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서점과 여성 손님
오랜만에 강원도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코로나 때문에 재작년과 작년에는 여행을 못 간 한을 풀기 위해서인지, 비가 많이 내리는 중에도 바다에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가족은 바다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지역에서 유명한 서점도 방문했다. 서점을 방문하고 숙소로 돌아가던 중 부모님은 서점에 죄다 젊은 여자애들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보기에는 서점에 남자들도 좀 있었다. 그렇지만 대다수 서점에 손님 성별이 여자인 건 맞았다. 특히 동네서점은 여성 손님의 비중이 더 컸다. 분명 남자들 중에서 장서가도 많고 서점 운영하는 사장님도 있는데, 서점에서 북토크, 독서모임을 하면 거의 대부분은 여성들이 많이 보인다.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책을 더 많이 읽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여성 작가의 책이 많아서 서점에 여성 손님들이 증가한 것일까? 과연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더 많이 동네서점에 방문할까? 수많은 질문에도 딱히 속 시원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일단 최근에 여성이 남성보다 더 독서를 많이 하는지 알아보자.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종이책/전자책/오디오북 종합 독서율이 성인 남성은 48.1 퍼센트이고 성인 여성은 46.9 퍼센트로 성인 남성이 조금 더 높다(72쪽). 물론 세대, 소득 등을 세분화하지 않고 성별이라는 기준 하나만으로 통계를 낸 결과이다.
2021년 서울도서관 도서분야별 성별 대출 통계에 의하면, 남성이 6,565권, 여성이 4,680권으로 더 높지만, 20대 여성이 885권으로 640권인 20대 남성보다 책을 더 많이 대출했다. 30대 여성은 1,330권, 30대 남성은 1,225권으로 여성이 더 많지만, 서울도서관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낸 통계라 전국에서도 20, 30대 여성의 대출 통계가 더 높은지 알 수 없다.
다독가인 사람들이 동네서점을 많이 이용한다고 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서점에서 책을 구매하거나, 책을 대여해서 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결국 내 주관적인 생각을 토대로 동네서점에서 여성 손님이 많이 보이는지 그 이유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2015~16년 메갈리아라는 사이트가 유명해지고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그 이전에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크게 이슈가 되지는 못했다. #ㅇㅇ계_속_성폭력 이란 태그를 달고 성폭력을 당했던 과거를 고백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유명인의 권력형 성범죄를 폭로하는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젠더 감수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출판계는 이런 사회적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옛날에는 대형서점에 방문하면 페미니즘 도서는 여성학 코너에 몇 권 있었지만, 지금은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페미니즘 책도 이전보다 얼마나 많이 나왔을까?
국립중앙도서관에 자료검색을 해 본 결과, 2000년부터 2014년까지 단행본으로 260건이 나왔고, 2015년부터 2022년까지 525건이 나왔다.* 국내 단행본만 기준으로 보았을 때도 페미니즘 도서가 많이 출간된 것을 알 수 있다.
*검색 날짜는 2022년 9월 3일로, 키워드 검색으로 ‘페미니즘’만 넣었다. 학위논문, 학술지 논문, 잡지를 제외하고 오로지 단행본(한국어)으로 검색했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페미니즘 도서를 많이 읽을까? 페미니즘 도서는 여성학으로 분류되지만, 대부분 사회문제, 사회학 섹션에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독자가 페미니즘 도서를 많이 읽는다고 보기에는 애매하다.
『20대 여성』에서 페미니즘 인식에 관해 통계를 낸 결과, 여성들 중에서도 20대 여성이 페미니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고학력 고소득 여성일수록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는다고 나왔다. 대학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20대 여성이 62%가 페미니즘 성향을 보였다.** 물론 모든 대학생과 대학 졸업자들이 독서를 많이 한다고 단언할 수 없지만, 앞서 언급한 서울도서관 대출 통계에도 2, 30대 여성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고려하면 페미니즘 도서를 구매하는 소비자층도 2, 30대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
출판사나 독자나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으니, 동네서점도 당연히 페미니즘 도서를 많이 들여놓는다. 한 술 더 떠 동네서점은 대부분 페미니즘 도서를 전면에 내세우니 2,30대 여성 손님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 참고한 표는 20대 성별 학력별 페미니즘 성향이다(표 2-3-4). 20대 여성 중 고졸 이하는 38%의 페미니즘 성향을 보인다고 나온다.
