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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Jan 13. 2020

산책할 시간이 된 것 같은데?(2)

저는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요 17

혁구를 돌보게 되면서 혁구가 실내에서는 절대 배변을 하지 않는 걸 알게 되었다. 반려동물 관련 영상과 자료를 찾아보니 원래 개들이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배변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진돗개 같은 토착견 종(種)이 그런 모습이 더 많이 보여 실내 배변 훈련을 시키기 어렵다는 설명이 있었다. 이런 개를 실내에만 두면 배변을 하지 않고 계속 참다가 방광염 등 질병에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정말 반갑게 꼬리와 궁둥이를 흔드는 게 산책을 좋아해서 그러는 건 줄 알았는데 똥오줌이 급해서였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영상에서는 진돗개 같은 이런 개는 하루에 3~4번의 산책을 시키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유난히 짧은 다리 때문에 언뜻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혁구의 얼굴에는 분명히 진돗개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혁구도 출근해서 실내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배변을 위해서라도 혁구에게 하루 몇 번의 산책은 필수였다. 혁구가 출근해서 하는 업무는 없었지만 혁구의 출근으로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업무'가 생겼다. 혁구를 돌보는 사람들은 틈틈이 시간을 내어 혁구를 데리고 나갔다. 클라우드의 산책일지 파일을 만들어 산책시간, 배변 여부, 먹은 간식, 특이사항 등을 기록하고 공유했다. 처음에는 개를 키워 본 익숙한 몇 명만 산책을 했지만 혁구를 무서워했거나 별 관심을 주지 않았던 사람들도 혁구와 친해지면서 산책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한동안 가장 걱정했던 것이 배변이었는데 사람들 덕분에 걱정을 덜게 되었다. 어쩌다 밖에 나오자마자 참았다는 듯 배변을 하면 '그렇게 급하면 그냥 안에서 좀 하지' 참 예민하고 까탈스럽다고 흉을 보다가도,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겠나'며 이해하게 됐다.


혼자서 길을 떠돌며 밖에서도 잘 지냈던 혁구는 다행히도 사람 품과 손길을 경계하지 않고 모든 상황과 변화를 순순히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다만 이제 그동안 몸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해결했던 배변은 사람이 없으면 불가능하게 되었고, 사람의 시간에 맞추고 사람의 판단에 맡기게 되었다. 인간에게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은 개에게는 가장 원초적인 생존과 생리의 문제였다.


무슨 냄새를 그렇게 맡는 거야? ⓒ bic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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