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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Oct 28. 2019

이 개는 '혁구'가 되었다(3)

저는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요 6

내장형 마이크로칩 삽입 방식으로 동물등록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것이 개를 잃지 않는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겠지만 혹시 모를 사고에도 완벽하게 대비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정보를 찾으며 마이크로칩 기술과 작동원리, 부작용에 대한 연구결과를 살펴보고 나니 오히려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개가 꽤 크고 겉으로 보기에 건강해 보여서 염려가 덜 된 건지도 모르겠다. 아주 작은 개를 돌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쌀알 만한’ 크기라도 마이크로칩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것 같았다.


아래는 내장형 마이크로칩의 필요성에 대해 가장 설득력 있게 느껴졌던 스위스 유실·유기동물 관리 센터 STMZ(Schweizerische Tiermeldezentrale)의 설명이다.



“마이크로칩이 피부 아래에 있기 때문에 특수한 판독장치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시스템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판독장치를 가져오거나 개를 데리고 가야 한다.
...

마이크로칩과 인식표는 서로 보완하는 관계다. 마이크로칩은 보안성을 강화하고, 인식표는 동물을 찾을 때 더 쉽게 사용된다. 마이크로칩 삽입은 법적 의무사항이고, 인식표도 추가로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두 가지 시스템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다.”



아직 한 가지 더 결정해야 할 것이 남아 있었다. 개의 소유주를 누구로 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혁신파크 입주단체자치회에서 자치회 이름으로 등록을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셨다. 법인 또한 ‘법률에 의하여 권리능력이 인정된’ 주체이므로 소유주로 등록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구청에 전화를 걸어 가능한지 물었다. 담당자분은 이런 문의가 처음이었는지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곧 다시 걸려 온 전화에서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소유주가 반드시 ‘개인이어야 한다’ 거나 ‘법인은 불가하다’는 규정이 명시돼있지는 않지만, 반드시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만 등록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감사하게도 당시 자치회장님이 흔쾌히 나서 주셔서 동물등록을 늦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동물등록을 하고 나니 비로소 한시름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다행히 개는 내장형 마이크로칩에 부작용이 없었다. 수많은 이름으로 불렸던 개에게 ‘혁구’라는 이름이 생겼다. 이로써 우리가 혁구의 보호자로서 역할을 하겠다는, 혁구가 우리의 돌봄을 받는 개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혁구와 우리는 사회와 제도가 인정하는 약속의 테두리 안으로 안전하게 들어왔다.



무겁게 또 힘겹게 느껴졌던 일이 하나둘씩 정리되어 갔지만 마음 한 구석이 여전히 복잡했다. 법인은 소유주로 등록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개인인 주양육자가 개를 소유하고 돌보는 ‘당연한’ 방식과 다르게 우리가 이 개를 잘 돌볼 수 있을까? 이렇게 여러 사람의 손길이 닿는 것이 과연 이 개에게 좋은 일일까? 가뜩이나 자신 없고 불안했던 마음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혁구는 인형을 선물 받으면 귀부터 깨물어 뜯기 시작한다. 아직 귀가 떨어지지 않은 곰돌이. 지못미... ⓒ bic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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