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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어들다…

(4)

by Hazelle Jul 14. 2024

“아 정말 미친 거 아이가? 니 오늘 내 죽일 뻔한 거 알제?? 

아 죽을라면 혼자 죽지 나는 절대 오빠야 니하고 같이 죽기 싫다!!”


“마 이하동문이고 쎔쎔이야 이거 왜 이래. 그라고 같이 죽어도 우리는 가는 행선지 달라. 걱정 마! 니는 천당, 나는 극락. 

카톨릭하고 원불교의 엔딩은 다르다니까. 

… 우와… 그나저나… 진짜 뭐 저런 차가 다 있노. 

우와 진짜 우리 같이 골로 갈뻔했다 오늘. 그자?”


안 죽고 살아난 게 너무 행복하던가 너무 웃기던가… 아님 너무 추워서 돌았던가… 강일이 오빠는 꽁꽁 언 손을 파리처럼 연신 비벼대며 낄낄대고 있었다.


“보험회사에 전화 안 하나?”


“… 그기 문젠기라… 내가 오늘 저 차를 선배의 친구의 사촌한테 샀거덩? 명의 이전이고 보험이고 하나도 처리 안 되어 있을낀데…”


“니 진짜 아이큐 한 자리가?

그런 상태로 지금 설악산 델따 준다고 내를 납치한 거네?”


“납치라이… 내 인텐션은 세상 순수했으! 뼈 빠지게 사는 대한민국 여성 직장인을 돕고자 하는 그런 보살스러운 발상으로다가…

 그라고 내가 또 니 마이 아끼잖아.”


“두 번 아꼈다가는 진짜 죽이겠네? 일단 차 안에 들어가자. 느무 춥다.”


본네트와 차체를 연결하는 고리 자체가 녹슬어 끊겨버린 고물차의 본네트를 다시 밀어 넣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아… 이사할 때 쓰는 그 똥색 테이프 있다이가. 그기 힘은 짱인데… 그거라도 있음 좋으낀데…”


확실하다. 이 인간 아이큐 맥시멈 9.


“니 진짜 확실하나, 연대 공대 우찌 들갔노. 부적 썼나? 

꼴랑 테이프가 저 쇠를 지탱한다고?? 말이 되나 지금? 

우와… 오늘 뼈저리게 느끼네, 바보가 제일 위험하네…”


“아.. 근가… 그나저나… 뭐꼬…!!”


“아 또 왜!!”


“있제… 내가 한 가지 조금 더 나쁜 소식 전해야 하는데… 일단 내 죽이지는 마라. 알긋제?”


“아 뭔데!! 빨리 창문부터 닫고 말해라. 추워서 죽을 거 같다. 

동사란 말 모르나!!”


“그니까… 그기 문젠데… 하…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창문이 안 올라간다이가…”


“뭐??? 아니 왜!!”


“그니까… 너무 오래된 데다가 얼었나??”


“아니 그라믄 창문은 왜 처 열었노!!”


“몰랐지!! 그라고 아까는 그 창문 안 열었으면 눈깔에 보이는 거 없어서 진짜로 오늘 우리 둘이 합동 제사상 받을 뻔했다이.”


“아니 살 때 그런 거 체크 안 하나?”


“그러게… 아주 큰 진리 하나 더 알았네 오늘. 

집 볼 때는 물 틀어보고, 차 살 때는 창문 다시 기 올라가나 꼭 확인!”


“야, 내가 볼 때 니 오늘 이거 견인하고 폐차하고 하면은 당분간 차는 무신, 세발자전거도 할부로 못 사!”


“빙고!! 현명하신 김 대리님!! 일단 차 있는 인간들한테 전화 좀 해보자.”


“우리 주위에 차 있는 인간도 별로 없지만, 그 인간들이 여기까지 와준다고?? 아 진짜!! 왜 우리 부장이 타고 가자 할 때 말을 안 들었을까. 내가 진짜 멍청한 종자지…”


나는 참 좋은 사람답다. 결국은 이 모든 결정을 내린 본인을 탓하게 된다.


“아! 그 부장한테 전화하면 안 되나? 아직 도착 못했을낀데… 좀 돌아가지고 우리 구하러 오라고 함 해봐라.”


어쩔 수 없다.

강일이 오빠가 말하기 전에 이미 굳은 손가락을 겨우 펴가며 연락처를 뒤지는 중이다.


재다이얼을 한 열다섯 번 했나… 모범생 금 부장이 운전 중에 핸드폰을 켜 둘 리 없다는 생각에 이를 때까지…


“안 받는다… 우리 부장님 엄청 에프엠이라서 운전 중에 전화 안 받을끼다…”


“아.. 또 그런 답답이들 중 하나네…”


“답답이?? 니 지금 누구를 답답이라카는기지비??”


“알았다, 알았다! … 그나저나 야 이거 진짜 상태 안 좋네… 경상도 가시나가 함경도 사투리를 쓰냐”


추워서 죽을 것 같을 때는 열과 성을 다해 바로 옆의 누군가를 매우 미워하면서 한 판 싸우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나저나 날도 어두워지는데 이놈의 국도에는 지나가는 차 하나 없다. 이제 기댈 것이라곤 워크샵에 도착한 아저씨들 중 아무라도 ‘김 대리야, 어디고?’ 하고 독촉 전화를 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제기랄, 그러기로 체념한 지 십 분도 안 되었는데 도저히 이 추위를 이길 수가 없다.


“내랑 같이 뛰까? 그라면 좀 덜 추울걸? 아니면 오빠야가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다가 안아줄까? 아 알았다!! 무서버라… 그라면 그 아재들한테 먼저 전화해보던가?”


운전병 출신도 보니까 코가 떨어져 나가게 추운 게 분명하다. 은근히 나의 인맥을 기대하고 있다.


“봐봐, 그 아저씨들이 전화를 해도 우리가 지금 처박힌 곳이 아직도 서울에서 더 가깝다이가. 그라고 언제 전화할지도 몰라. 우짜지…”


“우잉… 우짜지 우짜지… 느무 추워… 추워서 죽을 거 같애… 김 대리야, 치료 차원으로다가 좀 안아줘…”


“확 그냥 암바 걸어서 더 이상 안 춥게 숨통 끊어준다이.”


“… 경상도 가시나… 내 경상도 가시나랑 절대 결혼 안 해!”


“이거 왜 이래, 경상도 가시나들도 이하동문이야!”


핸드폰을 자꾸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이유는 ‘언제 어디서든 필요하면 데리러 오라고 전화’ 하라던 장 선생의 말이 맴돌기 때문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굳이 그의 전화를 기다리기만 해야 할 이유는?

다 큰 성인이 지키지도 못할 말을 했던 건 아니겠지. 난 분명 지금 필요한 상황이니까…


“여보세요?”


어이없는 사고와 추위로 뇌세포가 죽었나, 당연히 전화를 했으면 상대가 받기를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건만 오히려 수화기 너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전화기를 떨어뜨릴 듯 당황하고 있다.


“여보세요?”


금세 대답을 못하자 장 선생이 침착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다시 한 번 불렀다.


“오빠, 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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