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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넛커피 Apr 16. 2023

할아버지 괜찮아요

그는 행복했을까

※ 섬망

사진출처 : 삼성서울병원 질환백과


사람들은 여러 질환을 앓기 마련이다.  그 종류도 너무 많아서  대학병원에 가보면 익숙지 않은 여러 진료과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큰 병에 걸리거나 치료기간 동안 열악한 신체조건 등 치료의 경과에서 또 갑자기 발견하게 되는 상태 중 하나가 '섬망'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처음 마주하게 되면 여간 당황스럽지가 않다. '섬망'이 생기게 됐을 때  그 환자 본인의 증상과 모습이  옆에서 보는 보호자, 주로 가족이 될 텐데 아주 생소하고 힘들고 심지어 겁도 나기 때문이다.


  '섬망'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생기는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하면 어떤 질환 때문에 신체적으로 컨디션이 많이 저하되어 있을 때 아주 쉽게 동반된다. 입원치료를 하는 환자들 중에 10% 이상에서 볼 수 있다. 심한 외상을 입은 분, 수술 이후 환자들, 입원치료가 길어지는 환자나 불면으로 고생하는 분들, 또 입원치료가 길지 않았어도 이유 불문하고 연세가 많으신 노인 환자분들이 잘 동반되는 사람들이다. 기저질환이 있고 어떤 진단으로 오래 투병했던 노인 분들은 컨디션 저하나 갑작스러운 문제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을 때는 입원하고 불과 2~3일 만에도 증상이 나타나고 정작 입원하면 안정하고 치료가 필요한 경우인데도 이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단순히 집에서 병원이라는 환경의 변화 만으로도 충분히 유발될 수 있다.


증상은  가볍게는 갑자기 주변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해서 한다. 옆에서 아무리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물어도 정확히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때 보호자는 엄청나게 당황하게 된다. 갑자기 기억상실에 걸렸다거나 이해 안 되는 말을 한다면서  병동 스테이션으로 달려 나와 간호사나 의사를 호출한다. 그래서 갑자기 치매에 걸린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이 정도의 상황에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어도 환자가 묻는 말에 대답을 잘하거나 요구하는 것에 따를 정도로 순응한다면 그나마 힘들지 않게 버틸지 모르겠다. 그래도 환시, 환청 같은 증상이 있으며 과도하게 산만한  것도 보호자 입장에서 계속 눈을 뗄 수가 없고 주변에 피해를 줄까 봐 긴장을 하게 만들고 피로도가 꽤 있다. 상황이 더 어려운 것은 환자가 앞서 말한 증상 외에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과 언어가 동반되는 것이다. 대답을 하려 하지 않거나 물음에 팔을 휘두르거나 물건을 던지기도 하고 아예 대화자체를 거부하고 온몸을 마구 흔들어대거나 자꾸 밖으로 나가려는 이상행동을 하게 된다. 이 정도로 증상이 발전한다면 보호자는 겁에 질리지만 환자에서 눈을 뗄 수도 없으나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당황을 떠나 크게 상심하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잘 조절되지 않으면 보호자도 심한 우울감에 빠져 간병이 어렵게 되기도 한다.


증상을 조절하기 위해 증상이 있을 때마다 진정제 등을 투여하기도 하고 이상행동이 너무 공격적이거나 같이 입원해 있는 주변 환자들에게 위협이 될 정도로 통제가 어려운 경우에는 팔다리를 결박하는 압박대라는 것을 보호자 동의 하에 하기도 한다. 이런 조치에도  증상의 경과나 기간은 예측이 되는 게 아니어서  이럴수록  아무리 어렵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보호자의 인내와 끈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늘도 B병동에서 콜이 온다.


나: "네? 무슨 일이죠"

B : "선생님! 그 할아버지 또 난리세요~"

나: "어떻게요?"

B: "계속 나가려고 하세요. 어떻게 할까요?"

나: "주사 주시고 일단 잘 붙잡고 계세요. 할머니(보호자)는요?"

B: "계속 옆에서 말 걸고 말리시는데 역부족인 거 같아요. 힘들어하세요"

나: "네 곧 갈게요~"..."할아버지 괜찮아요?"


할아버지에게 또 섬망 증상이 온 거다. 밤마다 그것도 늦은 시간에 반복되곤 했다. 많은 일들을 마치고 잠시 짬이 생기나 했더니 여지없이 콜이 온다. 며칠째 같은 연락이고 그냥 주사처치 지시만 하고 지나가기엔 또 금세 연락이 올걸 알기에 투덜대다가 병동을 내려가본다.

역시나 할머니는 한 숨을 푹푹 쉬면서 할아버지를 다그치고 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는 하소연을 시작한다.


"어찌 사람이 이럴까, 무심한 양반.  내가 죽든 이이가 죽든 그래야 끝나지  이거 도저히 이렇게 살아가기가 영 자신이 없고  힘들어 죽겄네~ 미친 듯이 날뛰는데 나도 몸이 안 좋으니까 답답하고 감당이 안돼~"


하루이틀이 아니니 할머니의 이런 한 숨도 이해가 간다. 깊은 우울감에 사로잡히셔서 점점 할머니도 간병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비과학적인 방법은 그냥 할아버지 옆에 있는 것이다. 그 이유도 단순하다.

할머니가 들어야 할 얘기를 내가 대신 듣고 옆을 지키면 할머니가 쉴 수 있다. 할아버지는 본인이 의식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지만 어차피 말을 해야 할 총량이 있다면 그 일부를 소진할 수 있을 것이다. 얘기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나가려는 행동보다는 일방적이나마 대화에 행동이 집중이 될 것이고 과잉 행동이 감소할 여지가 있다. 이러한 이유 내지는 목적으로 나는 시끄러운 병실에서 두 노부부를 데리고 휴게실로 가서 할아버지 옆에 자리를 잡는다.


  보통 이렇게 앉아 얘기를 듣는 시간은 대중없어  1시간이 넘기도 한다.  미비된 기록지도 작성하고 모르는 것도 공부하고 얼마 남지 않은 발표 준비도 해야 하기에 이런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비과학적인 방법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근거는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돌아가면 다시 같은 일로 콜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고 당장 주변에 바쁜 일과로 그런 노력을 하는 이들은 없기에 누구에게 추천조차 하기가 어려웠다.


  어쨌든, 대화를 하면서 할아버지를 가만히 지켜본다. 끊임없이 말을 걸고 앞뒤 맞지 않은 말들을 들으면서 계속 지켜본다. 무의식적으로 섬망 안에서 하는 이 행동들이 받아들여진다 느껴질 때 할아버지는 안정이 되면서 행복했을까.

그래서 나도 힘들지만 계속 얘기한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병동 티타임에 차 한잔



할머니께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시고도 한참 후에까지 전화도 주시고, 집이 지방이신데도 치료 있어서 서울 오시면 오실 때마다 꼭 커다란 커피 하나 사놓고 주셨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힘든 몸으로 찾아오시고 커피도 주시고 하시는 게 너무 감사했지만 부담도 드리는 것 같아 오는 연락도 일부러 끊고 감사하다는 말씀도 못 전했네요. 지금도 건강하시죠?  오래전 일이지만 그때 너무 감사드려요.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2023.04  오랜 기억 속 할아버지를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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