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의 텃밭일기
토마토가 잘 익었는데, 이제 따셔야겠어요. 그래야 다른 토마토들도 잘 자라죠.
옆 텃밭을 가꾸는 인생 선배가 내게 말했다. 순간 아차 했다. 빨갛고 둥그런, 복스럽게 자란 토마토를 감상하기 바빴던 나머지 나는 그런 토마토를 따야 한다는 생각을 몇 주째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욕심에 다른 작고 탐스러운 토마토들은 그 양분을 공급받을 기회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비단 토마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초짜인 나보다 앞서 텃밭을 가꿔본 듯한 포스를 풍기는 인생 선배는 내게 또 한 가지를 주문했다. 내가 당근이 잘 자란다고 이야기하자 대뜸 내 말을 잘라먹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속아 내셔야 해요
또 한 방 먹었다. 모종이 아닌 파종으로 키운 당근이 몇 주째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모습에 어깨가 으쓱했었지만, 이내 내 어깨는 내려가고 말았다. 역시나 나는 튼튼하게 잘 자라는 당근의 모습에 심취한 나머지, 일렬로 빼곡하게 자라는 당근이 과연 잘 자라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픔을 무릅쓰고 당근을 속아 내야 살아남은 당근들이 무럭무럭 잘 자랄 수 있는 터. 인생 선배의 말이 맞았다. 그러나 마음은 아팠다. 누구에게는 기회를 빼앗는 법이기도 하거늘. 그러나 한정된 자원 속에서 모두가 잘 자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이런 씁쓸함은 사회로 치환 시켜봐도 우리 주변에 참 많다. 서울과 지방, 수도권과 소도시, 경제 개발 시기 경부선 축과 그 외의 도시들. 그런 속아 내기 정책 덕분에 지금의 한국 사회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한정된 자원 최고의 효율을 뽑아냈기에 기적과도 같은 한강의 기적과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 지금의 순간에 도달한 한국 아닌가.
이제는 효율보단 소외된 것들에 힘을 실어주려는 시대가 됐다. 그런 정부가 들어섰다. 소비 쿠폰도 수도권이 아니면 3만 원을 더 준다. 그간의 설움과 희생을 위해서란 명목으로 말이다. 역으로 말하면 집중과 효율을 통한 결과물 보다 분산과 다양성을 통한 결과물을 내기가 더 큰 차원의 효율을 가져온다는 전략 아니겠는가.
내가 가진 텃밭은 한정된 자원이어서 속아내기를 통한 효율을 당분간 지속해야 한다. 나는 부농도 아니고, 여러 개의 텃밭은 가진 사람도 아니겠으니 말이다. 그러나 국가의 운영은 또 다른 접근법이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