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피드백과 시너지 효과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by 방석천

빅터 프랭클의 베스트셀러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다. 지금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프랭클은 2차 대전 종전 3년 전 오스트리아에서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에 감금된다. 가족이 모두 체포되어 서로의 안부나 생사를 알 길이 없이 자유가 완전하게 박탈된 채로 여러 수용소로 전전하다가 죽음이 가까웠음을 느끼고 있던 시점에 독일의 항복과 함께 다시 자유를 찾게 된다. 그는 중요한 것은 '삶에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라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삶의 의미를 물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시각각 삶이 묻는 생의 의미에 답해야 한다고. 답할 그 책임을 우리가 갖고 있다고 간곡하게 이야기한다. 내 삶의 의미는 순간순간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놓치는 순간 48시간 내에 죽어 나가게 된다는 아우슈비츠 수형자들의 관찰과 함께. 그가 던지는 질문은 철학적으로 보이나 요즈음 우리들의 가장 심각한 현실적 당면 문제라고 한다. 현대인의 가장 큰 정신적 갈등은 “삶의 의미 상실”이라고 한다. 즉 삶의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삶의 동기 부여 실패는 철학적 시대적 관점에서 볼 수도 있겠으나 뇌신경 연결의 구조적 문제에서 볼 수도 있다. 추상적 관점들이 결국은 뇌신경 연결의 구조적 문제로 귀착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뇌신경에서, 조절(개재, 제어, 변조) 신경의 역할은 타종에 비해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다양 다기화 되어 있다. (조절 신경에 대한 설명은 브런치 매거진 '뇌로부터의 자유'의 “인기 좌우명과 뇌신경 조절 신호”글 참조; 간단하게 신경의 신호전달은 입력 출력 조절(개재, 제어) 신호들로 이루어진다.) 신경의 조절 신호는 일종의 피드백 신호이다. 전자회로의 피드백보다 훨씬 복잡 다양하지만 기본 기능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즉 감각신경과 운동신경 간의 전달 신호를 약화하거나 강화하는 신호이다. 이 피드백을 사용함으로써 우리 몸이 체온과 같은 자율신경계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고 또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조절 신경 작용은 방의 온도 조절기 피드백 신호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즉 방안 온도가 설정 온도보다 높으면(+) 온도를 낮추는 (-) 신호를, 설정온도보다 낮으면(-) 온도를 높이는 (+) 신호를 사용해야 한다. 즉 방안 온도를 보정하는 피드백 신호이다. 이때의 피드백 신호는 조정의 또는 반대의 의미를 갖는 ‘음의 피드백“이다. 말하자면 기준에 맞추기 피드백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반대로 양의 피드백을 방안 온도조절기에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온도 조절기에서 양의 피드백을 사용하면 설정온도보다 높으면 더 열을 가하므로 방안 온도는 가속적으로 높은 온도로 올라간다. 계속 두면 아마 폭발해버릴 것이다. 이런 경우 온도 조절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양이 피드백은 방안 온도를 가속적으로 올리듯이 탐색이나, 배움이나, 협업이나, 창조 혁신 활동 등에서 시너지 작용을 하여 가속하며 발전하는 상승 동력이 된다. 그러므로 배움 창조 협업에서 이 양의 피드백은 매우 중요하다. 조절 신경의 음의 피드백 신호는 우리 생명을 보전하는데 (또는 생태계의 유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반면 양의 피드백은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는 수단이며 인간 사회를 현재의 문명사회로 발전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사냥개가, 먹잇감을 찾아가는 탐색 과정은 바로 이 양의 피드백을 최대한 사용하며 이루어진다. 사냥개는 먹잇감 냄새룰 맡으면 냄새가 더 강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면 냄새 피드백은 더 강해지고 먹잇감이 있는 곳으로 점점 더 가까워져 간다. 희망이나 삶의 의미와 같은 고차원의 탐색 활동도 결국에는 이러한 양의 피드백 신경 구조를 이용한다. 아이들 교육에서 칭찬은 양의 피드백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양의 피드백의 폭발적 특성을 잘 나타낸 책 제목이다. 이 탐색 회로 즉 양의 피드백 회로가 활성화되어야 삶이 생기 있고, 발전하고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의 의미’ 상실은 탐색 회로 즉 양의 피드백 회로가 약화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빅터 프랭클은 수형자가 희망을 잃고 간직하고 있던 담배를 꺼내 피는 순간 수형자가 “48 시간 내에 죽는다”는 아우슈비츠 수형자들 간의 관찰을 이야기한다. 양의 피드백 회로는 삶의 버팀목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삶을 무한한 가능성으로 이끌어가는 사다리이기도 하다.

과학은 생의 의미, 희망 등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나는 이를 뇌신경의 양의 피드백 회로에서 찾고 싶다. 양의 피드백은 사냥개가 먹잇감을 찾아가듯 개체의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사용된다. 따라서 양의 피드백이 건강하면 적극적 긍정적 사고를 가질 수 있으며 동기 부여가 이루어지게 되고 삶의 궁극적 의미까지도 탐구하게 된다. 우리가 양의 피드백 회로에 신호가 잘 돌아가는 한, 즉 탐색 기능이 살아 있는 한, 생은 동기를 찾아내고 `목표를 정하고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신경생리적 해석은 긍정 낙관적/부정 비관적 언어습관의 결과에 대한 셀리그만의 50년간의 추적 실험 결과가 [브런치 매거진 '뇌로부터의 자유'의긍정 낙관의 힘"글 참조] 뒷받침하고 있다. 실험 결과는 부정 비관적 사고가 결정적으로 장노년기의 건강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삶을 긍정적/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뇌신경에서 해부학적 차원의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는데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즉 긍정 낙관적 습관을 가진 사람은 양의 피드백 회로가, 즉 yes/no 신경 중에서 yes 조절 신경 시냅스 연결이 강한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사건에 접할 때마다 양의 피드백 회로 거나 음의 피드백 회로를 키워나간다. 그러므로 그가 오도 가도 못하고 삶의 의미를 상실할 때 즈음에는, 이미 뇌신경의 구조적 문제로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뇌신경의 구조적 문제로 발전하였으면 더 이상 교정의 가능성이 없는 것인가?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되는 바이지만 우리 뇌는 그다지 객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 결과로 보고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뇌의 작동은 첫째는, 객관적이거나 논리적이기보다는 라는 개체를 위해 돌아가도록 되어 있으며 둘째, 가능한 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도록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습관이 굳어 있어도 뇌는 최근의 패턴에 영향을 많이 받도록 되어 있다. 한번 그가 심기 일전하여 새로운 방식의 행동 패턴을 시작하면 이가 그의 최근의 기록이 된다. 뇌의 시뮬레이션은 가장 손쉬운 최근 노출 패턴에서 시작하게 되어있다. 이렇게 되면 뇌의 시뮬레이션은 새로운 패턴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뇌에서 중요한 것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노력을 좀 들이면 습관은 바뀌게 되어있다.

내 어깨 펴기가, 1년 정도 노력한 결과, 다른 이들로부터 “어깨가 많이 펴졌다 ‘는 말을 듣고 있다.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신에 ’ 턱을 좀 당겨야겠다 ‘며 코멘트가 새 옷을 갈아입고 등장하기는 했지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실용 명상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