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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Nov 18. 2019

출퇴근하는 개(1)

저는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요 9

혁구를 데려 와서 내 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혁구를 데리고 혁신파크에 갔다.


험하고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다시 돌아온 혁신파크가, 사람의 손과 연결된 리드줄이 어떻게 느껴질까? 혁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혁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쩌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낯선 기색 없이 혁신파크를 돌아다녔다. 혁구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건물 사이 좁은 틈으로, 경비원 휴게실이 있는 뒤편으로, 출입이 금지된 공사장으로 나를 끌고 다녔다. 혁구가 가는 대로 더 이상 따라가면 안 되겠다 싶어 걸음을 멈추면 혁구는 힐끔 나를 돌아보면서 가고 싶다고 줄을 당겼다. 거기로 갈 수 없다고 내가 버티면 혁구는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앉아 있다가 내가 움직이는 것 같으면 잽싸게 일어나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혁구는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것이 혁구와 함께한 첫 번째 산책이었다.


혁구와 혁신파크를 산책하며 혁구를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리드줄을 맨 혁구를 보고 놀란 사람들이 다가와 어제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모두 ‘정말 잘 됐다. 다행이다.’라며 기뻐하시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며 염려해 주시기도 했다. 몇몇 분들은 그동안 봐왔던 혁구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혁구가 눈에 띌 때마다 먹을 것을 챙겨주셨다는 분도 있었다. 혁구에게 이끌려 간 어느 곳에는 밥그릇도 놓여 있었다. 누가 밥을 주고 있다는 걸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장소였다. 그동안 많은 손길이 혁구를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시간에는 ‘혁신견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모임’이 진행됐다. 나를 포함해 12명이 참석했다. 사람들은 무사히 돌아온 혁구를 반겼다. 상황을 공유하고 밥그릇이 있던 상상청 건물 한쪽에 혁구의 임시 집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 입주단체에서 길고양이를 위해 만들어 두셨던 집과 사물함을 내어 주셨다. 그밖에 필요한 물품은 돈을 조금씩 걷어 사기로 했다. 낯선 상황이었겠지만 혁구는 잠자코 우리를 따랐고 예전처럼 햇볕을 쬐며 졸기도 했다. 오후에는 몇 차례 사람들과 산책을 했다. 사람들은 혁구를 보고 ‘목줄에 적응을 잘하는 것 같다’, ‘사람과 산책을 해 봤던 녀석 같다’고 했다. 각자 시간이 날 때마다 돌아가며 산책을 하고 산책한 내용을 공유할 방법을 고민해 보기로 했다.


일단 자리를 잡았지만 혁구에게 편안한 곳인지는 알 수 없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 좋은 것도 있지만 염려되는 점도 많았다. 혁신파크 사람들 중에는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곳에 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불편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가을을 맞아 여러 야외공간 행사가 예정돼 있던 점도 걱정이었다. 혁구를 모르는 외부인이 많이 올 때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행사를 준비하는 주최측에서 안 좋게 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또 날이 더 추워지면 이곳에 계속 둘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여러 걱정과 고민을 뒤로하고 약속이 있어 저녁식사를 하러 나갔다. 짝꿍은 혁구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혁신파크에 남았다. ‘강아지들이 와서 짖었다’, ‘잘 있다’며 사람들이 간간이 소식을 전해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저녁 8시, 친구와 밥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기려는 때였다. 전날 혁구가 잡혀갔다는 소식만큼이나 다급한 연락이 왔다.


혁구가 사라졌다.


속눈썹이 곱고 예쁜 혁구. ⓒ bic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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