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오해
오늘 드디어 사무실 이사를 했다. 이사 생각을 하면서 지난 두 달간 머리가 무거웠었는데 아직 짐을 정리할 일이 남아 있으나 옮기고 나니 마음이 가볍다. 요즈음에는 행동반경이 집 주변에서 뱅뱅 돌아 좀 떨어져 있던 사무실을 정리하고 집 지하실 공간을 마련하여 집기와 책들을 옮기었다. 정리한다고 했어도 여전히 짐이 많은 모양이다. 이삿짐센터에서 온 기사가 보자마자 짐이 많다고 불평을 한다 기사와 조수, 두 명이 왔다. 기사는 호리호리하고 말이 빠르고, 조수는 체격이 건장한 조선족인 듯한데 말은 좀 서투나 말없이 일하기는 오히려 효율적이고 열심히 한다.
기사는 내 집기들이 오래된 것을 보고 감탄을 하며,
“얼마나 오래된 가구들이에요?”
“30년 넘은 것들도 있어요.”
...
그러면서 처음에는
“짐이 너무 많아요. 계약하신 거보다 많아요. “
“우리는 이 일이 10년이 넘었어요. 저희가 프로니까 잘 알아서 해드려요. 말을 자꾸 하시면 일이 느려져요.”
(‘왜 그러지, 별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라며 윽박지르던 기사의 말투가 좀 누그러진 것 같다.
“저희가 본받아야 할 분이신 것 같아요.”
구청에 수거를 신청하고 내어놓은 가구들을 보면 새것이나 다름없는 사무 집기들이 너무 많다. 소비가 미덕인 요즈음 세상에 절약이 절대 미덕이라고 믿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젊은이인 것 같다. 짐을 옮기는 모습들이 너무 거칠어서 불안불안하였으나 깨지고 쉽게 망가지는 짐들이 아니어서 큰일 없이 차에 짐 싣기는 빨리 끝이 났다.
"같이 타고 가시겠어요?"
"예 그러지요"
그리고는 기사가 운전하는 2.5톤 트럭 앞좌석에 함께 타고 출발하였다. 그러면서 기사는 자기도 방배동에 살다가 부모님과 남양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 동네가 자기에게는 익숙하다고. 지금은 쫄딱 망해서 쌍계동에서 힘들게 산다고 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요?”
라며 위로의 말을 건네고 보니 너무 상투적인 말인 것 같다.
“지금은 백세시대잖아요. 오래 사니 인생의 굴곡이 반드시 몇 번은 있게 되어 있어요. 여러 고비를 지내노라면 금수저가 따로 없어요. 금수저는 첫 매를 좀 나중에 맞는다는 것인데, 맞을 매는 먼저 맞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고생은 젊어할수록 오히려 약이 되어요.”
평소의 내 생각을 말하니,
“격려의 말씀이시네요."
"요새 젊은이들이 좀 너무 단편적으로 세상을 보고 쉽게 좌절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너무 금방 욱하는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럴수록 좌절되기 쉬운데.”
“예, 예.”
“젊은이들이 쉽게 좌절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너 관계의 오해에 있어요. 우리는 세상에 불쑥 태어났잖아요. 그러니까 세상이 우리를 위해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나와 너의 관계를 평등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삼자 관점에서는 우리 두 사람을 평등하다고 당연히 말하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나-너의 관계가 평등할 수 없잖아요. 내가 보는 나-너의 관계는 그야말로 존재적 절대적 관계라고 생각해요.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고 너는 내가 방문한 세상의 한 부분인 세상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나-너의 관계는 나-세상의 관계잖아요. 세상이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세상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점이 분명하잖아요. 이 관계의 오해가 우리를 쉽게 좌절시키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맞아요. 그래요.”
그러는 사이 이삿짐 트럭은 남부순환로에서 방배로로 좌회전해서 꺾어 내려간다.
“이 길이 저에게 낯익은 거리예요. 여기 비싼 집들이 많은데 물난리 나고 그랬잖아요.”
“산사태 나서 많은 집이 쓸려 내려가고, 방배역까지 진흙탕이 밀려 내려갔었지요.”
지금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러는 사이 이제 이삿짐을 풀어놓을 장소에 도착하였다.
“저희들이 잘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처음에는 까칠하게 느껴지던 기사의 호의적인 말에 나도 한결 기분이 누그러진다. 젊은이들은 오히려 쉽게 통할 수도 있구나 느껴진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방황하고들 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