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인식과 모호성

감각 정보 처리 과정

by 방석천

지난 글 “나는 어떻게 왔을까?”에서 우리는 실존하는 세상과 인식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하였다. 두 세상의 구별은 끊임없이 강조되어왔다. 불교의 색증시공(色卽是空; 색色은 색깔의 색이기보다는 보이는 대상, 개념을 총칭한다고 볼 수 있다) 은 바로 인식 세상(색으로 인식하는 세상)과 실존 세상(공空의 세상)의 차이를 극명하게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쉑스피어는 “There is nothing either good or bad, but thinking makes it so.”(“세상에 좋은 것이거나 나쁜 것이란 없다.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도 단적으로 두 세상의 차이를 지적한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메커니즘은 감각 기관으로 들어온 정보들과 뇌의 이들 정보 해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오감을 통해 세상을 감지하고 이들을 바탕으로 세상을 그다. 우리의 시각 정보는 뇌가 받아들이는 감각 정보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 반을 차지하며 세상 인식의 가장 중요한 정보원이다. 우리는 어떻게 사물과 풍경을 보는가?

우리 눈에 비친 풍경은, 사진기의 건판에 해당하는, 망막에 투영되어 망막에 밀집한 광수용체에서 검출한 위치, 빛의 색깔과 세기를 뇌에서 해석하며 인식된다. 이 정보들은 약 100만 개의 시신경세포로 구성된 시신경 다발을 통하여 뇌의 시상(Thalamus)으로 전해진다. 이때 시신경은 단순한 전달 역할이 아니라, 시각 정보를 집산하고 변환하여 일종의 코드화 된 작동전위(action potential)를 발생시킨다. 이 디지털화된 작동 전위가 눈에서 받아들인 모든 시각 정보를 전달한다.

각 시신경은 망막의 해당 영역, 즉 검출 영역을 갖고 있으며 검출 영역 내에 분포한 광수용체로 들어온 신호를 집합 변환하여 디지털화한 정보로 전달한다. 각 시신경의 검출 영역은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뉘어 있으며 두 영역은 서로 대응되는 반응 신호를, 즉 양(강화)과 음(억제)의 신호를 내보내도록 구성되어있다. 따라서 두 영역을 아우르는 퍼져 있는 빛 신호에 대해서는, 서로 상쇄 작용을 함으로써, 시신경이 시각 신호, 즉 작동전위를 내보내지 않는다. 반면, 중심부나 주변부에만 들어오는 작은 점 빛 신호에 대해서는 강한 작동전위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시신경은 점광원에 대해 강하게 반응하는 반면 검출 영역을 덮는 퍼진 광원에 대해서는 약하게 반응한다. 그러므로 시각 정보는 콘트라스트에 민감하게 구성된다.

시신경은 뇌 중심부에 위치한 시상(thalamus)으로, 정확히는 시상 내부의 LGN (Lateral Geniculate Nucleus; 측슬핵)으로 연결되며 시신경이 전하는 정보는 LGN에서 1차 정보처리를 거쳐 후두엽에 위치한 PVC (Primary Visual Cortex; 일차 시각피질)로 그리고 측두엽과 두정엽 피질로 전해지며 처리과정을 거친다. PVC에서는 들어온 정보로부터 선, 곡선, 윤곽을 추출하고 이들로부터 모양을 추출한다. 이 상태에서 뇌가 인식하는 정보는 윤곽으로 존재하는 마치 뎃상의 이미지와 바슷할 것이다. [참조; E. Kandel; The age of insight (The brain's perception of visual images)].

이렇게 일차 시각 정보로부터 추출된 윤곽과 모양으로 이루어진 상향식 (감각기관에서 뇌로 향하는) 데이터는 기억되어 있는 정보들, 경험, 관념, 감정 등의 대뇌 피질에 산재되어 있는 기존 정보들과의 매칭 과정을 통해 망막으로 들어온 대상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진다. 이는 마치 컴퓨터뮬레이션을 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뮬레이션은 시작점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며 따라서 그려지는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현상의 씨뮬레이션에서도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다변수 현상뮬레이션의 모호성이다.]



인식의 모호성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루빈 잔’이다. (그림 참조) 뇌의 시뮬레이션이 가운데 흰 부분을 주목하여 출발하는가 또는 양쪽의 검은 부분에서 출발하는가에 따라 인식되는 상은 다르게 된다. 또는뮬레이션의 출발점이 잘못되면, 예를 들어 거리를 잘못 잡든가하면, 인식된 상과 대상이 일치하지 않을 수가 있으며 이때 사물 인식은 재차뮬레이션으로 인해 지연되게 된다. 우리의 뇌가 특히 빠르게 변하는 시각 정보를 충분히 빨리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물 인식이 금방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이러한 상향식의 데이터 정보 추출과 하향식의 기존 정보와의 매칭 체계는 시각 정보만이 아니라 다른 감각 기관의 정보처리에서도 마찬 가지로 적용되는 뇌의 정보처리 과정으로 생각된다. 즉 뇌의 세상 인식은 기억 정보와의 매칭을 통해서 이루어지므로 세상 인식은 선천적이라기보다는 배워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갓난아이의 인식이 처음에는 느리다가 급격히 빨라져 가는 것이 사물과 언어 등을 통해 배운 기억이나 개념이 쌓여가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가 인식하는 마지막 결과물은 비록 같은 망막 입력정보로부터 출발하더라도 얼마든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루빈 잔의 경우는 매칭 때 우연한 시작점 선택이 인식 결과의 차이를 만들고 있다. 게다가 감정이나 기억의 피드백까지 고려하면 입력 데이터는 더욱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인식 과정에서 이러한 다양성은 피할 수 없으므로 우리 각자가 그리는 세상 그림은 아주 개인적인 세상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보고 느끼는 세상이 한계를 갖고 있으며 편향된 세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실존 세상이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답답하고 절망적인 것은 아니라고 위로할 수 있는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즉 우리의 인식 기능은 매우 한정되어 있고 또 편향되어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우리에게 위안이다. 오늘 저녁 내가 한 중요한 결정이 또는 쓴 글이 내일 아침에는 아주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내일 아침에 세상은 단지 사소한 변화로도 얼마든지 희망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과학은 이야기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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