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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소리 Oct 22. 2023

둘 중에 어떤 걸 선택할래?

[초등 육아휴직이라는 정서적 보상]  #1

 이따금 4살 된 아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곤 했었다.

"젤리 먹고 싶어? 사탕 먹고 싶어?"

 그럴 때면 아들은 대부분 둘 다 먹고 싶다고 대답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다. 나 역시 멋모르던 꼬마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며, 부모가 되는 순간까지 쉼 없이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잊지 못할 선택의 순간들과 결과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51%의 선호도를 가질 수 없다면, 우리는 두 개 중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럴 때에는 한쪽을 포기하기보다는 전체를 얻기 위한 돌파구를 찾는데 집중해야 한다.


 나는 12년 차 회사원이자, 8년 차 엄마이다. 내 회사 생활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누락하지 않고 진급하기'

 회사에서의 마지막 직급이었던 책임 진급만 떨어지지 않으면 내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진급자를 2월에 결정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인사팀에게 확인해 보니 늦어도 2~3개월 전에는 휴직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했다. 아이가 8살이 되는 해 3월부터 육아휴직을 시작하려고 계획했기 때문에 회사에 육아 휴직할 것이라는 사실을 오픈하고 나서 1~2개월 후에 진급자가 결정된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나와 같은 연차의 남자 직원 한 명도 진급 대상자임을 이미 알고 있어서 잔혹한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희박해졌다고 생각했다. 회사의 이익 측면에서 휴식기를 갖는 워킹맘보다 계속 더불어 일할 수 있는 남자 직원을 진급시키는 것이 효율적인 일인 건 사실이기에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혼자 생각하다 보니,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어서 친구들에게 이러한 고민을 토로했다. 어떤 친구는 진급을 하지 못하면 워킹맘으로 살아온 커리어가 너무 아깝다고 말하면서 육아휴직을 포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육아휴직을 포기하라는 말을 듣자마자 생후 10개월부터 옆에 있어주지 못한 우리 아이가 유치원보다 커다란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을 응원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솟구쳤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 그동안 워킹대디와 워킹맘으로 지내온 우리 부부와 딸의 경력 단절을 피하기 위해 황혼육아를 자청하신 친정 부모님에게 쉼표를 주고 싶었다. 또 다른 친구는 휴직 예정 사실을 숨기고 진급을 하고 난 뒤 2분기부터 휴직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 방법을 듣고 처음에는 혹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마음 한편에 찜찜함을 갖고 살아가기 싫어서 그 방법은 선택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나는 육아휴직을 시작하기 10개월 전쯤 조직책임자들께 휴직할 것임을 미리 말씀드렸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는 육아휴직과 진급의 기회를 모두 얻었다. 혹자는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 자신은 그 운 역시 전체를 얻기 위한 돌파구를 치열하게 고민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나의 돌파구는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절실함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오너의 자세로 수행하려고 했고 가시적인 성과가 생길 때마다 엑셀에 정리하여 기록했다. 남들이 생각하지 않은 문제점을 제시하기 위하여 해당 업무의 전체 프로세스를 재점검하였고, 다른 팀원들보다 집요하게 기술 트렌드에 대해 공부하였다. 그리고 워킹맘으로 사는 동안 자주 참석하지 못했던 화합의 장에도 항상 얼굴을 내비쳤다. 무엇보다 잘했다고 생각하는 점은 빠른 업무 처리 속도와 정확도를 동시에 갖기 위하여 매일 아침 To-do list와 Check list를 정리하는 루틴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회사에 나의 존재를 어필하면서 10개월을 보내고 육아휴직을 시작하기 전 날, 실장님께 마지막 퇴근 인사를 드리러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원하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직 최종 발표가 나지 않아서 그동안 미리 말해주지 못했지만 별다른 일이 없으면 진급될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취업 합격 메일을 받았던 순간이 되살아났다. 20대 후반의 나는 엉엉 울면서 기쁨을 표현했다. 책임이라는 직급을 갖게 된 30대 후반의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쁨을 표현했다. '매우'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문을 닫고 나오면서 나는 다시 한번 믿게 되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쟁취할 수 있는 방법은 반드시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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