*** 아쉽게도 서울도서관 대출 통계에는 학력을 기준으로 통계를 나누지 않아, 답변한 여성들이 대학교 재학(혹은 졸업) 상태인지 알 수 없다.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자신의 글을 책으로 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소설가나 시인은 되기 어렵지만, 에세이는 누구나 쓸 수 있다. 독자 입장에서 에세이는 다른 장르의 책 보다 가볍게 읽을 수 있고, 남들에게도 선물하기 좋다.
동네서점에서 내가 가장 본 책이 유유 출판사에서 나온 “ㅇㅇ의 문장” 시리즈,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출판의 “아무튼 ㅇㅇ” 시리즈이다. 한겨레 기사에 나온 것처럼, 두껍고 어려운 내용보다 가볍고 누구나 쉽게 읽히는 책들이 많이 나온다. 이렇게 에세이가 인기를 끌게 된 이유에는 출판계가 2, 30대 여성을 독자 타깃으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아마 여성들이 남성보다 어렵고 논리적인 내용보다 쉽고 가벼운 소소한 내용을 추구한다는 편견에서 비롯되는 것 같은데, 과연 실제로 여성들은 에세이를 더 선호할까?
다시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를 살펴보자. 남성과 여성의 도서 선호 분야 중 가장 높은 분야는 소설(장르 소설 포함)이었다(132쪽). 그렇다면 에세이(수필) 비중은 어떨까? 남성은 31. 1 퍼센트, 여성은 39 퍼센트라는 결과가 나왔다.**** 큰 차이는 없지만 여성이 좀 더 에세이를 많이 읽는다고 볼 수 있다.
**** 성인 독서 통계 중 남성은 종이책 9.2, 전자책 5.3, 오디오북 16.6 퍼센트가 나왔다. 여성은 종이책 13.9, 전자책 8.7, 오디오북 16.4 퍼센트로 나왔다.
동네서점에서는 에세이만큼 팔기 좋은 책이 없다. 에세이 책은 대부분 표지도 예쁘고 가격도 20,000원 이상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를 싸매며 공부하듯이 읽어야 하는 인문서적과 달리, 에세이는 지친 상태에서도 편하게 읽힌다. 게다가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에세이 작가라면 여성 독자에게 공감대를 많이 형성할 수 있다. 이런 에세이는 페미니즘 이론서보다 더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책에서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을 꿈꿀 수 있게 한다.
페미니즘뿐 아니라 환경, 계급, 장애인, 인권과 관련된 에세이도 많이 출간되고 있다. 이런 책들은 대형서점 베스트셀러에 한 권 정도 있지만, 동네서점에는 책장과 매대에 많이 있다. 심지어 동네서점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 동네서점과 에세이는 떨어질 수 없다. 동네서점에는 여성 손님들이 많이 오니, 서점 행사나 강의에도 여성들이 많이 참여할 것이다.
지금까지 통계와 함께 동네서점에 여성들이 자주 보이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자료를 찾아보느라 나름 애를 썼지만, 통계를 한 번도 돌려본 적 없는 비전문가라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혹시 서점에 대한 연구를 하시는 분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과연 동네서점에 여성 이용자가 많은지 제대로 된 연구를 시도하셨으면 좋겠다.
참고 문헌
국승민, 김다은, 김은지, 정한울. 『20대 여성』. 시사IN북. 2022.
신지민. “작고 가벼운 책들이 온다”, <한겨레 21>, 2022. 8. 13.
2021년 서울도서관 도서분야별 성별 대출 통계
문화체육관광부.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국립중앙도서관
https://www.nl.go.kr/NL/contents/N10100000000.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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