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상 그리기
칸트의 묘비석에는 칸트가 죽는 순간까지 경외감을 느꼈던 두 가지 대상이 새겨져 있다. 별들이 반짝이는 저 우주와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다. 우주와 (도덕률이 빛나는) ‘나’는 칸트만이 아니라 인간 누구나 느끼는 가장 원초적인 신비로움일 것이다. 최근 20세기 말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동안에 이루어진 과학의 발전으로 인류는 이제 우주의 신비를 거의 풀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우주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풀어냈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더욱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우주이다. 21세기는 인류의 두 번째 경외의 대상, ‘나’의 존재, 생명, 의식 등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과학은 이들에 대해 어떤 설명을 하고 있을까?
3포 세대니 5포 세대니 젊은이들의 일자리와 좌절이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으나 이 글에서는 ‘내 세상’이라는 부제에서 암시하듯이 사회적 의미보다는 각 개인의 세상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우리의 생각은 참으로 신비하다. 현대 과학은 이에 대해 어떤 해답을 주고 있을까? 우리의 생각, 의식은 과학과 기술이 우리 인간사회의 거의 모든 측면을 지배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아직 신비의 세계로 남아 있다.
이러한 신비는 우리의 생명과 우리 육체를 드라이브하는 의식이 대다수 우리에게는 접근을 불허하는 영역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의식하는 주체부터 신비하게 느껴진다. “나”란 무엇인가? 육체에 의해 한정된 존재인가? 즉 육체와 함께 생멸하는 존재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육체를 넘어서는 존재를 말하는 것인가? 내가 죽으면 세상이 인식되지 않는데 세상이 인식되지 않으면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어가지만 세상은 한결같이 굴러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나에게 인식되지 않는다면 세상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서 철학자들은 이 세상에는 생명이 있는 개체만큼 많은 세상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반면에 과학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약 140억 년 전에 빅뱅으로 시작되어 진화한 이 하나의 우주 속에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과 실존하는 세상은 다른 것이다. ’나‘는 실존의 세상에 존재하며 인식하는 세상으로 살아간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고, 도대체 ’나‘는 어떻게 생긴 것인가?
과학자들은 또 이야기한다. 우리의 의식은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고. 만일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지각에 대한 기억이 없다면 “나”라는 의식도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이는 충분히 공감되는 이야기다. 기억이 없으면 세상은 순간순간의 단절된 파편적인 사건들만 있을 뿐 이들을 꿰어 맞출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뇌의 중심부에 위치한 해마가 조정한다. 실제로 해마가 제거된 환자의 경우 새로운 (장기)기억을 하지 못한다. 어제 만나 이야기한 사람도 오늘 알아보지 못하는 “HM”이라는 환자의 유명한 임상 예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는 어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제와 그제가 다를 게 없다. 말하자면 그에게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건들을 시간이란 줄로 꿰어놓은 기억이 쌓여가면서 사건들이 연결되고 시간을 관통하는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내가 기억하는 세상이 만들어지며 인식 주체가 자연스럽게 생기고 “나”는 이 세상의 중심, 또는 세상과 마주하는 존재로 의식되고 구성된 것이다.
아기는 태어나서 눈에 비치는 환한 빛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들어본 듯한 엄마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조금 안심이 된다. 처음 엄마의 음성을 들으며 엄마 얼굴을 보기 시작하며 엄마와의 교감이 기억된다. 엄마는 배고플 때 젖을 주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말해주고 웃어준다, 필요한 걸 채워주고 불안을 없애준다. 엄마를 느끼고 배우며 기억한다. 이렇게 서서히 새로운 것들을 느끼며 배우며 기억하며 자기 세상을 그려 간다. 세상을 배우며 자연히 ’나‘도 만들어 간다. 우리는 자기가 그려 만든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자기 세상이 공정하면 공정한 세상에 살고 있고, 불공정하면 불공정한 세상에 살고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내가 그리는 세상을 한번 되돌아보고 희망을 주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러면 어떻게 희망의 세상을 그릴 수 있나? 고전들은 모두 우리에게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 글(상선약수)에서는 우리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후회하게도, 불안하게도 만드는 백천 가지 생각 중에서 한 가지를 딱 집어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