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의 유명세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 재미있는 영상을 보던 도중 한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MBC 유튜브 채널의 <라디오 스타> 짧은 영상이었다. 2019년 5월 15일 방송이었는데, 류승수 배우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당시 류승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지만, 정작 돈이 없다면서 우스갯소리로 저 명언을 남겼다. 덩달아 MC 김구라도 “그거는 말이야! 모든 연예인의 꿈이야!”라고 답하며 동조했다. 보통 연예인들은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아야 수입을 벌 수 있는데, 어떻게 아무도 자신을 몰랐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했을까? 연예인이라면 돈도 벌고 얼굴도 유명해지는 것이 일석이조 아닌가?
사람들에게 얼굴이 많이 알려진 유명인은 돈을 많이 벌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유명인들이 전부 돈을 잘 번다는 것은 아니다. 연예뉴스에 알려진 톱스타들은 몇 천, 몇 억 원은 우습게 벌지만, 얼굴만 알려진다고 그렇게 돈을 싹 쓸어 갈 수 없다. 그런데 TV와 인터넷에 연예인들의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유독 두드러져서 그런지, 사람들은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면 돈도 많이 벌 것이라고 착각한다. 마치 유튜버들이 앉아서 입담만 몇 시간 털면 직장인보다 많은 수입을 쉽게 버는 것처럼 보이듯이 말이다.
마찬가지로 유명 동네서점은 언론에 인터뷰도 많이 하고 알려졌기 때문에, 장사가 잘 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동네서점의 안락한 분위기와 독특한 책 진열은 사람들을 이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독립출판물이 반짝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대박을 터뜨렸을 때, 독립출판물과 독립서점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단하고 엄청난 스펙을 가진 작가가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한 사람이 쓴 책이라서 그런지, 정식 출간 이후에 많은 책이 팔렸고 2권까지 나왔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독립출판물을 만들기 시작했고, 동네서점에서도 책 쓰기 강의를 열었다. 독립출판물과 독립서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작성하겠다.
독립출판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 덩달아 동네서점의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어느 지점이나 가도 비슷비슷한 대형서점보다 동네서점은 좀 더 특별해 보이는 외관이 사람들의 시선을 이끈다. 사람들이 자주 가는 동네서점은 수험서나 전공서적보다 내가 관심 있는 책을 바로 찾을 수 있다. 사장님 취향의 클래식과 재즈를 들으면서, 여유롭게 책을 구경할 수 있다. 독립출판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서점이라면, 대형서점에서 볼 수 없던 독특한 책들을 볼 수 있다.
거기다 예쁘게 꾸며진 공간이라 사진도 예쁘게 나온다. 책 표지도 소품으로 잘 어울려서, 잘만 이용하면 우아하게 책 읽는 자신의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예쁜 유리잔에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펼치며, 가슴을 울리는 구절을 발견하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유명한 작가가 북토크를 연다면, 가까이 보고 책에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이런 손님들의 모습을 본 서점 주인의 심정은 어떨까? 내가 운영하는 서점에 손님들이 많이 방문하니 흐뭇할까? 당연히 사장님도 손님이 많이 오면 기분이 좋다. 그런데 손님만 많이 오고 매출에 변화가 없다면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서점은 책을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는데, 문제는 방문한 손님들이 모두 책을 구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와글와글 모여서 책을 보고 있으니, 멀리서 보면 서점에 손님이 많아 매출도 많이 는 것처럼 보인다. 한 명도 없는 동네서점보다 수입이 나은 것은 맞다. 그러나 언론 인터뷰도 많이 하고 서점에 사람들이 많은 것치고는 돈이 별로 없다. 즉, 앞서 언급한 류승수의 말처럼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돈이 없는 셈이다. 겉으로 봐서도 사람들이 없으면 장사가 잘 되지 않다고 불평을 할 수 있지만,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 경우 수입이 적다고 토로하기 힘들다.
아울러 좁은 동네서점에 사람들이 많으면 안락한 분위기가 갑갑한 환경으로 변한다. 사진 찍는 소리, 수다 떠는소리, 이동하는 소리 등 온갖 소리가 다 들린다. 만약 새로 방문한 손님이 나름 힙하다는 동네서점을 방문했는데 발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면, 서점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실망하고 돌아갈 수 있다. 게다가 사람들이 책을 하도 많이 만져서 판매하는 책이 손상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이 방문한 만큼 수익을 벌지 못하면, 주인 입장에서는 더 이상 유명해지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손님인 내 입장에서도 아주 가끔 자주 가는 서점이 너무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나밖에 모르는 서점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서점 사장님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알려지면 좋겠다. 기왕 유명해졌다면 그만큼 돈도 많이 벌어 서점을 지속적으로 잘 유지하시길 바란다.
참고자료
유지영.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은 사실". 오마이뉴스. 2018.7.18.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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