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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Nov 11. 2019

돌보지 않는 개는 아프다(2)

저는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요 8

생명에 위협이 될 만한 큰 질병은 없었지만, 혁구가 아주 건강한 상태는 아니었다. 혈액검사 결과, 신장 기능을 평가하는 BUN(Blood Urea Nitrogen, 혈중 요소 질소) 수치가 정상범위를 초과해 6개월 정도 처방사료와 약을 먹이며 경과를 보자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 추천해 주신 사료는 로얄캐닌 브랜드였다. 신장질환 외에도 간질환, 당뇨, 심장질환 등 개와 고양이의 여러 질병에 대한 처방사료가 있어서 놀랐다. 약은 아조딜(Azodyl)이라는 보조제였다. 프로바이오틱스가 주 성분이라서 냉장보관을 반드시 해야 하고 캡슐 채로 삼키도록 해야 효과가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몸무게가 10kg인 혁구는 하루에 3알을 먹는 것이 기본 용량이었다. 90알이 든 한 통, 한 달치 약의 가격은 7만 원 정도. 6개월 치의 약값을 매달 조금씩 모으기로 했다.


개가 걸리는 병에 대해서 더 찾아보니 나이가 들면서 만성신부전을 앓는 개들이 꽤 많았다. 혹시 혁구도 신장이 많이 상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의사 선생님은 혁구가 아직 어리고, 돌아다니면서 좋지 않은 음식을 많이 먹어 신장 기능이 일시적으로 떨어진 것일 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다행히 혁구는 처방사료를 아주 잘 먹었고, 혁구에게 잠자리를 내어주신 주민분께서 아침, 저녁으로 약을 잘 챙겨주셨다. 그 덕분에 6개월이 지난 이듬해 5월, 다시 혈액검사를 했을 때 BUN 수치가 정상범위 안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칼륨 수치는 여전히 높았고, 처방사료를 먹이고 간식을 줄이는 등의 관리는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보조제는 더 먹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무척 기뻤다. 건강한 상태를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에 안심하게 된다. 혁구가 많이 건강해졌다는 증거인 것 같아 무슨 수치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결과지의 숫자를 몇 번이고 보고 있었다.


혁구는 피부도 썩 좋지 않았다. 아토피와 기생충성 피부염 증상이 복합적으로 있었다. 배와 앞다리 관절이 접히는 부분에 털이 빠져 피부가 빨갛게 드러났다. 앞발가락 사이, 꼬리 쪽 등을 깨무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깨물고 긁은 곳에는 딱지가 생기기도 했다. 병원에서는 먹는 약과 유산균, 바르는 물약, 연고를 처방해 주셨다. 약을 먹고 바르면 확실히 상태가 좋아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했다. 솜이 들어간 방석 대신 면수건을 사용하고 자주 세탁하기, 사람이 ‘서늘하다’ 싶을 정도로 온도 맞춰 주기, 건조한 겨울철에 보습제 발라주기, 약용샴푸 쓰기 등등 해야 할 것이 많았다. 혁구의 피부는 계절과 상황에 따라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혁구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혁구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란다. 내가 잘 몰라서, 부주의해서, 혁구를 잘못 돌봐서 혁구가 아플까 봐 걱정이 된다. 혁구가 병원 가는 길을 눈치채고 가지 않겠다 고집을 부리거나 진료를 받을 때 불안해하면 ‘그러니까 이제 아프면 안 돼’라고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면 아픈 곳이 낫는다는 것을 혁구가 안다면, 아프면 ‘아프다’고 혁구가 말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동물을 돌보는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유기견들이 골절 등으로 수술을 받거나 충분히 예방 가능한 질병과 전염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소식을 간혹 접한다. 그럴 때면 혁구가 짧지 않은 바깥 생활을 하면서 크게 아프거나 다치지 않고 살아온 것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혁구처럼 ‘우연히’ 또 ‘운 좋게’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수많은 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생명의 무게가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


거기서 뭐 해? ⓒ bic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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