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s are in details.
십 년 감수를 하며 우리 뇌는 엄연한 사실조차도 의심할 수 있음을 배웠다. 어제 사무실 환풍기 스위치가 높이 있어 좀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작업을 하였다. 기존 환풍기 코드선을 끊고 멀티탭을 중간에 끼워 넣어 멀티탭 스위치를 대신 이용하기로 하였다. 멀티탭은 벽의 콘센트(전기 기구의 두 다리 플러그를 꼽고 전기를 뽑아 쓰는 전기 수도꼭지)에 꽂고 여러 플러그를 꽂아 쓸 수 있도록 만든 기구이다. 사무실에서 많이 사용하지만 어느 가정에서나 한두 개는 사용 한다. 그런데 볼품이 좀 별로이다.
환풍기 코드선을 끊고 사이에 멀티탭을 연결해 넣어야 한다. 이렇게 복잡하게 하려는 이유는 환풍기 코드 플러그가 책과 짐을 잔뜩 올려놓은 무거운 책상 뒤쪽 콘센트에 꽂혀있어 빼고 넣기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코드를 끊고 다시 연결하는 일이 쉽겠다 생각해서다. 일단 환풍기 코드선을 잘라야 한다. 그런데 이 코드선의 플러그가 콘센트에 꽂혀 있다. 반드시 차단기를 내리고 잘라야 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전기를 다룰 때는 예상치 못한 감전이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불편해도 면장갑을 끼고 작업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여러 차단기 중 어느 것이 환풍기 플러그가 꽂혀있는 콘센트 차단기인가? 주 차단기를 내리나? 그러면 늦은 저녁이어서 깜깜해질 텐데 어떻게 작업을 하나? 아무래도 차단기 위치를 한 번은 확인해야 한다. 차단기를 찾자. 하나씩 확인해 놓고 보니 하필이면 환풍기가 꽂혀 있는 콘센트의 차단기에 전등도 함께 물려있다. 별도 전등을 마련해야 한다. 차단기들에 각각의 해당 콘센트를 적어 놓고서 작업 순서를 머릿속으로 정리하였다.
1. 멀티탭 코드선을 끊고
2. 환풍기 코드선을 끊고
3. 멀티탭 플러그 선들을 끊어진 환풍기 모타선과 연결한다.
4. 멀티탭 본체 선들을 기존 꼽혀있는 코드선과 연결한다.
5. 멀티탭 고정
으로 작업이 끝난다.
그런데 환풍기 코드는 두 가닥 선이고 멀티탭은 세 가닥 선이다. 전류가 흐르는 선을 제대로 찾아 연결해야 한다. 그래서 끊어진 멀티탭 플러그를 다른 콘센트에 꽂고 테스터로 전압을 재었다. 잘린 플러그 코드에서 흰색선/연두색(노란줄)선/갈색선 세 가닥이 보인다. 어느 선이 살아있는 선인가? 두선의 경우는 보통 두선 다 같은 색이거나 직류용의 경우 백색/흑색/홍색 등이 있다. 보통 검은색 선이 접지 또는 음(-)으로 표시되고 흰색 또는 홍선을 양(+) 선으로 쓰는 것이 관습이지만 세선의 구분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테스터로 재보는 수밖에. 우선 흰색과 연두색선 두선만 피복을 벗기고 재 보았더니 테스터 프로브를 대는 순간 테스터 바늘이 쑥 올라간다. 맞았다. 갈색선이 아마 접지선인 모양이다. 짐작이 맞은 것이다. 이제는 주저할 것 없다. 계획한 순서대로 진행하면 된다.
전기를 만질 때는 항상 조심스럽다. 특히 220V는 예전 100V와 달라 위험하다. 그래서 별로 몸을 움직이며 일한 것도 아닌데 전기 작업은 끝내고 나면 피곤해진다. 환풍기 코드 끊기를 하는데 길이 조절이 적당해야 한다. 적당한 지점을 정해서 니퍼로 끊었다. 끊는 순간 “팍”하는 소리가 나더니 끼고 있던 면장갑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되어 버린다. 직경 6-7cm 정도가 순식간에 까맣게 타버렸다. 그리고 전등불도 나갔고 모든 전기가 다 나가버렸다.
“아하, 차단기 내리기를 잊었구나!!”
(저 화염이 눈으로 향했으면 어쩔 뻔했나? 아찔했다.)
그런데 차단기 박스를 열어봐도 떨어진 놈이 없다. 엘리베이터 표시등이 꺼진 것을 보니 건물 전체 차단기인 모양이다. 빌딩 주 차단기가 떨어진 모양이다. 그런데 주 차단기에 가봐도 이상이 없다. 떨어진 놈이 없다. 어떻게 된 노릇인가? 이해할 수가 없다. 집히는 것이 없다. 할 수 없이 지난번에 와서 차단기를 설치한 전파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더니
“주 차단기가 아마 반쯤 떨어져 있을 거예요. 스위치를 완전히 내렸다가 올리세요.”
