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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Dec 02. 2019

출퇴근하는 개(3)

저는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요 11

다음 날, 주민분이 출근하는 길에 혁구를 혁신파크에 데려다 주시기로 했다. 나는 시간이 안 되어 짝꿍이 혁구를 받기로 했다. 짝꿍은 개를 키워본 적도 없고 썩 좋아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동물을 만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개를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때로 그 어느 것보다 우선한다.


혁구는 주민분과 함께 혁신파크에 왔다. 한 바퀴 산책을 한 후에 주민분은 출근하시고 짝꿍 혼자 혁구를 데리고 있게 됐다. 짝꿍은 파크에 조금 일찍 와서 임시 거처를 사람들 눈에 덜 띄는 외부계단 아래 공간으로 옮겨 놓았다. 이른 시간이라 마땅히 들어가 있을 곳도 없어서 짝꿍은 혁구를 그곳에 묶어 두고, 조금 떨어진 난간에 걸터 앉아 그저 혁구를 쳐다 보고 있었다고 했다. 오늘 혁구를 어디에 둬야 할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사람들이 출근할 시간이 되어서 짝꿍이 채팅방의 멤버 몇 명에게 혁구를 데리고 있을 수 있는지 물어봤지만 어렵다는 대답을 받았다.


짝꿍도 일정이 있었기에 이렇게 밖에 혁구를 두고 갈 수 없었다. 다행히도 출근한 크리킨디센터 직원분을 만났고 혁구를 데리고 있을 수 있다고 하셔서 크리킨디 사무실 앞 연결동 옥상(높은 건물 옥상이 아니라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외부통로)로 집을 옮겼다. 이곳 직원들만 적당히 오가는 곳이라 그전의 거처보다 좋을 것 같았다. ‘혁신파크에서 함께 돌보는 개’라는 짧은 안내문도 써 붙였다. 직원분이 혁구가 예전에도 와서 해를 쬐며 낮잠을 즐기던 곳이라고 하셔서 짝꿍은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나도 짝꿍에게 오늘 혁구를 둘 곳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마음을 놓았다. 짝꿍은 혁구를 크리킨디센터에 맡기고 떠났고, 혁구는 크리킨디센터에서 하루를 보냈다. 혁구는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지금 돌볼 수 있는 사람’의 손으로 넘겨졌다.


나는 퇴근을 하고 혁구를 보러 갔다. 늦은 시간에도 몇몇 분이 혁구와 함께하고 있었다. 혁구 집은 크리킨디센터 사무실 바로 앞 복도로 옮겨져 있었다. 날씨가 추워져서 안으로 들여 놓았다고 하셨다. 혁구는 괜찮아 보였다. 그날 밤, 혁구는 그곳에서 잠을 잤다. 혁구를 혼자 두는 것이 걱정이 되었지만 그나마 실내라서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혁구는 그곳에서 생활하고 잤다. 그러다가 혁구를 재워 주셨던 주민분이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마음이 쓰이셨는지 저녁에 혁구를 데려가 재워 주시고 출근길에 혁구를 데려 놓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낮에는 크리킨디센터로 출근하고, 밤에는 주민분 집으로 퇴근하는 혁구의 ‘출퇴근’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실 처음 혁구를 혁신파크로 다시 데려올 때 개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몰랐을 뿐더러 아무 계획도 없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정말 대책 없는 행동이었다. 순전히 혁구를 돌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혁구를 돌볼 수 없고, 이렇게 개를 돌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도 안정적이지도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여전히 두렵고 걱정이 되지만 나는 혁구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혁구가 ‘살았으면’ 했던 게 내 바람이었다. 많은 사람의 손길이 모여 일단 그 바람은 이루어졌다.


아른아른 햇볕 아래 혁구. ⓒ bic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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