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 감성

by 헤이즐넛커피

어느 날 아내가 외출할 일이 있는데 직장 근처로 오겠다고 했다. 마침 일찍 일이 끝나는 날이라서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매일 혼자 점심 차려서 먹는 것도 일인데 오히려 이렇게 나와서 한 끼 해결하는 건 내가 더 반가운 일이었다.

항상 일을 마치고 나면 아무리 일찍 끝나더라도 일을 마친 직후의 피로감으로 순간의 식욕이 떨어져 점심은 아무거나 먹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퇴근하고 혼자 해결하다 보면 별로 좋지 않은 인스턴트를 먹곤 했는데 이번에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아내가 찾아본 식당이 있다고 했다.

메뉴는 바로 물닭갈비였다. 물이 들어간 갈비든 전골류는 원래 많지도 않지만 찾아먹어보지도 않았던 메뉴다. 그냥 흥건한 국물에 끓이는 게 뭔가 먹기도 전부터 매력이 떨어진달까. 역시 나의 선입견이었다.

도착한 식당은 번화가가 아닌 동네 골목길에 있었다. 오래된 간판가 옛날 새시로 된 입구가 있다. 내부가 잘 보이지도 않아서 그냥 지나갔다면 절대 궁금하지 않고 별로 시도해보고 싶지 않을 만한 집이었다. 그런데 이런 집들에 숨은 고수가 있을 수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무리한 도전을 하고 싶지 않을 뿐인데 식당 가기 전에 검색해 보니 그래도 괜찮은 집이었다. 2대가 50년 넘게 운영하는 식당이고 2021년에 허영만의 백반기행이라는 프로그램에도 소개되었던 집이다. 외관이 허름한 느낌보다 기대감으로 바뀔 수 있었다.

내부는 오래된 백반집 느낌인데 고깃집 테이블 같은 원형테이블이 세 개, 네모진 테이블 세 개 정도가 전부고 뒤로는 다락같이 살짝 올라가는 작은 방이 있어서 테이블이 하나 더 있다. 오래된 작은 식당들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구조인데 그런 작은 방은 주인 분들이 실제 거주하거나 휴식하는 공간으로 쓰이기도 한다. 70대 정도로 추정되는 할머니가 한분만 계셨고 느릿느릿 차분하게 서빙해 주셨다. 처음 오는 우리를 맞이해 주실 때부터 다소 느리지만 고상하시듯 따뜻하고 차분하면서 정중한 느낌으로 말씀하신다. 욕쟁이 할머니 한분 있어도 반박할 수 없을 듯한데 또 다른 응대에 정말 노포에서 파인다이닝 접대를 맛보는 기분이었다.


물닭갈비 나오기 전에 먼저 주신 도토리 전은 따뜻하고 밑반찬으로 나온 양파절임하고 같이 먹으면 감칠맛이 딱이다. 묽은 양념이 그냥 맹맹한 맛이면 어쩌지 싶었데 젓갈이 들어간듯한 살짝 짭조름하고 고춧가루 들어가 빨갛고 살짝 매콤한 듯 하지만 조미료 맛이 느껴지지 않는 시원하면서 기름지지 않은 국물이 입맛을 계속 당겼다. 술을 드시는 분들은 반주하기 딱인 최상의 메뉴였다. 2인세트로 주문해서 국물에 쫄면도 넣어먹고 마지막에는 잘게 자른 김치와 김 등을 넣고 볶음밥으로 마무리하니 완벽했다.


가끔 맛있는 음식을 만나면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이 집의 분위기, 음식의 맛과 특히 사장님의 친절함과 동시에 친근감 마저 느낄 수 있는 모든 배경은 맛있는 밥집이다라는 차원을 넘어선다. 식당의 감성과 사장님의 모습에서 처음 온 집이지만 이미 나도 오랫동안 와봤던 집이고 처음처럼 똑같이 잘 대접받는 느낌을 한 번에 받아버렸다. 나의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오랜 투병 끝에 이미 돌아가신 지 좀 되었는데 우리 할머니 같고, 내가 손주라면 이 맛있는 음식을 더 일찍 알고 많이 먹었을 수 있었겠다는 아주 단순하고 유치한 생각도 나게 했다. 오래간만에 마주친 노포 감성이 맛있고 고맙고 오래 기억될 것 같다.



- 2025.12 오래된 식당을 나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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