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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소리 Oct 22. 2023

Housewife Blue를 겪다.

[초등 육아휴직이라는 정서적 보상]  #4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했던 말들을 나만의 노트에 기록해놓고 있다. 휴직을 하고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친정 엄마와 아이의 대화는 휴직한 나에게 한 달가량 매일 4개의 반찬을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3살 된 아이를 친정 엄마가 어린이집에서 하원시켜 주시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로부터 '우스운 이야기를 해줄까?'라고 연락을 받았다. 원장 선생님께서 오늘 손주가 어묵탕 많이 먹었다고 들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가 밖으로 나와 아이에게 물어봤다.

 "우리 똥강아지. 오늘 어묵탕 많이 먹었다면서?"

  그랬더니 아이가 시크하게 대답했다.

"응. 그래서 몸이 무거워"

 얼굴만 보고 있어도 이쁜데 말하면 더 예쁘다는 친정 엄마 말이 딱 맞다. 빨리 퇴근해서 만나고 싶다.


 입학식을 기점으로 마주한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날들이 쌓이다 보니 설렘의 감각은 무뎌졌고 새로운 날들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진짜 봄, 4월이 왔다. 하루하루 아이와 추억을 쌓아가며 내 삶이 기쁨과 사랑으로 충만해질 때쯤에 나는 드디어 집안일을 시작했다. 워킹맘으로 지내는 동안 우리 집은 꽤나 지저분했다. 회사에서 에너지를 소진하고 오는 날들이 많은 탓이었다. 그래서 퇴근 후 평일에는 청소할 여력이 없었다. 주말에 여행이라도 다녀오게 되면 건조기에 방치되어 있는 옷더미는 다음 주 주말까지 그대로 있어야만 했다. 나도 남들처럼 깔끔하게 정리하며 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동이 틀랑 말랑한 밝은 새벽에 깨서 어제 못 끝낸 저녁 설거지를 하고 출근할 때도 많았다. 그랬기 때문에 휴직을 하게 되면 깨끗한 집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고 매일 청소를 하리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아이가 5살 되던 가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두드러기 판정을 받은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만성 두드러기는 호전되지 않았고 나는 퇴사를 생각하기도 했다. 항히스타민제를 매일 먹이면서 내가 옆에 있어주지 못해 아이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것이라고 자책했다. 휴직을 하니 그때의 자책과 마른 편이었던 아이의 몸무게를 중위 퍼센트로 만들겠다는 욕심이 시너지를 발휘했다. 식판에 빈칸을 남겨두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그것은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을 식탁 위에 놓는 듯한 느낌과 동일했다. 그리하여 나는 매일 식판 칸수에 맞춰 국 1개와 반찬 3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청소과 요리를 한 달 정도 했을 무렵 예상치 못하게 나는 굉장히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요리는 너무 낯선 영역이었다.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는 친정 엄마가 빈번하게 손주 반찬을 만들어주셨다. 그리고 부모님은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손주와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배달해 주셨다. 혹여나 내가 피곤할까 봐 집 안에 들어오지도 않고 반찬만 내려놓고 가셨다. 그 덕분에 아이와 나는 따뜻하고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이것이 내가 요리가 낯설게 느껴졌던 이유였다. 내가 기대했던 휴직 생활은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운동하고 도서관도 가고 쇼핑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하교시간은 12시 반이나 1시 반정도였다. 집안일과 반찬 한 두 개를 하고 나면 금방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왜 이렇게 무기력해지는지 궁금했고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터넷 창을 띄워놓고 ‘육아휴직 우울증’을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 검색결과는 우울증으로 휴직을 하고 싶다는 글만 가득했다.

'나처럼 육아휴직을 하고 우울해진 사람이 없다는 건가?'

 홀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느낌이었다. 문득 아이 유치원 친구 엄마 중 지금은 일을 하지만 한 때 워킹맘에서 전업맘이 되었던 경험이 있는 분이 떠올랐다. 그리고 급하게 만날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그분은 나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휴직하니까 너무 좋죠?”

 그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질문을 바꿔 다시 물어보았다. 휴직하고 두세 달이 가장 행복한 때인데 별로 좋지 않냐는 물음이었다. 지금 나의 심경과 만나자고 한 이유에 대하여 솔직히 털어놓았다. 정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휴직했어도 회사 다녔을 때 정도로만 집안일을 해야 돼요”

 사람들은 처음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기준치를 높게 잡아 그 목표를 도달하려도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휴직을 하려고 했을 때 분명히 쉼표를 찍기로 했는데 4월부터 오히려 초반 스피드를 내야 하는 100m 달리기를 시작한 꼴이었다. 조금 여유를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니 부담감이 사라졌다. 나는 변화되었다. 식판이 아닌 개별 그릇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반찬 개수는 나의 컨디션과 일정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꿨다. 상황이 여의치 않는 날에는 반찬 가게나 밀키트의 도움을 받으니 우울한 감정이 달아나버렸다. 그리고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아늑하고 쾌적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매일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청소도 업무라고 정의 내렸더니 특별하게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해가 쨍쨍한 날에는 아이돌 음악을, 비가 보슬보슬 오는 날에는 클래식을, 지난밤 고민이 있었던 때는 고민과 관련된 영상을, 때로는 시집을 읽어주는 어플을 찾아서 들었다. 청소와 요리의 시간이 즐거워졌다. 집안일에 익숙해지고 습관이 되었더니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워졌다. 애당초 집안일 때문에 우울해질 필요가 없던 것이다. 티도 안나는 집안일을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항상 내 삶의 행복지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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