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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소리 Oct 22. 2023

학교 첫날과 감투를 쓴 날

[초등 육아휴직이라는 정서적 보상]  #3

 육아휴직 이후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3월 한 달 동안은 신선놀음을 하기로 결심했다. 딱딱한 책상에 앉아 정신없이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만지다가 혼자 점심 식사를 하는 날은 한동안 없을 것이다. 대신 아이와 손잡고 천천히 이야기 나누며 등교할 수 있고, 친구들과 브런치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힘이 솟아났다. 꿈에 그리던 일상을 보낼 수 있는 3월을 기대하며, 등교하는 아이를 위해 매일 쪽지를 써서 아이 몰래 필통에 넣어 보냈다.

'안녕? 너의 곁에는 너를 너무 사랑하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 꼭 기억해 줘. 벌써 학교 다닌 지 5일째구나. 얼른 보고 싶어 쪽!'

 나는 하교한 아이에게 냉큼 물어봤다.

"오늘 엄마가 필통에 넣어놓은 쪽지 봤어? 어떤 기분이 들었어?"

"아! 감동받았어. 마지막에 쪽! 이 있잖아."

 첫 번째 쪽지를 받은 아이 얼굴에는 행복이 머물고 있었고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줬다는 사실에 나의 쪽지 선물을 계속되었다.

'사랑해.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즐겁게 놀다 와. 태양보다 더 뜨겁게 널 사랑하는 엄마가.'

'학교 생활 잘 적응하고 있어서 너무 멋있어!!. 우리 늘 행복한 삶을 보내자.'

 나는 지금도 이 쪽지들을 잘 모아두고 있다. 간간히 쪽지를 다시 보면서 아이의 삶이 기쁨으로 가득 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본다.


 유럽을 다녀와서 바로 다음날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었다. 시차와 여독으로 인하여 입학식에 늦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무사히 참석했다. 내가 육아휴직을 하기로 결정했던 그 이유처럼 등교하는 아이의 첫출발을 응원해 줄 수 있어서 무척 행복했다. 아이가 조잘조잘 알려준 낯선 교실과 새로운 선생님, 아는 친구들도 두세 명 있다는 얘기를 듣다 보니 하루가 빨리 지나갔고 우리는 침대에 고단한 몸을 뉘었다.

'지이잉. 지이잉.'

 곤히 자고 있는데 알람이 울렸다. 알람을 끄기 위해 휴대폰을 봤는데 그것은 알람이 아니었다. 전화가 왔음을 알려주는 진동이었던 것이다.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 마냥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고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어디서 걸려온 전화일지 추측이 되어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내가 '여보세요'라는 인사말을 건네자 곧 친절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아기 담임 선생님인데요. 아가가 아직 학교를 안 와서요~"

'세상에. 늦잠을 자다니.. 나 진짜 초등맘 맞아? 큰일이다.'

 다급한 나의 속마음은 목소리를 통해 그대로 내비쳤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죄송해요. 저희가 유럽 여행을 다녀와서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돼서요. 어쩌죠?”

“지금이라도 빨리 준비하셔서 아기 보내시면 되니까 걱정 마세요.”

걱정 말라는 선생님의 한마디로 얼음장처럼 차갑던 내 마음은 온기로 충만했다.

“네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빨리 준비해서 보낼게요.”

통화가 끝나고 나는 가방과 옷을 챙기느라 우사인볼트보다 더 빠르게 집안을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꿈에서 헤매고 있는 아들을 얼른 깨웠다. 아이는 여독, 시차와 더불어 입학식을 가느라 긴장했던 탓에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안쓰러웠지만 12년 개근상을 받은 나이기에 학교는 꼭 가야 하는 곳이었다. 아이에게 지각이라고 말하면서 흔들어 깨웠다. 아이는 지각이라는 사실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멋있게 혼자서 교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지각이라는 사실이 너무 슬프고 창피하다고 했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상황이기에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세수와 양치를 시키고 학교로 뛰어갔다. 분명히 입학식 날에는 열려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학교 후문이 야속하게도 굳세게 닫혀있었다. 우연히 2학년 누나가 놓고 간 준비물을 챙겨주러 오신 학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후문 쪽 주차장을 통과하여 무사히 교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교실 뒷문에서 쭈뼛거리며 들어간 아이를 뒤로 하고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머그컵에 담긴 냉수를 한 번에 쭉 들이켜면서 재차 다짐했다.

