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간간하고, 잘 익은
먼저 군침이 도는 음식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맛있는 음식과 군침이 도는 음식을 구분할 필요가 있겠다. 맛있는 음식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최고급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을 기회가 생겼는데 라면을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마다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당히 배가 부른 상태에서는 음식을 떠올린다고 해서 군침이 돌지는 않는다. 배가 고픈 상황에서 나의 허기를 아주 만족스럽게 달래줄 것 같은 음식을, 나는 '군침이 도는 음식'이라고 정의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군침이 도는 음식은 좋아하는 음식과도 살짝 다르다. 홀린 듯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려면 일단 냄새가 나야 하고, 그러려면 뜨거워야 한다. 너무 담백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간이 되어 있는 음식이 좋고, 맛있는 냄새를 풍길 정도면 잘 익어 있어야 한다. 나는 회도, 빙수도 좋아하긴 하지만 굳이 공복에 먹고 싶지는 않다.
어느날 길을 걷다가 너무 맛있는 카레 냄새가 났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다른 식당에 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홀린 듯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오늘 약속 장소를 바꿔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내 코가 엄청난 식당을 찾은 것 같다고. 친구들은 대체 뭐길래 그러냐며 흔쾌히 식당으로 와주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일본인 부부 사장님이 우릴 맞아 주셨다. 솔직히 테이블도 작고, 공간도 협소해서 처음엔 괜히 왔나 싶었다. 그런데 카레를 한 입 먹자마자 그런 생각은 사라져버렸다. 한참 배가 고팠던 우리는 엄청나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고, 심지어 친구들은 앞으로 길 가다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 식당이 있다면 공유해 달라고까지 했다(인간 맛집네비인 나에게 최고의 칭찬이었다!). 어쩌면 카레를 향한 나의 집착은 이날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군침을 돌게 하는 음식은 냄새로 사람을 부른다.
배고플 때, 떠올리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또 하나의 음식은 뜬금없지만 뼈해장국이다. 나는 한식을 싫어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뭐가 먹고 싶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한식만 아니면 된다고 한다. 예외적인 몇몇 음식이 있는데, 뼈해장국이 그중 하나다. 대학교 3학년 때 혼자서 유럽여행을 하던 중, 한달 반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한식을 찾지 않았다. 다들 어떻게든 고향의 맛을 느끼려고 한인 식당이니 게스트하우스니 열심히도 찾아다녔는데 나는 단 한 순간도 한식이 그립지 않았다. 그러다 마지막 날이 다가올 때쯤 뼈해장국이 먹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다른 가게도 말고, 동아리 친구들이 자주 가는 바로 그 뼈해장국 집에서 식사가 하고 싶었다. 귀국 직후에 나는, 아침 9시 반까지 동아리(성당)에 가야 했는데 8시 반에 굳이 뼈해장국 집에 들러 식사를 하고 미사를 드리러 가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차가운 음식엔 향기가 덜하다. 차갑게 식은 샌드위치나 김밥을 떠올리면 왠지 입맛이 떨어지지 않나. 원래 차가운 음식인 샐러드도 왠지 입맛을 위한 음식은 아닌 것 같다. 따뜻한 음식에 집착하는 나는 지금 다니는 학교에 전자레인지가 없어서 슬프다. 학생들을 위한 휴게 공간이나 과방에 제발 전자레인지를 하나만 놓아달라고 학교에 건의라도 할까 싶다. 그러면 내가 도시락을 적극적으로 싸다녀서 식비가 지금보다 절반으로 줄어들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