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행복을 누리려면 준비되지 않은 마음이 준비물이다. 계획대로 무난히 흘러간 하루에 우리는 뜻밖의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다행히 잘 지나갔다, 오늘도 무난했다' 정도로 표현할 뿐이다. 크레셴도(음악을 점점 크게 연주하라는 악보의 지시 사항)를 제대로 연주하려면 먼저 잠시 소리를 줄여야 하듯, 예상 외의 행복을 누리려면 일단 살짝 계획이 어그러져야 한다.
가장 흔한 예시는 친구와 함께 음식점을 찾을 때이다. 식당을 예약해서 내 테이블이 보장되어 있을 때에는 음식이 맛있더라도,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시간은 예정된 행복이다. 예상을 뛰어넘은 음식이 나오더라도 그 행복이 뜻밖이지는 않다. 맛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식당은 애초에 찾지 않기 때문이다. 가려고 했던 식당이 문을 닫았거나, 사람이 너무 꽉 차서 발길을 돌렸을 때 뜻밖의 행복이 찾아올 자리가 생긴다.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끝내주는 냄새에 이끌려 다른 식당에 들어갔는데 완전히 취향저격일 때 우리는 뜻밖의 행복을 만났다고 한다.
예상 밖의 행복을 누리는 것도 능력이다. 통제 욕구가 높은 사람은 계획이 어긋났을 때 바뀐 계획의 결과가 좋더라도 아쉬워한다. '그래도 원래 생각대로 흘러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또는, '내가 열심히 찾은 식당을 못 가게 되다니 너무 슬프다'는 생각을 강조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좋다는 말을 보면 오히려 좋긴 뭐가 좋냐며 화를 낼 것이다. 아니면 이런 사람도 봤다. 계획이 어긋날 것까지도 계산해서, 플랜 B, C를 넘어 D, E, F, ...(이하 생략)까지 마련해 둔다. 그래서 첫 번째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짜잔! 이럴 줄 알고 준비해뒀지.' 하고 잽싸게 두 번째 계획을 꺼내든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 좌절하지 않겠지만, 예기치 못한 즐거움의 짜릿함을 알지 못한다.
물론 변수에 대응하다 보면 좌절할 때가 많다. 걸어도 걸어도 열린 술집을 찾지 못해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어느 새벽이나, 버스가 연착되어 환승할 버스를 놓쳐서 모르는 동네에서 덜덜 떨며 밤을 새야 했던 밤이 기억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처럼 환희도 절망도 나의 것(샤이니 Key의 Bad Love 중)이니까 고난도 재미있다. 틀 안에 내 경험을 가둬두는 것보다는, 롤러코스터처럼 좋음과 나쁨을 쉴새없이 오가더라도 자유롭게 풀어놓는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