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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Nov 01. 2023

[별글] 182_ 무지개다리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는 표현은 누가 만든 걸까? <굿 플레이스>에서 엘리너의 엄마는 엘리너가 키우던 강아지가 죽자 그 강아지가 무지개 건너의 농장에 살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엘리너가 그럼 만나러 찾아가면 안 되냐고 묻자 3초만에 거짓말을 포기하고 강아지가 죽었다고 실토한다(글로 쓴 것보다는 실제로 보면 꽤나 슬픈 장면이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말의 용례는 특별하다. 사람에게는 쓰지 않고, 정을 붙이지 않은 동물에게도 쓰지 않는다. 나와 구체적으로 알고 정을 붙인 동물이 떠났을 때만 쓰는 말이다. 


  친구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서, 그런데 다른 친구들에게는 밝은 척을 하길래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다가 키우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 당연히 힘들지 왜 괜찮은 척을 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강아지가 떠났다고 자꾸 울면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서..' 라며 못 울던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봐도 반려동물과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과 함께 살아본 사람의 간극은 너무나 크다. 이해받지 못할 친구의 슬픔이 안쓰러우면서도 나중에 한 번은 겪게 될 일이라 두려웠다. 지금도 사람들은 반려동물이 떠났다고 연차를 쓰면 유난이라고 한다. 슬픔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그만 좀 하라고 한다. 뭐, 적다 보니 동물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요즘 미짱은 나랑 둘이 있으면 종종 Bobi의 영상을 보여달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개라는 기네스 기록을 가지고 있는 보비는 얼마 전 31살 생일을 맞았다. 달이가 그 나이까지 사는 게 소원이기라도 한 듯 달이를 안고 입이 헤벌쭉 벌어져 보비를 보다가, '우리는 유기농만 먹이는 것도 아니고 자연에서 키우는 것도 아니니까 저 정도까지 살지는 못하겠지?' 하면서 쓴웃음을 짓는다.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표현이다. 강아지는 색을 못 본다고 하지 않았나? 웬 무지개다리? 싶기도 하지만, 한낱 빛의 굴절일 뿐인, 그래서 당연히 위를 걸을 수 없는 그 길을, 떠나고 나서야 빛을 만끽하며 우리 주인들은 이런 예쁜 걸 보고 살았냐면서 자기들끼리 떠들면서 찬란히 걷는 반려동물들의 모습을 왠지 상상하게 되는 밤이다. 


오늘 검색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Bobi는 일주일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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