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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Jan 06. 2020

산책할 시간이 된 것 같은데?(1)

저는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요 16

혁구는 매일 출퇴근했다. 아침이면 크리킨디센터에 왔고, 저녁이면 주민분 집에 갔다. 매일이란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사람은 보통 일주일에 5일을 회사나 학교에 가고 주말에는 쉬지만 혁구는 그렇지 않았다. 크리킨디센터가 어린이와 청소년 공간이어서 주말에도 문을 열었고, 혁구를 재워 주시는 주민분도 주말 일정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출퇴근하는 개’는 쉬는 날도 없다.


혁구가 출근해서 하는 ‘업무’는 딱히 없었다. 이따금 놀러 오는 사람들에게 귀여운 짓(물론 혁구가 귀여운 짓을 한 건 아니고 사람들 눈에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나중에 혁구를 훈련시켰던 반려견 훈련사의 말에 의하면 혁구는 잔재주가 없다.)을 하고 간식을 얻어 먹거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자는 게 전부였다.


혁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산책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자다가도 산책을 시켜 주는 사람이 오면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어 댔다. (자세히 보면 꼬리를 흔드는 게 아니라 궁둥이를 흔들고 있었다.) 산책줄로 바꾸는 잠깐동안 혁구의 몸은 이미 문을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혁구는 문 앞에서 어서 이 문을 열라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문을 여는 순간, 혁구는 그틈으로 튀어 나갔다. 그 모습을 위에서 보고 있으면 다리가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두더지 크기의 설치류 한 마리가 몸을 꿈틀대며 빠르게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혁구는 마치 경비견이라도 된 듯 파크 구석구석을 살폈다. 건물 뒷편이나 산자락 등 파크에서 절대 가 보지 않았던 곳도 혁구 덕분에(?) 가 보게 되었다. 사람이 만든 길과 공간은 그 어떤 경계의 의미도 없었다. 그렇게 혁구와 산책을 하면 기본으로 1시간이 넘었다. 일정이 있어서 그만 들어가려고 하면 혁구는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집으로 가는 반대 방향으로 힘을 준다. 더 이상 못 간다고 내가 가지 않으면 갑자기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앉아 버리기도 했다.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서 들어오긴 하는데 그냥 갈 수 없어서 잠깐이나마 터그(tug: 사냥처럼 장난감이나 수건을 물게 해 주고 당기는 행위를 통해 운동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사람과 신뢰도 쌓을 수 있다.)놀이도 하고 부랴부랴 나와 시계를 보면 이미 2시간 가까이 지나 있었고,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터그놀이를 할 때에는 평소에 볼 수 없는 얼굴이 된다. ⓒ bic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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