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고 노란 꽃들이 여기저기 뭉텅뭉텅 피어나고 흩날리는 봄날이 좋다. 특히 그런 꽃 길을 즐길 수 있는 한가로운 평일 낮만큼 따스하고 달콤한 것은 찾기 어렵다. 바람이 많이 불지 않지만 선선한 것이 미세먼지조차 없는 깨끗한 날은 길가에서도 공원을 거니는 느낌을 받게 한다. 벌써 벚꽃이 떨어지려 하지만 시간이 더 가기 전에 이 여유와 봄의 정취를 조금 더 느껴보기로 한다.
내가 사는 동네는 아니지만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기 시작해서 운동 겸 산책을 하다가 예전에 세차를 했던 곳 근처가 생각나 무작정 그 방향으로 간다. 정릉역에서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으나 작은 정릉시장을 우연히 만났고 이곳에서 세차시간을 때울 겸 분식을 먹고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시장 아래로 천이 하나 지나가는 게 있었는데 그것은 정릉천이었다.
그곳으로 내려가 천을 타고 또 무작정 걸어 올라가 보기로 했는데 걸으면서 지도를 켜보니 정릉천은 북한산국립공원에서 내려오는 천이었다.
천을 중심으로 양쪽에 아파트 단지도 많고 골목 동네도 있고 번화가 느낌은 아니지만 평화로운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걷다 보면 북한산을 갈 수 있겠다 싶어서 천을 따라 상류로 걸어간다. 평일 낮에 운동을 나온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부터 많은 주민분들이 계셨다. 내가 사는 곳은 물이 가까이 없고 꽃 냄새가 나지 않아서인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었겠지만 이곳 주변에서 자연을 품고 사는 분들이 부러워졌다.
천변을 걸을 때 나는 항상 물 안을 들여다본다. 물고기가 있는지 얼마나 사는지가 궁금해진다. 그것을 본다면 이곳은 그나마 깨끗하게 관리가 되고 있는 곳일 것이다.
중간중간 물살이 약하고 깊이가 조금만 깊어 보이면 작은 물고기 떼가 보였다. 청둥오리 한 쌍이 유유히 물을 타고 다니며 몸단장도 한다. 천을 따라 오르다 보니 멀리 북한산 자락이 보인다. 산행을 하려는 것까진 아니었지만 나중에라도 시간이 허락한다면 욕심 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올라가다 보니 북한산 초엽에 가까워졌는지 여러 가지 돌을 모아놓고 암석에 관해 설명하는 안내판도 만나게 되었다. 이곳을 지나는 아이들은 관심이 없겠지만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교과서에 나올만한 암석 종류나 분포에 대한 설명이 정말 아무렇지 않게 있는 것을 오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정릉천은 끝나는 듯 보이나 실제로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 줄기와 이어지는 너른 주차장이 나타났다. 정릉주차장이다. 이렇게 구석에 넓은 주차장이 있는데 나만 몰랐나 싶다. 산을 찾는 분들은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도심에서 국립공원 산책로가 연결돼 있는 게 갑자기 어색했지만 다시 한번 정릉천 주변 주민분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애초 산행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여기까지만 왔다가 그냥 발길을 돌리기 너무 아쉬워 아주아주 조금만 올라가 보기로 했다.
정릉천에 들어서도 이미 도심 소음과는 멀어지고 걷다 보면 기분도 차분해지면서 산에 가까워질수록 공기가 좋아진다.
국립공원 표지석을 지나 산책로는 계곡을 따라 나있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올라가기 참 좋다. 아직 여름도 아니고 벚꽃이 지기 전이라 그런지 날씨가 덥지도 않은 것이 딱 좋다. 특히 산 초엽에 완만한 경사는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굽이굽이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얼마나 맑던지 가만히 듣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같이 흘러내려가는 기분이다. 사실 산을 더 올라가면 더 멋있는 풍경이 가득할 것이 분명하지만 이미 걸어온 길을 생각해서 오늘은 구글 지도상 천이 끝나는(실제로는 시작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진의 지도상 청수폭포라는 곳까지만 도착한 후에 내려가기로 했다.
정릉천에서 청수폭포로 표시된 이곳 까지는 가파른 경사가 없다. 산책로가 계곡이나 천을 끼고 있으며 정확한 거리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2km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이 정도라면 왕복으로 운동 겸 산책하기에 대부분 연령에서 매우 좋을 것으로 보인다.특히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또한 큰 장점인 것 같다.
다시 정릉천까지 내려오다 보니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정신없이 사냥 중이었다. 가끔씩 떨어지는 벚꽃이 물 위에 떠 흘려가고 그 물이 돌에 부딪힐 때는 햇빛하고 같이 부서져 기분 좋은 눈부심을 만든다.
요즘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고 날씨도 좋아서 더 좋았을지 모를 정릉천 산책이 또 2024년 봄의 추억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