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소도시 여행,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
"여기인 것 같아"
콜렉티보에서 내려 처음으로 맞이한 산크리스토발의 첫 인상이었다.
알록달록한 낮은 건물들과 좁은 길, 키가 작은 마야 원주민들을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조용하고 깨끗한 마을. 멕시코에 오기 전 막연히 상상만 했던 내가 느끼고 싶었던 멕시코의 모습이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재빨리 나가 마을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마을은 크지 않았다. 처음 보는 악기와 처음 듣는 언어(마야어)로 독특한 노래를 부르는 히피들. 느린 걸음으로 어슬렁거리며 곳곳을 둘러보기 딱 좋은 아담한 마을은 첫 날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산크리스토발은 이상한 곳이다. 이 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딱히 무엇을 하지 않지만 어떤 여행지에서보다 긴 시간을 이 곳에서 보낸다. 유명한 관광지도 없고, 딱히 누구에게 추천해줄 만한 그럴싸한 장소가 있는 곳도 아니다. 하지만 유독 멕시코의 이 마을에서만 한 달 이상 장기 숙박을 하는 배낭여행자들이 많아 산크리스토발에는 '여행자들의 개미 지옥'이라는 별명이 있다. 나도 결국 개미 지옥에 빠지고 말았다. 처음에 2주, 그리고 멕시코를 한 바퀴 돌아 다시 2주. 멕시코에서 보낸 두 달의 시간 중 절반을 산크리스토발에서 지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냈음에도 가장 그리운 곳.
산크리스토발에서의 일상은 늘어짐 그 자체였다. 매일매일을 오래 살았던 동네처럼 자연스럽게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녔다. 길거리타코를 먹고 수공예시장이나 상점들을 구경하고 커피숍에서 그림을 그렸다. 해가 지면 20페소(약 2,500원)짜리 잔 와인을 마시며 길거리 히피들의 노래를 들었다. 가끔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함께 고기 파티를 하기도 했다. 어둑해진 밤에는 노래하고 춤추는 히피들이 거리에 가득했다.
늦은 오후엔 낮달을 볼 수 있는 마을. 하늘이 유난히 가까워 밤에는 커다란 달이 손에 닿을 것만 같았던 곳.
유명한 관광지는 없어도 늘어짐에 취하는 곳. 별다른 일이 없어도 하루하루가 새로웠던 곳.
산크리스토발은 쉽게 빠져 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