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집우주 Mar 23. 2020

닭백숙과 매운탕의 행방불명

봉준호 감독과의 식사 시간 3

*** [봉준호의 동물들]의 연재 글로 봉준호 영화에 나오는 동물들에 대해서 쓴 글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장편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의 중요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동물이 나오는 장면을 기억하기 쉽지 않기에 영화 장면 일부를 캡처했습니다. ***



<마더>에서 마더와 도준이 닭백숙을 먹는 장면이 영화 초반부와 후반부에 한 번씩 나온다. 첫 번째는 도준이 뺑소니를 친 사람들에게 복수를 했다가 경찰서에 다녀온 후이고, 두 번째는 마더가 살인사건의 범인이 도준인 것을 알게 되고 자신도 살인을 저지른 후다. 일상적인 두 번의 식사는 같은 앵글로 촬영되어 대구를 이룬다. 이 장면에서 감독은 두 사람의 행동(첫 번째는 식사 중에 마더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두 번째는 도준이 자리에서 일어난다.)과 포커스가 맞은 인물(첫 번째는 도준에게, 두 번째는 마더에게 포커스를 맞춘다.)을 반대로 하여 관객들에게 살인사건 전후로 달라진 엄마와 아들의 심리, 상태를 대비시킨다. 앞선 글에서 다루었던 요소의 반복을 통해 유사와 대비를 만드는 연출이다.


이 연출에서 눈에 띄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첫 번째 식사에서는 마더가 손으로 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서 도준의 밥그릇 위에 올려 주고 도준은 그걸 집어 접시에 도로 던져 놓는다. 두 사람의 얼굴 위치에서 있던 카메라는 아래로 내려가 그들의 행동과 그릇에 담긴 고기를 친절히 보여 주었다가 다시 올라온다. 하지만 두 번째 식사에서는 카메라가 그들이 먹는 음식을 보여 주러 내려가지 않는다. 마더도 도준에게 고기를 건네지 않기에 대사를 통해 그들이 닭백숙을 먹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감독은 이처럼 요소를 반복하는 연출에서 특정 요소를 화면에서 제거하기도 한다. 살인을 저지른 후 얼떨떨하고 심란한 마더의 상태는 기운 없는 표정과 대사뿐 아니라 고기가 보이지 않는 화면을 통해서도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봉준호의 영화에서 음식(고기)은 지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힘을 주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음식(특히 고기)은 화면에 보이는 것만으로 관객들에게 시각적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고기가 사라지는 밥상’은 영화적 연출의 관점뿐만 아니라 봉준호의 개인적인 경험과도 연결된다. 나는 그것이 ‘음식(정확히는 육식과 채식)’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봉준호는 <옥자> 제작 당시, 구상 차 미국 콜로라도의 한 도축장에 방문했다. 그곳의 크기, 규모, 시설보다 그를 더 압도한 것은 동물의 분뇨와 피 등 온갖 것이 섞여 있는 냄새였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철학적 결심이나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몸이 거부하는 바람에 그는 두 달동안 자연스레 채식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후로 그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고기를 먹지만 평소 자신이 선택할 수 있을 때에는 육류를 먹지 않고 해산물과 유제품을 먹는 페스코-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미자는 고기를 잘 먹는 사람이다. 미자는 매운탕이 먹고 싶다고 말하고 희봉은 미자가 잡아온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인다. 마치 요리법을 보여 주는 방송처럼 카메라는 위에서 생선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냄비와 식탁을 내려본다. 다음 컷에서 카메라는 여러 채소가 올려져 있는 밥상, 밥을 먹는 미자의 앞모습과 희봉의 뒷모습을 보여 준다. 미란도그룹에서 미자 몰래 옥자를 데려간 날, 희봉은 허전해할 미자를 위해 닭백숙을 준비한다. 하지만 미자는 좋아하는 닭백숙도 마다하고 옥자를 구하기 위해 집을 떠난다. 그리고 서울로, 또 뉴욕으로 미자의 길고 험한 여정이 시작된다. 미자는 슈퍼돼지 도축장에서 옥자를 찾아내고 황금돼지로 옥자를 산 채로 산다. 다시 돌아온 산골에는 옥자와 새끼슈퍼돼지가 마당을 거닐고 미자와 희봉이 밥을 먹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마지막 식사 컷은 미자의 앞모습과 희봉의 뒷모습을 비추던 매운탕을 먹는 장면과 같은 구도로 촬영되었다. 감독은 밥상에 채소를 올리는 것을 빠뜨리지 않고, 싱싱한 채소의 푸른 빛이 화면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그런데 고기반찬은 있을까? 감독은 생선과 닭의 형태를 온전히 보여 줬던 이전의 밥상과 다르게 아예 고기가 나오는 컷을 빼 버린다. 나는 고기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미자는 봉준호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다. 미자는 도축장에서 옥자와 같은 돼지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왔다. 먼 길 다녀오느라 고생했다며 “좋아하는 닭백숙 해 줄까?”라고 묻는 희봉에게 미자는 안 먹겠다고 (또는 못 먹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미자가 던져 주는 감 몇 개를 먹는 것 외에 옥자가 고기(다른 동물)를 먹는 장면은 없다는 점이다. 슈퍼돼지라는 설정이나 치아의 형태로 보아 잡식동물로 추정되는 옥자가 그 커다란 몸집을 유지하려면 더 많이 먹어야 할 텐데 말이다. (괴물도 사람들을 많이 잡아먹었다.) 이 의문은 봉준호의 어느 인터뷰를 보고 풀렸다. 옥자를 이렇게 키운 비결이 뭐냐고 묻는 죠니의 질문에 희봉이 “산에다 그냥 풀어 놓은 거요.”라고 말한다. 이 장면을 촬영할 때 변희봉이 “뱀도 먹고, 쥐도 먹고, 거미도 먹고, …”라며 옥자가 먹은 것을 나열하는 애드립이 있었는데 감독은 그 장면을 잘라낸 게 너무 아쉽다고 밝혔다. 그 장면을 넣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판단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혹시 그것이 육식이나 채식과 관계가 있지는 않을지 궁금하다. 



