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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르 Mar 08. 2024

[별글] 229_ 뜻안의 행운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가 편하다. 나에게 늘상 인상을 쓰는 사람에게까지 늘 미소를 띠고 대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일단 우호적으로 굴고 보는 태도가 천성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솔 톤으로 말하고, 타인을 미소로 응대하고, 도움이 되고자 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꾸며내야만 하는 경우에 우호성이란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는 일이다. 나에게 호의적일지 아닐지 알 수 없는 사람에게 디폴트 플러스의 태도를 갖는 일이 때로는 낭비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오히려 갑옷을 두르고,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인 척 딱딱하게 구는 행동이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본인과 어울리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는 일이 심적 에너지의 차원에서 비효율적임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호적인 태도에 따라오는 '호구'라는 원치 않는 타이틀과, 내가 손해를 볼까 염려하는 걱정 어린 애정의 시선은, 갑옷을 챙겨 입게 만들었다. 일단 낯선 타인을 대할 때 삐딱하게 대하라. 차가운 태도를 일관하라. 그러면 적어도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그러나 나보다는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덜 우호적인 사람들이 수도 없이 해준 조언이다. 


  눈 뜨고도 코를 베인다는 도시 서울에서 그들의 말이 일견 맞는 듯도 싶었다. 특히 수많은 길거리 사이비의 존재는 갑옷의 정당성을 점차 강화했다. 친구들에게 몇 번 말한 적은 있는 일화인데, 스무 살 때의 나는 누가 말을 걸어도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무엇이든 도와주겠다는 태도로 응대했다. 내가 미소를 지은 상대 중에는 대학교 정문 앞에서 포교를 위해 배회하던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잠시만 이야기를 하자는 식으로 나를 카페로 유인했고 거절할 타이밍을 찾지 못한 나는 40분 동안 일방적인 설교를 듣다가 그만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당황한 상대는 나를 집으로 보내주었다. 이런 비스무레한 일화가 수십 번 반복되었고, 나는 점점 아무에게나 화가 났다. 누군가 말을 걸면 사이비일지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인상부터 쓰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나는 지쳐버렸다. 일단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인상을 쓰고서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 나의 본성이다. 그래서 무거운 갑옷을 포기해 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극단적인 상황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사이비는 피해 다니고 싶다. 느닷없이 도를 아냐는 사람들에게까지 나의 친절을 베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무고한 동료 시민들을 모두 잠재적 사이비로 취급하는 태도에 지쳐 버린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말랑한 원래의 상태로 사람을 응대하되 조금이라도 이상한 구석이 있으면 재빨리 갑옷을 뒤집어쓰는 형태로, 나의 처신이 바뀌었다. 


  얼마 전 여느 때처럼 버스에 서 있는데(나는 일부 자리가 비어 있어도, 두 자리가 붙은 자리에는 한 사람이 이미 앉아 있으면 잘 앉지 않는다) 오른쪽 자리가 비어 있는 어떤 할머니가 어깨를 톡톡 두드리셨다. 할머니를 향해 고개를 갸우뚱하니 옆자리를 툭툭 두드리셨다. 자리가 비어 있으니 앉으라는 호의였다. 굳이 베풀지 않아도 되는 우호적 태도에 마음이 또 푸딩처럼 말캉해졌다. 신림에서 서울대입구로 향하는 짧은 10분 동안, 내릴 때의 감사 인사에 대해서만 고민했던 것 같다. 휴대폰 화면을 흘긋 훔쳐보아(글자가 워낙 커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까지도 알아냈다. '평화를 빕니다'가 좋을까? 아니면 평범하게 '좋은 하루 보내세요'가 좋을까? 고심 끝에 내리는 길에 할머니에게 몸을 기울여, 행복한 하루 되시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마찬가지로 흐물해진 표정으로 복 받으라고 다시 인사해주셨다. 


  친절한 할머니가 옆자리를 내어주신 일은 뜻밖의 행운이었으나, 내가 기꺼이 친절에 감사로 응답하고 우호적인 인사를 건넨 일, 그리고 서로의 마음이 말캉해진 일은 분명 내 의지로 행한 행운, 뜻안의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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