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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소리 Oct 22. 2023

J형 엄마의 방학

[초등 육아휴직이라는 정서적 보상] #7

 후덥지근한 더위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은 아침 9시를 훌쩍 지나고 있었다. 어제 피곤했던 탓에 생각보다 늦게 일어났다. 아이가 누워서 하품을 하며 말했다.

"후아암~ 엄마. 자고 일어나도 엄마가 계속 옆에 있으니까 너무 좋다."

"나도 함께 늦잠 잘 수 있어서 행복해. 더위도 우리 사이를 막을 수는 없지."

 아이를 꼭 껴안아주었더니 덥다고 얼른 떨어지라며 난리법석이다. 그래도 엄마는 이런 네가 참 좋다.

 

 드디어 첫여름방학을 맞이했다. 애시당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은 5개월밖에 없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때의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가장 걱정스러웠다. 방학 오전 시간 동안 어떻게 케어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대개는 오전 시간에 여러 학원을 다니게 하지만 6살 때부터 근시가 생긴 아이여서 학원에 계속 있게 하는 것이 불편했다. 천만다행으로 육아휴직 기간이 1년 추가되어 총 1년 5개월을 쓸 수 있게 되었고 휴직을 한 상태에서 맞이한 여름방학이기에 근심걱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MBTI 성격 유형의 J(Judging) 답게 아이와 방학 시간표를 작성했다. 태권도 학원이나 영어 학원처럼 반드시 해야 할 일, 내가 배웠으면 바라는 것,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두서없이 나열했다. 독서, 피아노, 체스, 미술, 과학 실험, 수학, 일기 쓰기 등. 그중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요일별로 나눴다. 나머지 빈 공간은 아이 스스로 채우게 하였다. 세부 계획은 개인 과외교사처럼 과목마다 아이의 속도에 맞게 정했다. 기상 시간의 경우 학교 다닐 때와 비슷하게 유지하려고 했다. 개학 후 쉽게 학교에 적응할 수 있게 돕고 싶었다. 이렇게 수립한 일명 '마미 스쿨'은 성공적이었다. 일주일 동안은 아이가 시간표대로 잘 생활했다. 그 덕분에 여름방학 동안 높은 음자리표와 낮은 음자리표의 계이름, 왼손과 오른손 연주법을 익혔다. 체스도 알려줬는데 오목과 장기 두는 법은 할아버지께 배워서 그랬는지 금방 익혔다. 둘 다 게임하느라 다음 과목 시간을 건너뛰어 당황한 적도 했다. 다만, 어린 시절 나의 여름방학이 떠오르자 시간표대로 생활하고 있는 아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나의 여름방학을 언제나 바다와 함께였다. 부모님 고향이 바닷가 근처에 있는 시골이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의 여름휴가는 늘 친할머니댁과 외할머니댁으로 떠났다. 친할머니 댁에서 3밤, 외할머니댁에서 3밤씩 공평하게 잠을 잤다. 외가에는 또래의 사촌들도 있어서 더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1년에 한 번씩 만나는 사촌들이지만 우리는 자주 만난 사이처럼 보자마자 신나게 놀았다. 그중에서도 바닷가를 가는 날이면 우리는 하루종일 물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해수욕장이 아닌 바다였기에 취사도 가능했다. 점심은 주로 아이들이 가장 원하는 라면을 먹었다. 아빠가 종종 자맥질을 해서 직접 딴 조개나 성게를 넣고 끓인 라면 국물은 기가 막혔다. 배고픈 상태에서 먹는 라면은 실패가 없는데 조개 육수로 끓인 라면은 환상 그 자체였다. 어릴 적 내 키의 3배쯤 되는 텐트를 설치하고 모닥불을 켜놓은 채 장기자랑도 했다. 사촌 오빠 '불새' 드라마 OST를 불렀고 나는 그 당시 BTS급 인기를 가진 룰라의 '3! 4!'를 재현했다. 시골 바다에서 아빠한테 3시간 정도 특훈으로 배운 수영 덕분에 어른이 된 지금. 아이와 튜브 없이 물에서 떠다닐 수 있다. 아빠는 나에게 파도가 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수영을 알려주셨다고 하는데 멋이 없는 건 사실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유형을 꼭 배우고 싶다. 그리고 여름방학의 꽃은 바다를 앞에 두고 텐트에서 하룻밤을 자는 날이었다. 찐득한 소금을 머금은 바닷바람이 살랑이고 철썩 거리는 파도 소리에 잠이 들면 기분이 좋았다.

 내 아이에게도 여름 방학을 떠올리면 나와 같이 웃음 짓게 하는 날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가 만든 생활 계획표를 철저히 무시하기로 했다. 아이에게 시간표 신경 안 쓰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물어보니, 엄마와 함께 축구와 농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동네 농구장으로 향했다. 자신보다 빠르지 못한 나의 엉성한 드리블을 보고는 한껏 자신감이 차올랐고 아이는 신이 나서 연달아 슛을 쏘아댔다. 농구에 재미가 떨어질 무렵 축구를 하기 위해 장소를 옮겼다. 서로 같은 팀이 되어 패스 연습을 하다가 다른 팀이 되어 공격과 수비 놀이를 했다. 나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킥킥 대면서 아이와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고 무더위가 엄습할 무렵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아이는 엄마랑 체육활동을 한 그날에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매년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조개를 따주었던 아빠처럼 된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 겨울 방학 때는 펑펑 눈 내리는 날 눈싸움도 하고 눈썰매도 타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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