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글] 88_ 고백 공식

by 벼르

이상적으로 말하면, 고백은 연인이 되기 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마지막 단계이다. 그러니까 0부터(첫인상이 좋았다면 10이나 20부터일 수도 있겠지) 차근차근 마음을 쌓아 나가다가, 상대방도 나처럼 90이 넘었다는 확신이 들면 거치는 단계가 일반적인 고백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모든 고백이 이렇지는 않기에 망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한쪽만 마음이 잘 익은 불균형한 모든 고백이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상대방의 마음이 0에 가까우면 택도 없겠지만, 30 정도만 되어도 가망은 있다. 지금부터 내가 생각하는 고백의 성공 공식을 소개하겠다.


1. 끝내주는 스토리텔링

일단 마음이 영글지 않은 입장에서는, 고백이 급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갑자기 날 좋아한다고?'라는 생각이 들지 않기 위해서는, 납득할 만한 스토리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마음의 싹은 언제 텄는지, 우리 사이의 서사가 어땠는지 빌드업의 과정을 설명해야 한다. 다만 너무 사소한 포인트는 언급하면 위험할 수 있다. 당신의 마음이 꽉 차올랐다면, 당신은 이미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의미부여를 하고 관심을 기울이고 있겠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스토커 같을 수 있다. 그러니까, 둘이 같이 놀러갔을 때 어떤 모습에 반했는지는 이야기해도 괜찮지만 수업시간에 무슨 말을 했는데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는 말은 지양하는 게 좋다. 할 이야기는 많겠지만 사소한 부분은 사귀면서 천천히 말해주어도 늦지 않다.


2. 약간의 허술함

고백을 하는 입장에서는 뭐라고 말할지 미리 정리하고, 시뮬레이션도 돌리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너무 완벽한 대본 같아 보이는 고백을 하면 오히려 멋있지 않다. 완벽함은 여유로 비쳐지고, 그렇게 절박하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 절박하지 않다면 상대방의 마음이 충분히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자. 그런데 대부분의 불균형한 고백은, '설령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지금 말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벅참'에서 출발한다. 어차피 고백하는 쪽은 절박하다는 소리다. 절박한 만큼 완벽하게 다지고 싶겠지만, 성공하기 위해선 오히려 부족함을 남겨 두어야 한다.


3. 도망칠 구석은 적당히

고백해 놓고 각이 안 나오면 장난이었다며 말을 돌리거나, 그걸 믿냐고 오히려 상대방을 놀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만우절에 고백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구멍을 너무 크게 만들어두면 티가 난다. 상대방의 마음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도망가고 싶다면 잘 됐네, 도망가'라고 말할 빌미를 마련하는 셈이다. 당신은 배수진을 치고, 오히려 상대에게 도망갈 구석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진심은 진심대로 가 닿고, 상대방은 부담스럽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 배려는 호감도를 올린다.


4. 서동요 멈춰

안 그래도 상대방은 자기 마음이 헷갈리는데, 다른 사람이 개입하면 더 헷갈리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공개 고백을(그렇게 많은 미디어에서 안 된다고 말렸는데도) 아직도 로망으로 생각한다. 자기가 하면 멋있을 거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남들 앞에서 마음을 고백하면 3번의 '상대방이 도망칠 길'이 사라진다. 상대방은 당장 대답해야 한다는 압박에 휩싸이고, 그러다보면 그나마 가졌던 호감마저도 사회적 압박 때문인 줄로 생각하게 될 수 있다. 그러니까 확실하지 않은 고백일수록 단둘이 있을 때, 프라이빗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이 진지하게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분위기니, 비싼 레스토랑이니, 선물이니, 고백에서 주로 생각하는 외적인 요소들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서두에 말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차원'의 고백이라면 그런 외적인 요소가 분명 플러스가 될 수 있지만, '불균형 고백'에서는 거절하기만 더 곤란해질 수 있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최소한의 호감이 있는지 확인하고, 더 중요한 것을 챙겨 당신의 고백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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