'드디어 현실 육아 시작이구나!! 정신 차리자.'


 3월에 입학을 하고 난 뒤, 아이들이 학교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면 학부모 총회라는 것이 열린다. 유치원 엄마들과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에 따르면 1학년 학부모들은 대부분 참석한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도 뵙고 같은 반 친구 엄마들끼리 전화번호도 교환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학부모 총회에 참석한다고 설문조사를 마쳤고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학교에 가기 위해 문을 나서는데 학부모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니 조금 더 어른이 된 느낌이 들어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이가 유치원을 아파트 근처에서 다니지 않아서 아직 친한 엄마들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강당으로 향했다. 학부모 총회는 기대했던 것보다 늦게 끝났다. 교장 선생님 인사, 학부모 운영위원회 소개, 학교 프로그램 등 설명을 다 듣고 나서 각 반 교실로 가게 되었다. 아이가 열심히 다니고 있는 교실에는 낮은 책상과 의자, 꼬막손으로 오린 원숭이들이 있었다. 맨 왼쪽 줄 두 번째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알록달록한 아이의 이름표를 보니 아이가 얼마나 열심히 색칠했을지 상상이 되어 미소가 지어졌다. 교실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다 보니 담임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우리 반 친구들은 외동인 친구들이 많고요. 다들 엄청 밝고 에너지가 넘쳐요."

선생님께서 아이들 자랑을 해주시고는 곧바로 양해를 구하셨다.

"조금 더 설명드리고 싶은데 앞쪽 행사가 너무 늦게 끝나서요. 바로 녹색어머니회 반대표를 뽑아야 해요."

 그렇다. 놀이터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아이 학교에서는 학급 대표, 도서관 도우미, 식품검사 도우미, 녹색어머니회 반대표를 뽑는다고 했다. 이 중 학급 대표와 녹색어머니회 반대표가 할 일이 많은 편이며 최악은 녹색어머니회 반대표라고 들었다. 그 이유는 녹색어머니회 반대표가 직접 학부모들에게 연락을 해서 교통 지도가 가능한지 확인해야 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개인 사정으로 교통 지도를 못하는 분이 나타나면 그분을 대신하여 교통 지도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미 녹색어머니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역할에 지원해 주신 엄마들이 있었고 교실에 있는 사람들 중 나를 포함한 단 세명만이 아무것도 지원하지 않고 참석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녹색어머니회 반대표 분이 다 연락을 돌리셨는데 올해부터는 담임 선생님인 제가 하기로 했어요. 그러니 세 분 어머님들 중에 꼭 한 분 정해서 알려주세요~ 시간이 없어서 잘 좀 부탁드려요."

선생님께서는 홀연히 복도 밖으로 나가셨다. 침묵만이 흐르다가 어떤 분이 먼저 말을 시작했다.

"다들 일하고 계신가요?"

 처음 입을 뗀 분 바로 옆에 앉은 분이 대답했다.

"저는 일단 이번달에 퇴사하긴 했는데.. 언젠가 다시 일을 할 수도 있어서요."

 그러자 처음 이야기를 꺼낸 분이 다시 말했다.

"저는 가을에 다시 일을 할 수도 있어요."

 나는 우선 아무 말도 안 하고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이번 달에 퇴사했다는 분이 녹색어머니회 반대표를 해야 되는 것처럼 상황이 몰아졌다. 나도 모르게 저변에 깔려있던 정의로움이 툭 튀어나왔다.

"저도 휴직해서 일 안 하고 있거든요. 저희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할까요?."

 말을 뱉고 나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일면식도 없는 분을 위해서 왜 나섰는지 후회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세 명 중 세 명이 일은 안 하고 있는 동일한 상황이라면 공정한 방법으로 정하는 게 맞다고 믿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가위바위보를 했다. 매번 아이와 하던 놀이었는데 어른들과 하고 있자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가위, 바위, 보!"

 나는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녹색어머니회 반대표가 되었다.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아이고 어머님. 너무 감사드려요."

"아니에요. 가위 바위 보 져서 된 걸로요. 하하하하하"

 이타주의적인 사람은 자칫하면 오지라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며칠 뒤 교통 지도 스케줄이 나와서 확인해 보니 내년 3월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다행히 3월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유유자적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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