반쯤만 떨어지니까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스위치가 여전히 올라가 있는 것으로 보인 것이다. 차단기 스위치를 내렸다 올리니 방안에 불이 다시 환하게 들어온다. 하여튼 다른 골 때리는 파급 영향없이 회복할 수 있어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이제 차단기부터 내리고 작업을 하자. 차단기를 내렸는데도 피복을 벗고 맨살이 드러난 선들이 겁난다. “바보처럼". 우리 뇌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에도 의심할 수 있는 모양이다. 차단기를 내손으로 내리고서도 반짝거리며 빛나는 가느다란 구리선들이 겁나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 뇌는 사실조차도 의심할 수 있는 모양이다. 사실이나 논리는 우리 뇌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을까? 우리 뇌는 단순히 신경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새로운 사건을 경험하거나 배우면 새로운 신경 시냅스 연결 루프가 생기며 이 루프가 기억으로 남을 뿐이다. 사실과 논리는 자연법칙이므로 우리 뇌가 되풀이해서 경험하고 확인하는 루프일 뿐, 뇌에서는 별다른 라벨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되풀이되는 사실을 믿지 않고 자그마한 꼬투리로 의심이라는 부정적 No 조절 신호를 발동시키면 사실이든 논리이든 상관없이 의심 루프가 만들어지고 의심 루프가 작동할 때마다 사실 관계는 흐려지게 된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의심은 세상과의 창을 흐리게 만들어 버린다, 의심의 버릇이 생기면 사실을 가려낼 수 없이 되고 정신을 파괴한다. 불필요한 의심이 습관이 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은 자신의 정신건강이나 존엄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계속 반짝거리는 구리선들을 무서워하면 작업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한번 “이선들이 안전해”라고 확인하고 판단했으면 이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나’라는 존재의 건축법이라고 생각한다. 쌓았다 허물고 쌓았다 허물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내 판단을 믿고 존중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장 기본적인 믿기는 내 말을 내 판단을 믿기이다. 결국 믿음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자신의 뇌에 대한 믿음이다. 이가 진정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자른 선들의 피복을 벗기고 환풍기와 콘센트에서 들어오는 두 선들을 잘린 멀티탭 플러그와 본체의 흰색과 연두색선에 각각 연결하고 노출되지 않도록 절연 테이프로 감아 잘 절연시키고 멀티탭을 나사못으로 고정시켰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환풍기 코드 플러그를 멀티탭에 꽂고 차단기를 올리고 스위치를 누르자.
“아, 어떻게 된 일인가?”
환풍기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 미치고 환장하겠네. 무엇이 또 잘못되었나?”
“저 선들을 다 풀고 또 고쳐야 하나? 무얼 고쳐야지?”
테스터로 재어보니 멀티탭에서 전압이 나오지 않는다. 아마 콘센트 플러그가 합선 때 타든가 하며 연결이 끊어진 모양이다. 저 무거운 책상과 짐들을 결국 다 옮겨야 하는 모양이다 처음부터 체크해보자. 먼저 벽 콘센트에서 오는 선을 절연 테이프를 벗기고 다시 테스터 프로브를 대어보니 바늘이 휙 돌아가지 않는가? 콘센트는 살아 있다. 다행이다. 책상을 옮기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멀티탭 출력에는 아무 전압이 없다.
“왜? 연결이 잘못되었나?”
“아까 흰색-연두색 두 선에 전기가 살아 있는 것을 테스터로 확인했는데 왜 안 흐르지?”
멀티탭 입력단은 살아있는 선들과 연결되었다. 그러나 출력에서는 전압이 나오지 않고 있다. 살아 있는 입력선을 흰색과 연두색 선에 연결하였는데, 그리고 흰색/연두색선은 아까 잘라진 멀티탭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고 전압이 제대로 오르는 것을 테스터로 확인했는데... 그러나 다시 확인해보자. 그리고 흰색-연두색, 흰색-갈색, 갈색-연두색 선간 전압을 모두 재었다. 각각 220, 220, 0 볼트가 나온다. 흰-연두색 선만이 아니라 흰-갈색선도 220 볼트가 나오고 있다.
“아하, 이제 알겠다. 갈색 선이 아니라 연두색 선이 접지선이구나.”
아까 본 흰색-연두색 간 220V는 접지선과 흰 선 사이 전압이다. 접지선을 갈색 선과 묶어 놓았던 모양이다.
“그러면 왜 멀티탭에는 전압이 안 나오나?”
접지(연두)와 (-) 본선이 풀러그 쪽에서만 묶여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멀티탭 풀러그를 잘라 버릴때 멀티탭 본체의 접지-(-)본선 연결도 끊어진 것이다. 흰-연두색이 아니라 흰-갈색선으로 연결을 다 바꾸고 절연 테이프로 감고 스위치를 누르자 환풍기가 왜-앵하고 돌아간다.
사실 간단한 작업인데도 실제 내 손으로 하노라면 많은 디테일들이 숨어 있다가 골탕을 먹인다. 한수 어렵게 배웠다. 십 년 감수를 하면서. 배우기는 수월한 노릇이 아니다. Devils are in Detai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