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던 어느 주말이었나 보다. 특별한 약속도 없이 집에서 아내와 같이 있다가 문득 무언가 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떠올랐다.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커플들처럼 그저 게임이나 같이 즐기고 내기를 즐기는 엄청 액티브한 그런 우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게 의미가 있을지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급하게 그림 그릴 때 필요한 4B연필과 적당한 스케치북을 준비했다.
나 : "이리 와봐. 이거 하자!"
아내: "뭔데"
나 : "그림 그리기 하자~"
아내: "그림? 무슨 그림?"
나 : "서로 얼굴을 그려주는 거야!"
아내: "갑자기? 이걸 왜 해?"
나 : "그냥~ 그림 잘 그려? 많이 그려봤어?"
아내: "나 그림 잘 못 그리는데~~ㅎㅎ"
나라고 그림을 많이 그려봤을 리 없다. 그저 시간 때우기 용으로 생각했는지 아내는 뜻밖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썩 하고 싶어 하지도 않지만 막상 연필을 쥐어주니 그림을 옆에서 그리기 시작한다.
스슥스슥~~
아내는 투덜대긴 했지만 이내 집중을 하더니 소리를 내며 머리부터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아내: "이상한데 쫌 비슷하지?"
나 : "어~흟!" "그거 나 맞지?"
아내: "그래~ 근데 힘든데~?
나 : "그리는 데까지 그려봐~ 잘하네~"
나도 그렇지만 아내도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정도의 수준으로 실제랑 다르게 그림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집중력은 초등학생 수준으로 긴 시간 지나지 않아 집중력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참 웃기는 장면이다. 결국 소파와 거실 바닥에 제각각 수그려 불편하게 서로를 그리던 우리는 오래가지 못해 목과 어깨가 불편해지며 미완성의 그림들을 남기고 그리기를 중단했다.형편없는 그림 사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것보다 근본적으로는 나에게 없는 감각과 실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스케치 수준에서 닮지 않았지만 그리고 좋지도 않지만 완성된 건 아래 밑그림뿐이다.
원래 그림 그리기의 숨은 목적은 이쁜 아내의 젊을 때 모습을 그림에 잘 담아 선물하는 것이었다. 일단 없는 실력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린 다는 건 몇 획 만에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곧바로 알게 된 건 내가 아무리 연습하고 실력을 키워도 지금 곁에 있는 아내의 가장 풋풋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절대 담기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또 다른 목적은 서로의 모습을 그려준다는 목적하에 그리기를 시작하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도 더 자주 더 잘 보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의 서로를 잘 살피고 기억하는데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첫 번째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아내는 오히려 그림 그리기 한 적이 있는지조차 잊은 것 같다. 책상 위에 저렇게 그리다 만 밑그림을 올려놓고 언젠가 시간이 나면 더 공을 들여 완성하겠다 다짐했지만 그마저도 불투명해졌다. 하지만 나름대로 서로 오래 바라보고 살피며 다른 깨달음도 얻었으니 이기적인 것 같지만 나는 만족한다. 게임이나 운동과는 또 다르게 같이하고 서로를 볼 수 있는 '서로 그려주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