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에서 나를 건진 건 언제나 친구였다.
내가 부적처럼 안고 사는 문장이 있다. "김한별 까는 건 인생 낭비다." S는 그 말을 하면서 나를 비난할 거리를 찾을 시간에 차라리 리니지 레벨업을 하겠다고 했다.
리니지가 어떤 게임인지는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고렙(높은 레벨이라 이미 올라갈 곳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레벨업을 하려 노력하는 일이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건 안다. 그러니까 친구는 극단적인 형태로 내 편을 들어준 거다. 구원은 셀프라지만 내가 나를 못 믿는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 항상 나를 먼저 믿고 구원해준 사람은 언제나 친구였다.
긴가민가한 순간이 있다. 내 잘못이 아닌 듯하면서도 상대방이 은근히 내 탓으로 돌리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내 잘못이라니까 그러려니 하려다가, 순응하기 직전에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한다. 있잖아,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 잘못일까? 그러면 내 상황을 듣던 친구는 '엥? 그게 왜 네 잘못이야?'라고 한다. 나는 이 순간을 엥 모먼트라고 부른다. 상황 가운데 놓여 있어 부당함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 때, 친구가 대신 부당함을 감지하고 나 대신 '엥'을 외쳐주는 것이다. 나는 이 모먼트가 참 좋다. 내 잘못이 없는 정도를 넘어서,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이 당황스럽고 어이없을 만큼이라는 사실을 한 글자로 나타내는 순간 같아서 좋아한다. 가스라이팅은 보통 당하는 사람이 잘 모르거나 어릴 때 자주 일어난다. 어른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보고 예의가 없고 일을 못 한다며 매일같이 구박하던 언니가 있었는데, 상황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엥 모먼트를 겪었다. 그 당혹스러워하는 표정 덕분에 내가 예의없지도 않고, 일을 못하는 사람도 아니라는 걸 겨우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남들이 구렁텅이에 빠져있을 때 건지기는 쉽지 않다. 특히 구렁텅이에 빠지는 일이 울타리 안에서 벌어질 때는 더 그렇다. 예를 들어서 연인이라는 이름의,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안에서 사랑을 가장한 폭력이 발생할 때 말리거나 지적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끼리의 일에 왜 끼어드냐며 되려 화를 내면 할 말이 없어지기도 하고, 괜한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다. 내 생각에 친구란 그 선을 성큼 넘는 존재다. 너의 애인이라 해도 너를 그렇게 대할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해주는 사람. 한때는 애인이란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냐며, 나를 데리고 살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말했다(당연히 전 애인이긴 한데).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정말 그런 걸까 싶어질 때쯤, 아니라고 미쳤냐고, 차라리 자기랑 사귀자고(?) 말해준 사람들은 전부 친구들이었다.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외면하지 않고 선을 성큼 넘어준 그런 순간이다.
친구가 내 편을 들어줄 때 기분만 좋고 만다면 구원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상황을 변화시켜야 하는 건 그 가운데 선 나다. 폭력적인 말을 자꾸 듣고 내면화하다 보면, 그 상황을 벗어날 힘도 잃기 쉽다. 무력하게 폭력을 당하다 보면 가장 속상해하는 사람들은 역시 친구들이다. 그 속상한 얼굴이 나를 움직인다. 폭력을 끊어내고 뚜벅뚜벅 걸어 벗어날 용기를 준다.
오히려 그래서 시시콜콜한 속상한 일을 곧이곧대로 털어놓기란 어렵다. 때로는 내 친구들은 나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한 번이라도 나를 괴롭힌 사람이 있으면 영영 기억하고, 누가 나를 속상하게만 해도 그 사람을 싫어하기도 한다. 나를 지키고 사랑하는 그 마음 틈에서 가장 좋은 친구가 되려고, 요즘의 나는 부당함의 싹만 보여도 잘라내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