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 무자화두
명상이란 참선이란 어떤 것인가? 견성 즉 본래 성품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상의 희로애락의 감정과 욕심, 화냄, 어리석은 마음을 걷어내고 본래의 마음을 찾겠다는 수행이다. [“본래의 마음, 본성, 본면목, 말들은 좋으나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러한 말들이 견성한 스승이 제자에게 일러줄 때는 구체적인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2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에게는 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잡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감정과 생각들이 잦아들게 하고 본성을 찾으려는 수행이다. [이제 방향을 좀 잡을 수 있다. 즉 감정과 생각을 걷어낸 상태를 본성이라고 한 것 같다. 지난 글 “주의집중과 명상(‘어외어‘)은 어떻게 다른가”에서 ‘어외어‘를 “기저 상태 마음”의 의미로 이야기하였다. ]
그러나 그동안의 삶을 통하여 켜켜이 쌓여 있던 생각들이 내가 결심 한번 한다고 이런 생각들이 금방 가라앉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러 수단들이 등장한다. 호흡명상, 화두참선, 기도, 독경, 염불 등등이 이러한 감정과 생각들을 가라앉도록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방법들이다. 화두는, 보통 논리적인 생각으로는 대응하기 힘든, 아니 힘든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주제를 줌으로써 생각 굴리기를 멈추게 하는 한 방법이다.
조주 종심 선사에게 한 선승이 물었다.
“부처님께서 모든 만물에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 선사가 대답하였다.
“없다(無)”
조주무자 화두는 유(있다)라 해도 안되고 무(없다)라 해도 안 되는 상황에서 수도자는 숙제를 받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스승이 가르치는 제자를 놓고, 단순히 모순되는 상황을 억지로 만든 이야기는 물론 아닐 것이니,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불철주야 ' 왜 무라 하셨을까?' 스승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매달린다. 이렇게 하루 24시간을 일념으로 매달린다. 답을 얻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 “24시간 일념“을 디자인한 것이다.
그러면 왜 무라 하셨을까? 여기서는 뇌과학적 입장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을 배운다.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장기)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억은, 우리가 어떤 사건을 경험할 때, 감각 신경과 두뇌의 해석을 통해 지각이 이루어지고 지각이 인식(예를 들어, 저기서 걸어오는 친구의 얼굴이 보였으면 지각된 것이고, 친구 '영수'구나 알아보면 인식된 것의 의미임)된 결과가 그대로 시냅스 연결이 강화되며 연결 루트로 만들어져 남을 때 기억이 된다.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를 보며 엄마를 배우고 소통을 배우고, 자라며 걷기를 배우고 말을 배우며 세상을 배워나간다. 그러면서 왕성하게 두뇌 시냅스 회로를 연결해나간다. 그래서 엄마를 생각하면 두뇌에 반짝거리며 전기가 통하는 회로가 생긴다. MRI로 찍으면 이렇게 활동하는 두뇌 부위가 나타난다. 그리고 두뇌 속의 뇌신경 하나에 작은 전극을 꼽고 관찰하면 엄마 신경에 전기 펄스가 발생한다. 그러니까 ‘엄마‘ 하든가 ’나‘하면 반짝거리는 회로가 생긴다. 우리가 엄마를 학습하고 ’나‘를 학습해서 배운 것이다. 내가 배운 것이 회로 연결로 기억된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시냅스 연결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배운 단어들과 개념들이 시냅스 회로로 만들어진다. 경험하며 배운 것이 회로로 남는다. 내가 ’ 엄마‘를 경험하며 만들어진 회로가 나의 ’ 엄마‘회로이다. 나의 엄마에 대한 개념이다. 그러므로 나의 '엄마‘와 내 친구의 '엄마’는 같아야 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나의 '정의’와 친구의 '정의’가 다른 것이고 나의 '사랑’과 친구의 '사랑’이 또한 다르다. 즉 우리 두뇌 회로는 완전히 개별적 개인적 회로이다. 우리가 ‘정의’, ‘사랑’ 하지만 같은 것을 의미하지 못한다. 물론 단어가 하나이기 때문에 다 같은 정의와 사랑으로 이야기하지만,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모두가 인식 세상의 개념들일 뿐이다. 아마 선승의 스승인 조주 스님은 선승이 말하는 불성을 정확히 이해하시고 분명하게 없다고 하셨을 것이다.
앞글 “나는 어떻게 왔을까”에서 우리는 실존 세상에 머무르며 인식 세상으로 살고 있다고 하였다. 이 용어를 사용하면 부처님의 만물에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편재하는) 있는 불성은 실존 세상을 말씀하시는데 선승은 자기 머릿속에서 반짝거리는 ‘불성‘ 회로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 “그런 불성은 개에게는 없다”라고 하신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불성은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일뿐이라는 가르침을 일깨우는 화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