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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Sep 27. 2023

[별글] 165_ 정선이 내게 알려준 것들

  나는 시골을 싫어하는 어린이였다. 한적함이나 예쁜 풍경, 맑은 공기에 싫어할 구석이 어디 있겠냐마는 시골이 뭔지 잘못 배웠다. (지금은 풍경이 많이 변해서 이미 서울이 다 된) 온수동에는 친할머니 집이 있었다. 어른들은 그곳이 아직도 '시골'이라고 했다. 내가 아는 시골은 다 낡은 온수동의 주택가 그리고 할아버지와 같이 오르내리던 뒷산이 전부였다. 그 집에서는 내가 견딜 수 없는 냄새가 났다. 어른들은 나에게, "시골 냄새 싫어하는구나."라고 말했다. 그런 게 시골 냄새라면, 그러니까 시골에선 그런 냄새가 나는 거라는 명제가 당연하다면 시골은 사양이었다. 지방 쪽의 시골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 짐작했다. 추석과 설날을 늘 온수동과 화곡동(엄마네 엄마가 사는 곳)에서 보내서 지방에 갈 일은 별로 없었는데, 가끔 성당 캠프라거나 학교에서 진행하는 단체 행사로 지방에 갈 일이 많았다. 견딜 수 없는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화장실과 잠자리가 견딜 수 없이 불편했다. 시골은 불편하다는 공식을 머리에 박아놓고, 시골에 갈 일을 가능하면 만들지 않으면서, 그렇게 늘 시골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서울에서 늘 친하게 지내던 부부가 정선으로 귀농을 하시기 전까지는 말이다. 


  만짱이 그 댁 가족을 만나러 정선에 가자고 했을 때, 속으로는 정말 싫었지만 마지못해 따라갔었다.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 부부는 정선에 있던 집에 그냥 몸만 들어간 게 아니라, 집을 아예 처음부터 원하는 구조로 다시 지었다. 집이 외관도 너무 깔끔해서 놀랐지만 안에 들어가보니, 그냥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통째로 옮겨놓은 것 같은 집이었다. 화장실은 우리 집보다 깨끗했고, 갓 방역을 마친 덕에 걱정하던 벌레도 하나도 만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시골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지나치게 낡아 냄새가 날 정도인, 깨끗하게 관리되지 않은 채 오래 방치된 공간을 싫어한다. 보풀이 일어난 이불과 단체로 자야만 하는 불편한 잠자리를 싫어한다. 정선에서 신세계를 본 후 다른 지방에도 방문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이라면 그 건물이 서울에 있건 농촌에 있건 상관 없는 것이었다. '시골'이라는 단어에 편견을 깨고 나서야 시골에만 있는 좋은 것들, 이를테면 고요함이라거나 '갈 곳이 없다는 핑계로 실내에서만 뒹굴거리기' 등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서울을 싫어하는 어른이 되었다. 틈만 나면 서울 밖으로 나가려는 이 상태를 어릴 때의 내가 믿어줄지 모르겠다. 보름쯤 후에 짧게나마 정선 여행이 예정되어 있는데, 서울보다 훨씬 넉넉한 빈 공간에 때탄 마음을 탈탈 털고 햇빛까지 반짝반짝 쬐어 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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