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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Nov 04. 2019

돌보지 않는 개는 아프다(1)

저는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요 7

사람들과 혁구를 돌보기 시작한 지 3일째. 오픈채팅방의 멤버 중 한 분이 혁구 몸에 까만 콩 같은 것이 붙어있다며 사진을 올렸다. 그건 콩이 아니라 피를 빨아서 몸이 부푼 진드기였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혁구 몸에 진드기가 붙어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 보라는 말을 듣고 사진을 찾아봤던 덕에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정말 발견될 줄이야. 다행히 혁구와 같이 계시던 분이 상처 나지 않게 바로 떼어내 주셨다.


한 번뿐이겠지 했는데, 다음날 동그란 진드기가 또 발견됐다. 풀밭이나 산을 자주 돌아다니니 여러 마리 진드기가 혁구 몸에 붙어있는 것 같았다. 붙기 전에 하면 좋았겠지만 늦게나마 외부기생충약을 사러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뒷목덜미 쪽 털을 결 반대 방향으로 쓰다듬듯이 걷어내고 피부에 바르라고 하셨다. 꼭 뒷목덜미에 바르라고 강조하시기에 사람이 엉덩이나 팔에 주사를 맞는 것처럼 효과적으로 약물을 흡수시키기 위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개가 건드리거나 핥을 수 없는 위치여서 그런 것 같았다. 병원에서 알려주신 대로 약을 바르려는데 혁구 털이 워낙 짧고 빽빽해서 피부가 보이지 않았다. 혁구를 붙들고 털을 한참이나 뒤적였다. 약을 바르면서도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계속 의문이 들었다. 개 의약품을 처음 접하는 나로서는 일종의 살충제 성분을 몸에 바르는 것도, 발라 놓으면 효과가 한 달이나 지속된다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3일 후, 동물등록을 하러 혁구를 병원에 데려가는 김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다행히 가장 염려했던 심장사상충에는 감염되지 않았고 겉으로는 특별히 다치거나 아픈 곳은 없었다. 그런데 귀진드기로 인한 염증이 상당히 심했다. 혁구가 뒷다리로 귀를 털듯 세차게 긁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귓속 이물질을 닦아내고 소독하려고 했지만 혁구가 심하게 발버둥 치는 바람에 치료를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채혈과 마이크로칩 삽입 시술, 광견병 예방접종으로 혁구도 이미 많이 지쳤을 것이다.


열흘쯤 지나 내장형 마이크로칩이 잘 자리를 잡았는지 확인도 하고 지난번에 하지 못한 귀진드기 치료를 받기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좀 수월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역시나 쉽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귀 가까이 손을 대려고만 해도 혁구는 몸부림을 쳤다. 힘이 어찌나 센지 안겨 있던 품에서 뛰쳐나와 병원 문앞에 서서 빨리 이 문을 열라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병원에 같이 간 사람들, 간호사 선생님과 번갈아가며 안아 봤지만 소용없었다. 잠시 붙들고 있기도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진정제 주사를 맞혔다. 귀속에서는 귀지와 분비물이 잔뜩 나왔다. 어느 정도 닦아낸 후 염증치료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병원에서는 경과를 보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일주일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진정제 때문에 혹시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염려했지만 혁구는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다만 쫑긋했던 귀가 옆으로 축 쳐져서 상당히 시무룩한 얼굴이 됐다. 그 모습이 꼭 스타워즈의 ‘요다’ 같았다.


이후 치료를 위해 두 번 더 병원에 갔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매주 병원에 갔더니 혁구가 병원에 가는 것을 눈치채는 것 같았다. 길을 건너는 횡단보도 앞에만 나가면 안절부절못하고 다시 길을 돌아가려고 힘껏 줄을 당겼다. 혁구의 몸은 사람이 가는 방향과 다른 쪽으로 기울어진 채 미끄러지듯 횡단보도를 건넜다. 진료가 끝나고 병원을 나오면 혁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혁신파크로 돌아갔다. 빠르게 종종거렸던 발걸음은 혁신파크에 들어서자마자 차분해졌다. 병원 한번 가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게다가 약을 먹이는 것도 점점 어려워졌다. 한 동안은 가루로 된 약을 사료 위에 뿌리기만 해도 잘 먹었는데, 약 맛과 향을 알게 됐는지 어느 날부터인가 잘 안 먹어서 습식사료나 고구마 같이 맛있는 음식을 따로 준비해야 했다.


그렇게 3주 간 치료를 받고 한 달 가까이 약을 먹은 후에야 귀진드기 치료가 끝났다.


염증으로 귀가 가려웠던 혁구. 나는 개들이 원래 그렇게 잘 긁는 줄로만 알았다. ⓒ bic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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