 있노. 원래부터 니 델따주고 나는 다시 갈라 했다이가. 안다. 억수로 감동이재? 억수로 내가 마 멋있재? 인마, 개아나. 오빠 아이가. 대한민국 직장인 김 대리, 내가 마 존경한다. 니 참 어린기 열심히 살아, 보면. 기침하다 죽을 거 같이 기침해 대면서도 출근하고, 눈이 반쯤 감기서 퇴근하고… 

오빠야가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 졸리면 좀 자도 돼. 

내 운전병 출신이야… 헉!!! 이 뭐꼬!!!!!!!!”


진짜 이기 뭐꼬.

피곤할 텐데 눈 감고 좀 자라고 하도 그러더니 순간 강일이 오빠가 내 눈을 억지로 감긴 줄… 갑자기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다… 뭔 소리냐고? 아니, 진짜로 보이는 게 없다… 이 미친놈의 차 본네트가 갑자기 열리더니 시야를 온통 가려버렸다…


“악!!! 어떡해!!! 미쳤나 봐!! 이거 어떻게 해???”


“나도 모른다!! 일단 창문 열고, 아우 비상등 비상등!! 

이거 들어오나??”


이대로 죽는구나…

아무리 내가 이놈 저놈이랑 연애를 많이 했어도 결국 죽을 때는 고등학교 선배 오빠랑 같이 하는구나… 별 잡생각이 다 드는 와중에 운전병 출신 남자는 영하의 날씨에 80킬로로 달리는 차의 창문을 홱 열어젖혔다. 고개를 위험하게 밖으로 빼고 백미러를 미친 듯이 살피다가 겨우 국도로 빠지는 길로 들어서 트럭들이 정차하는 공간에 차를 세우기까지 뭐랄까… 

황천길? 황천이라고 원래는 강이라지? 

그 강을 건너면 이 생과 저 생이 갈린다지? 

웃기고 있네. 황천길은 영동고속도로 중간 어딘가쯤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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