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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Mar 04. 2024

[별글] 228_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 일

  어릴 때 읽은 <어린 왕자>에는 여러 어른들의 모습이 풍자되어 있었다. 그중 내가 가장 우스꽝스럽다고 느꼈던 인물은 별을 세는 사람이었다. 왕자는 그가 별을 세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는 그저 별을 소유하기 때문에 헤아릴 뿐이라고 답한다. 소유해서, 뭐? 그 다음엔? 소유한 별들로 아무런 효용을 얻지 못한 채 별을 소유한다는 데에서 뿌듯함을 얻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허무하고 우스꽝스러운 짓을, 요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 몇 달은 이사를 갈 각을 재면서, 그리고 그 각을 위해 집주인과 소통하면서 별을 헤아리던 자산가의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전세라는 건 집주인이 암묵적으로 세입자에게 빚을 지는 것이라 세입자가 나갈 때는 돌려주어야 하는 돈이 생긴다. 세입자가 얌전히 오래오래 관리비만 내면서, 한 집에 머무르면 좋겠지만 사람 일 다 그렇듯이, 이사 갈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집주인은 바빠진다. 적어도 내가 본 대부분의 집주인들은 목돈을 현금으로 갖고 있지 않는다. 돈이 '놀고' 있으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투자 가능성으로 인해 손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갈 세입자에게 전세사기를 치지 않으려면, 그러니까 돈을 돌려주려면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서 목돈을 다시 구해야 한다. 나라면 이런 집이 한두 채만 있어도 피곤할 것 같은데 내가 알기로 우리 집주인은 이런 집이 여러 채 딸린 건물을 몇 개씩이나 가지고 있다. 부동산에서 집주인이 이런 자산가이기 때문에 돈 떼먹힐 일은 없다고 확언했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다. 그저 과장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나라면 너무 피곤해서 돈을 그냥 놀게 둘 것 같다. 내가 살지도 않을 집을 여러 채 갖고 관리해야 하는 일은, 효용도 얻지 못할 별을 하루종일 헤아리고 있는 일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나에게 건물주라는 타이틀은 어떤 유용한 지위로 느껴진다기보단, 늘상 숫자를 생각해야 하는 피곤한 직업처럼 느껴진다. 


  안다. 이런 말이 얼마나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인지. 그리고 몇 년 후의 내가 이런 글을 휘갈겨놓은 2024년의 한별을 보면서 질타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희미하게나마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소유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 소유물에 마음을 매일 일이 많아진다는 나의 주장을 철회할 생각은 없다. 무슨 '무소유'같은 극단적인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만약에 건물을 몇 채 가진 집주인이라면 한 채 정도는 처분해서 여윳돈을 통장에서 잠자게 하고 싶다. 잠자는 돈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팔아치운 건물에 대해서는 잊고 지낼 것이다. 나중에 가서 그 건물 값이 두 배가 뛰었다느니, 사라진 이득을 상상하며 끙끙 앓아눕는 일은 없으리라. 나머지 건물에서 세입자가 나가는 일이 생겨도, 전세금을 돌려주고 나서 빈집을 몇 달을 빈 채로 두더라도 발을 동동거리지 않을 몇 년치 여유가 오히려 이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솔직히 말하면 건물이 몇 채 생긴다면 내가 살 집 빼고 전부 팔아치우고 통장에 재우고 이자만 받아먹으면서 살고 싶기도 하다). 


  사실 집주인에게는 내가 입주할 때 빚이 있었는데, 건물을 돈으로 환산한 값이 빚보다 훨씬 크기에 괜찮다고 했다. 부동산에서 중개인도 그렇고 집주인도 안심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아마 솔직히 말하면, 집주인이 당장 내 전세금 정도를 은행에서 빌리겠다고 하면 은행에서도 선뜻 빌려줄 것이다. 나는 빚이 하나도 없는데도 그만한 돈을 덜컥 빌릴 수는 없다. 빚도 자산이라는 희한한 말이 있어서(정확히 말하면 집주인은 마이너스로는 임대사업을 벌이고 있는 투자자니까) 은행은 돈을 필요한 사람에게보다는 가진 사람에게 더 잘 빌려준다. 큰 돈도 굴려본 사람이 잘 굴린다는 생각에서일까, 마른 펌프에는 마중물을 부어도 양수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일까. 얼마 전 15.9퍼센트라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과도한 이율로 50만원 긴급생계비를 대출해 준다는 정부의 대책에 2만 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렸다는 기사를 보고서는 자산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더욱 기묘하게 느껴졌다. 가진 사람들이 손해를 보면서 없는 사람들에게 퍼주어야 한다는 새빨간 논리는 아니고, 딱히 가진 사람들도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아서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생각이 많아질 뿐이다. 


  얼마 전 미짱은 죽을 때까지 천천히 가진 것들을 비우면서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나와 동생에게 나누어주는 몫과 그가 직접 쓰는 몫을 차감해 가다 보면 가진 것의 그래프가 천천히 0으로 수렴하도록. 영원히 살 것처럼 굴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데 벌써 하강 그래프를 생각하다니 미짱답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 그래프도 계획적으로 일정한 선을 그리기보다는, 들쭉날쭉하게 튀다가 결국은 목표대로 0으로 수렴하게 될 것이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일이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가능하다면 큰 맥락 안에서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사는 게 목표다. 그저 많은 것을 느끼고 잔뜩 의미부여를 하다가, 나도 미짱을 닮아 0으로 수렴한 채 떠나고 싶다. 어떠한 폐도 끼치지 않고, 어떠한 분란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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