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자유 공간을 그리다.
이번 사무실을 옮기며 나는 기대가 크다. 일주일 전에 사무실을 옮겼는데 아직 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 일단 옮겨 놓고 큰 가구들을 배치하고 나니 나머지는 자질구레한 그러나 일일이 생각하고 위치를 정하며 시간이 걸리는 작업만 남아선지, 짐 정리가 잘 진척되지 않고 있다. 지난번 사무실과 크기와 모양도 비슷하다. 그러나 이전 사무실은 바닥에 직접 앉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으나 이번에는 바닥에 매트를 깔고 그위에 장판으로 마무리를 해서 털썩 앉을 수도 있고 요가나 맨손 체조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전 환경은 책상 위 작업을 위한 환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책상 위에 컴퓨터와 주변기기들이 있으니까 좀 어수선해서 결국은 컴퓨터를 열고 무엇이든가 들여다보는 패턴이 되곤 하였다. 책상 위에 노트를 꺼내놓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며 컴퓨터에게 너무 끌려다니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져왔다. 그러나 컴퓨터 앞에서 좀 피곤하기라도 하면 손쉬운 메일 체크하다가 웹서핑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후회를 매번 하면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트랩을 이번 사무실 이전을 계기로 바꾸자는 것이 내 바람이다. 매트 장판 바닥은 활동 공간을 훨씬 확장시킬 것이고 컴퓨터 트랩에서 좀 자유스러워질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책상 위가 정리되지 않고 각종 물건들이 쌓여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새 사무실 생활이 지난 며칠간 주로 바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책상 위가 정리된다 해도 이러한 바닥 공간 이용을 이어가자는 계획이다. 바닥 공간에서 지금 계획하고 있는 작업은 글쓰기와 명상 그리고 운동이다. 이 운동은 내가 면역력이 떨어질 때를 위해 고안한 “면역순간대처법(이라고나 할까)”을 실행하는 것이다. 매년 봄 3-4월은 어려운 시기다. 올해도 3월 중순경부터 시작한 감기가 아직도 감기 바이러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가 아닌 것 같다. 조금만 무리를 하면 금방 다시 코가 좀 불편해진다. 감기 재발 조짐이다. 이런 경우 나만의 대처법이 소위 면역대처운동이다. 기본적으로 혈액 순환 운동법인데 이를 한다면서도 환경이 잘 지원되지 않으면 ‘에이.. “하고서는 지나치고 나중에 후회하곤 한다. 이런 운동도 새 사무실에서는 처음부터 습관 들여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바닥 공간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명상이다. 이번 이사를 계기로 명상을 좀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이다. 명상은 무엇보다도 규칙적으로 수행해야 자리가 잡히는데 규칙적인 명상 시간과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사무실을 옮기며 마음먹은 목표 중 하나는 사무실 명상 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매트 바닥은 명상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무실 책상에서 의자에 그대로 앉아 일하던 환경에서 명상으로 전환하는 것이 한두 번이라면 모를까 계속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번에는 앉은뱅이 소 탁자 하나 만들어 명상과 글쓰기 도구로 만들어 실행할 계획이다. 2-3일 새 사무실에서 생활하면서 잘 될 것 같은 느낌이고 기대 또한 크다. 새 사무실을 지하(반지하) 주차장 공간에 잡는 것에 대해 식구도 친구도 “건강 생각하며 그저 창고로 쓰라”는 반대와 제안들이 있었으나, 옛날이라면 모를까 요즈음 세상에, 공기나 습기 같은 자연조건 때문에 이런 독립 자유 공간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바닥을 매트로 깔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닥 습기를 막자는 것이 가장 직접적 이유이다. 공기 문제도 지상 공기를 불어넣어 사무실을 양압실로 만들면 큰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다. 지금은 틀이 잡혀가고 있는 이 공간에 대한 기대가 차츰 커지고 있다.
공간에 대한 불만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지난 몇 년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오는 동안 마음속 한 구석에 늘 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무 공간에 묶여있는 현대인이 사무실에서 자유 공간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공간은 자유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조건이다. 공간이 있으면 자유를 느낀다. 그러므로 공간 다툼은 자유의 다툼이라고 할 수 있다. 권투 선수들이 서로 상대를 코너로 몰거나 코너를 벗어나 공간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이 자유의 쟁탈 경쟁이다. 코너에 몰리면 한방에 가버릴 수 있다. 피할 수 있는 자유도가 없다. 공간은 자유도를 제공하고 자유도는 안전을 제공한다. 이렇게 보면 자유는 어떤 고귀한 이상적 가치라기보다는 현실적 생존경쟁 차원의 가치이다. 정신적 자유 또한 육체적 자유 못지않게 중요한, 아니 훨씬 더 고차원의 중요성을 갖는 자유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은 이 거대 웅대한 우주가 140억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그러면서도 한치의 빈틈도 없는 우주와 생명의 진화 과정을 거치며 탄생시킨 우주 창조의 고귀한 궁극적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엄청난 자산을 갖고 태어났다. 지난 글에서 빅터 프랭클은 우리는 이 자산을 각자의 시공간에서 고유하게 유일하게 발현시키는 책임을 갖고 태어났다고 말한다. 정신을 발아시키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현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여유(자유)를 가질수 있어야 한다. 우리 정신이 꽉 굳어버린 돌덩어리 결정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서로의 자유(여유)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자유 시공간의 효과적 사용은 생존경쟁의 차원에서부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궁극적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새로운 그러나 남이 보면 초라한 자유공간을 마련하며 기대와 흥분을 크게 갖는 이유도 새로운 자유도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요즈음 우리 아이들의 자유로운 공간과 시간이 별로 존중받지 못하고 박탈당하는 현실이 안타깝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