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지 생각 중 하나를 딱 집어내기

상선약수(上善若水)

by 방석천

2012년 하버드 경영대 애미 커드 교수는 TED 강연에서 단 몇 분간의 자세 변화가 마음 상태를 바꿀 뿐만 아니라 호르몬의 분비까지 변화시킨다는 실험 결과를 보여주었다. 피험자들에게 한 그룹은 원더우먼 같은 자신감 넘치는 확장적 자세를 2분간 취하게 하고 다른 그룹은 팔짱을 낀다든가 손을 모으는 것 같은 위축된 자세를 2분간 취하게 한 실험 전후 침을 채취하여 테스토스테론 (결단의 호르몬)과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의 변화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는 앞 그룹의 경우 테스토스테론이 20% 증가하고 코르티솔이 25% 감소한 반면 뒷 그룹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이 10% 감소하고 코르티솔은 17% 증가하였다. 두 그룹의 호르몬 변화 차이가 테스토스테론의 경우 30% 이상, 코르티솔의 경우 50% 이상이었다. 몸이 마음을 지배한다는, 즉 자세가 마음 상태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실험 결과이다. 취업 면접이나 수주 상담과 같은 입술이 마르는 스트레스의 순간에도 화장실 가서 잠시 자신감을 상징하는 확장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위축되지 않고 상황에 집중하도록 뇌 호르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2012 애미 커드 TED 강연]


지난 글(브런치 매거진 ‘뇌로부터의 자유‘의 “나는 어떻게 왔을까?” 글 참조)에서 우리는 실존 세상에 존재하며 인식 세상으로 살아간다고 하였다. 세상과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종종 내가 인식하는 세상을 실존 세상으로 혼동한다. 이러한 오류는 예부터 지적되어오고 있다. 노자는 도덕경의 첫 구절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우리가 도라고 말하는 도는 실존의 도가 아니며, 이름도 마찬가지다)에서 두 세상의 차이를 지적하고 시작한다. 현대인의 많은 정신적 갈등은 두 세상의 차이에서 출발한다고도 할 수 있다. 차이가 심해지면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환으로 발전한다. “상사가 나를 자꾸 괴롭힌다” 아마 상사는 단지 사무적인 이야기를 하였을 뿐인데, 나는 그가 의도적으로 괴롭힌다고 느낀다. 결국 피해의식이 생기고 심리적으로 뒷걸음치며 상황을 악화시키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며 실존 세상을 적절히 인식하며 살 수 있는가? 어떻게 우울한 생각들을 접고 세상을 차분히 바라보며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있는가? 노자는 上善若水(상선약수)라고 하였다. 상선 즉 "최고의 선은 물과 같은" 행을 말한다고 가르친다. 즉 물 흐름과 같은 행이 인식의 왜곡을 피하는 삶이라고. 물이 흘러감과 같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물이 바다로 흘러갈 때 그 먼 길을 알고 찾아가나? 물론 아니다. 물은 바로 다음 스텝만을 보며, 즉 다음 스텝이 지금 여기보다 높으면 머무르고 낮으면 나아간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지금 여기가 더 낮은 가만을 보며 흘러간다, "지금 여기"의 위치만 보며 흘러간다. 상선약수의 지혜는 “지금 여기”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상은 물리학에서는 국소성(locality)이라고 하며 모든 자연현상의 기본 원리이다. 즉 미시적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우주가 상상을 초월하는 그 거대하고 장대한 드라마를 펼치고 있으나 이는 모두 이 국소적 미시적(현재 여기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루어질 뿐이다. 즉 실존 세상은 모두 국소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실존 세상은 모두 상선약수처럼 돌아간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삶이 힘들어질 때, 우리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나는 왜 이렇게 삶이 힘들기만 한 것인가?” 우리 뇌가 차지하는 무게는 몸 전체의 2% 정도지만 소모하는 에너지는 몸 전체 사용 에너지의 25%로 에너지 소모가 매우 높은 기관이다. 그러므로 뇌는 최대한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정밀성이 요구되거나 신속함이 요구되는 긴급 상황에서는 신속한, 그러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해석 방법을 동원하나 평소에는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하는 디폴트 모드가 돌아간다. 무해한 반복되는 정보는 무시한다. 엄마의 잔소리라고 생각하는 경우처럼, 왼쪽 귀로 듣고 오른쪽 귀로 흘린다. [Habituation이다.] 그러나 한번 벌에 쏘이든가 독버섯을 먹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대상은 그 민감도를 높인다. 다음에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꼉보고 놀라게 되는 식이다. [Sensitization이다.] 뇌의 학습에서 일어나는 방식이다. 에너지 절약 디폴트 구조이다. 뇌가 활성이 떨어지거나 하면 이런 절약 모드가 습관이 된다. 즉 학습을 거부한다. 다른 말로는 게을러지는 것이다. 에너지 소모율이 높은 만큼 뇌는 근육보다도 더 게을러지기 쉽다. 게으름이 즉 학습 거부가 습관이 되면 좀처럼 새로운 것을 배우려 않는 완고한 성격이 되어 주변에 피해를 주게 된다. 그러면 주변에서 들어오는 신호들이 점차 거칠어지고 무해하던 주변이 유해한 환경으로 바뀌게 된다. 뇌는 점차 부정적 신호에 반응해야 하고 그러면 뇌는 피곤해진다. 신호를 계속 무시하며 게으른 습관을 고집하면 상황은 감당하기 힘들게 악화된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상황에서 들어오는 신호들을 무시하지 않고 대응하면 어려울 개연성이 높은 장래 가능성들도 일상적 수준에서 미리미리 대처할 수 있게 된다. 무위(無爲)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흘러가는 물처럼 비록 물길이 거칠게 느껴져도, '지금 여기서'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말고 충실할 것을 상선약수는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먼 미래의 일들을 염려 않고, 한참 지나간 일들은 뒤돌아보지 않으며, 물이 바로 한 발자국 앞만을 보고 나아가듯이. 백가지 생각 중 하나를 딱 집어내기의 기술이다. ‘지금 여기‘에서 삶이란, 또는 생명이란, 바위틈에서 들꽃 한송이가 피어나듯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상선약수의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머리의 커드 교수의 실험은 입술이 타는 스트레스의 ‘지금 여기’ 상황에서 자신의 프레즌스를 지키기 위한 연구이다. 최근의 신경 사회심리학은 지금 여기의 프레즌스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바로 서양판 상선약수이다. [“프레즌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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