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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소리 Oct 22. 2023

이불킥을 통한 자아성찰

[초등 육아휴직이라는 정서적 보상]  #5

 회사에서 급하게 퇴근하고 태권도장으로 아이를 데리러 간다. 가끔 아이가 도장 앞에 있는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 한다. 동그란 의자 앞에는 안면이 없는 엄마들이 모여있고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나와는 다르게 아이는 친구들 무리로 뛰어간다. 그 무리 중에서 처음 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우리 아이에게 이렇게 외친다.

"너는 내 친구 아니잖아. 그러니까 이 칼 만지지 마!"

 마음이 상해서 내 쪽으로 다가온 아이에게 집에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말한다. 두 손을 마주 잡고 집으로 가는 길. 상처받은 아이에게 나는 이렇게 위로해 준다.

"그 친구랑 너랑 아직 친하지 않아서 그렇게 말할 수 있어. 그렇다고 속상해하지 마. 너에게는 유치원에 다른 친구들이 있잖아."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나 또한 사회적 동물이다. 그동안 회사라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그 중요성을 몰랐다. 휴직을 하고 나니, 나는 어느 한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외톨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퇴근 후 아이 저녁을 먹이고 씻겨 재우기 바빴기에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 엄마들과도 교류가 없었다. 그리고 아이가 유치원을 초등학교가 있는 곳과는 조금 떨어진 동네에서 졸업했기에 아는 초등학교 엄마들도 없었다. 그래서 육아 휴직을 하고 난 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나는 늘 혼자였다. 도보 5분 거리의 친정집 근처로 이사를 해서 때때로 엄마와 나들이를 다녔지만 때로는 공통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 나눌 같은 처지의 사람이 필요했다. 아파트 엄마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서 브런치 모임에 나가 보고 등산도 같이 가보았다. 하지만 우리 아이와 같은 성별, 나이의 자녀를 둔 엄마가 없었기에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일 큰 놀이터에서 주로 모이는 초등학교 엄마들 그룹에 속해보려고 시도해 보았다. 고맙게도 아이와 같은 반, 같은 축구학원을 다니는 친구의 엄마가 축구학원이 끝나고 다 같이 놀다가 집에 간다고 일러주었다. 그러면서 우리 집 앞이 아닌 편의점 앞에서 하차하라고 권유해 주었다. 아이는 운동이 끝나고도 친구들과 놀게 되어 행복해하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치열한 생존의 시간이었다. 그 무리는 이미 유치원 때부터 관계가 형성되어 초등학교 1학년으로 이어져온 엄마들 모임이었다. 서로의 집안 사정을 다 알고 있었고 그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어느 날은 단체 채팅방에서 있었던 주제가 대화로 이어질 때도 있었는데 나는 이야기에 참여할 수 없어서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회사 선배님에게 전화가 와서 무척이나 반가워하며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눈치가 빠르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시작되더라도 한 두마디 오고 가는 대화를 듣다 보면 어떤 내용인지 간파할 때가 많다. 아직도 떠올리면 마냥 창피한 그날의 기억은 나의 쓸모없는 눈치와 사교성이 결합되어 발생되었다. 한 엄마가 빙 둘러 모여있는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우리 그래서 언제 다 모일 거야. 어디로 갈지 정했어? 나 너무 갈증 났는데 참고 있잖아."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기적으로 아이를 재운 뒤 술과 함께 육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날이 있는 듯했다. 불쑥 나는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 저도 불러주세요오오~~."

 '하하하' 다 같이 웃었지만 그 누구도 알겠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 모임은 축구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의 엄마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유치원 때 알고 지냈지만 축구 학원을 다니지 않는 여자친구, 남자친구들의 엄마들도 함께 모이는 자리였다. 내가 놀이터에서 아직 만나지 못한 엄마들이 더 많았는데 나의 과도한 의욕이 실수를 만들었다. 무안해진 나는 집에 갈 시간만을 기다리다가 아이를 불렀고 나의 부름에 아이는 땀범벅이 되어 아주 상쾌하고 기쁜 표정으로 다가왔다. 집으로 가는 내내 아까 내뱉은 한 마디가 너무 부끄러웠다.

'아... 아까 괜히 말했나..'

 다음날 아침이 되니 자괴감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이불킥을 연신 해댔다. 왜 그랬을까? 끝없는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강박이자, 초조한 사람의 발악이라고 칭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대학교 시절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3학년 때 전문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학교 기숙사에 살게 되었다. 4인 혹은 6인이 한 방에서 생활했다. 매일 아침식사도 기숙사에서 제공해 주었는데 삼삼오오 같이 먹는 친구들이 있는 한편, 우리 룸메이트들은 기상시간이 나와 다르거나 아예 아침을 먹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 혼자 조식을 먹곤 했다. 내가 준비한 시험 말고도 다른 학과 수험생들도 같은 건물에서 생활하며 밥을 먹었기에 괜히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신경 쓰였다. 공부를 하다가 머리도 식힐 겸 캠퍼스를 거닐었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침마다 급식소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다고 해서 친구가 없는 게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혼자 밥 먹는 것이 더 이상 창피하지 않고 편안해졌다. 내가 다시 이 생각을 하게 되니, 조급함이 사라졌고 단단하게 결속된 무리에 끼려는 욕심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 뒤로 축구가 끝난 후 놀이터로 가는 내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모르는 이야기가 나와도 전혀 민망하지 않았고 모임에 초대받지 못해도 개의치 않았다. 놀이터 엄마들 사이에서 궁금한 이야기도 묻고 학교 정보도 얻는 유익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하교 때 오다가다 만나게 된 아이 친구 엄마를 천천히 한 명, 한 명씩 사귀게 되었다. 만약 지금의 내가, 3월의 조바심 많은 나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이렇게 언질을 줄 것이다.

“부자연은 자연을 이길 수 없다. 일부러 어딘가에 들어가려고 애쓰지 말아라. 자연스럽게 알게 된 관계가 중요하다. 그 관계를 단단하게 만드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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