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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Oct 21. 2023

[별글] 176_ 한 길 사람 속

  친구와 운전에 대한 얘기를 했다. 이제 막 운전을 배우려고 마음만 먹은 상태인 친구는, 운전 7년차인 나에게 운전할 때 어떤 게 제일 힘드냐고 물었다. 나는 자동차에 말풍선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모든 의사소통이 빵빵거리는 경적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게 말도 안되게 답답하다고 했다. 경적은 너무 공격적이다. 물론 '빠아아아앙!!!'과 '빠..ㅇ!'은 다르다지만, 무언가를 알려줄 때도, 저리 비키라고 할 때도, 욕을 할 때도, 경고할 때도, 인사할 때도 같은 소리를 낸다는 건 비합리적이다. 채팅 기능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차 앞뒤의 액정에 느낌표(너 그대로 오면 나랑 부딪친다!), 물음표(너 지금 뭐 하려는 거야?), 하트(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음(와, 정체가 풀렸네요!), 눈물(죄송해요ㅠㅠ 초보라 못하겠어요) 정도는 띄울 수 있게 구현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언어로 사람의 속을 헤아리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물론 나도 내 마음을 백 퍼센트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에 상대방이 하는 말이 마음을 전부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마음을 담은 말이라고 해도 내가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도 없다. 그래도 적어도 그 사람을 보는 주관적 해상도는 높아진다. 뭐랄까, 뿌옇게 때탄 창문을 닦아 선명히 풍경을 보는 기분으로 사람이 보인달까. 물론 내 마음의 창문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스테인드 글래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요즘 가장 답답할 때는 나 혼자 열심히 창문 청소를 할 때다. 대화는 같이 하는 창문 청소 같다. 창문 안쪽을 열심히 닦아 봐야, 바깥쪽이 더러우면 소용이 없다. 그러니까 대화는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창이 나 있다고 했을 때 나는 말을 함으로써 내 쪽을, 상대방은 또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상대방 쪽을 닦아 가능한 오해를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창에 얼룩이 있는 것 같아서 열심히 닦아보려고 애쓰는데 알고 보니 바깥쪽 얼룩이어서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가장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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