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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Oct 23. 2023

[별글] 177_ 가을 옷

  가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충만하면서도 쇼핑몰 화면을 보면 한숨만 나오는 계절이다. 이 시즌에는 나무에만 단풍이 드는 게 아니다. 싱그러운 파스텔톤을 자랑하던 쇼핑몰의 메인 화면에도 단풍색 물이 든다. 

대충 '가을 스커트'로 검색한 첫 화면인데 색감이 이렇다. 메인 컬러는 베이지, 갈색, 그것도 아니면 카키나 버건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건 고사하고 내가 좋아하기 힘든 색이라서 이런 옷을 사면 하루종일 거울 볼 맛이 안 날 게 뻔하다. 그나마 최근에는 흰색, 아이보리, 베이지, 소프트 브라운으로 이루어진 팔레트는 보기에 나쁘지 않고 편안하다는 인식까지 도달했지만, 여전히 가을색이 쏟아지는 화면을 보면 고개를 젓게 된다. 그래서 가을 옷을 검색할 땐 아예 가을이라는 단어를 빼 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냥 스커트, 라고 친 다음에 눈이 빠지게 원하는 두께가 맞는지 화면을 응시하는 편이 낫다. 


  새 옷을 산지 너무 오래되어 이런 쇼핑의 고뇌는 한참 전의 일이다. 요즘은 웬만한 옷을 당근마켓으로 구매한다. 오히려 그 편이 성공률이 나을 때도 있다. 내 취향의 옷을 대형 쇼핑몰에서 발견하려면 스크롤을 내리고 내려 요즘의 트렌드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당근마켓에 있는 옷은 꽤나 랜덤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판매할 때 쓸 법한 말을 제대로 넣어서 검색에 성공하면 정말 뿌듯하다. 예를 들면 '입기에 나이가'라고 검색하면 귀여운 원피스를 찾을 수 있고, '지금 입기 맨투맨' 이라고 검색하면 지금 입기 딱이라거나 최고라거나 좋다고 홍보되는 계절감 맞는 맨투맨을 찾을 수 있다. 


  톡톡한 니트를 입기에는 아직 이르고 여름 끝에 입을 법한 얇은 셔츠를 입기엔 추운 계절이다. 전형적인 가을옷을 사는 데 매번 실패하는 나의 가을 옷차림은 아주 기묘해진다. 억지로 여름 옷 위에 초겨울 코트를 입고 어떻게든 애매한 계절을 버틴다. 이 와중에 친구가 나에게 너무 딱인 옷을 발견했다며 교생실습 때 입으라고 배송을 보내놓은 옷이 우연히 집에 도착해있다. 나의 아주 드문 가을룩 성공이 될지, 귀가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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