연교는 고기를 먹지 않는 봉준호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미자에게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한 봉준호는 자신의 성향을 영화의 등장인물에게 드러내기도 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듯, <살인의 추억>에서 좋은 자리를 마련해 뒀다는 반장의 말에 괜찮다며 구석자리를 달라고 하는 태윤은 봉준호의 성향을 보여 준다. 그리고 <기생충>에서는 연교가 채식을 하고 있는 봉준호의 성향을 담은 인물이다. 나는 몇 장면에서 육류를 고르지 않거나 해산물에 손이 가는 연교의 행동을 확인하고 연교가 봉준호와 같은 페스코-베지테리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연교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올 때, 수행기사인 기택은 식료품이 잔뜩 든 봉투를 안고 있다. 이 봉투 안에 들어 있는 베지칩(veggie chip)과 파스타 등은 채소의 맛을 살린 식료품이다. 연교는 다송이의 생일 파티를 준비할 때 오가닉(organic)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그는 카트에 연어팩을 담고, 손으로 직접 새우를 집어들어 살핀다. 결정적이라고 생각한 건, 푸푸에게 주는 간식을 따로 챙기는 행동이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 푸푸는 연교를 상징하며, 연교의 페르소나이다. 연교는 캠핑을 떠날 때 쮸니와 베리에게는 고기가 들어간 사료를 주지만 푸푸에게는 고기가 들어있지 않은 게맛살(심지어 개 간식용도 아니다.)을 먹일 것을 부탁한다. 영화에서 연교가 고기(육류)를 먹지 않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개를 아끼듯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정말 채식을 지향하기 때문일 수도, 또는 그저 트렌드를 따라가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교는 분명히 한우채끝살이 들어간 짜파구리를 먹었다. 감독은 음식을 깨작거리고 젓가락만 빙빙 돌리던 연교가 짜파구리를 안 먹었다고 발뺌하지 못하게 깨끗하게 빈 그릇을 화면에 크게 담는다. 채식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고, 채식은 여전히 사회에서 유난스럽고 유별난 취급을 받는다. 계속 고기를 먹지 않고 있느냐는 질문에 봉준호는 ‘남들이 없을 때 몰래 먹는다’며 겸연쩍게 웃는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을 때’(그의 표현대로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바쁜데 일일이 고기를 빼 달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도 그냥 고기를 먹는다고 덧붙인다. 채식을 하는 연교가 고기가 들어간 짜파구리를 먹은 것은 봉준호가 말한 두 가지 조건에 모두 들어맞는다. 다송이를 주려고 했던 짜파구리인데 다송이가 먹지 않자 연교는 “짜파구리는 그냥 아줌마 드세요. 아니다, 참. 다송이 아빠가 먹으면 되겠네. 여기 한우도 들었고.”라고 한다. 동익도 생각이 없다고 방에 들어가 버리자 연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짜파구리를 먹는다. 다혜의 투정에서 알 수 있듯 연교는 딸에게는 아예 먹을 거냐고 물어보지도 않는다. (자신이 짜파구리를 먹는 연교의 결정에는 다른 이유도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연교는 일하는 아줌마에게 한우를 주는 게 아깝기도 할 것이고, 박 사장 부부가 딸보다 신경이 쇠약한 어린 아들을 더 챙기는 건 영화 전반에 걸쳐 보이고 있다.) ‘심플한 사모님’이니 심플하게 생각해서, 나는 연교가 정말 오랜만에 고기를 먹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애써 준비한 음식을 남길 수는 없고, 가족들이 아무도 없는 지금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일하는 아줌마는 신분이 다른 ‘없는 사람’이다.) 연교가 먹은 건 고기메뉴가 아니고, 고기를 조금 얹은 짜파구리다. 나는 이 장면을 보다가 몇 년 전 채식을 한다고 하고서 짜장면을 먹는 사진을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연예인이 떠올랐다. 보통 사람들은 한두 번의 실수나 일탈에 용서와 관용을 베풀지만 채식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완벽하지 않은 채식은 위선이다. 봉준호도 채식을 하고 있으니 이런 사회의 시선을 잘 알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는 영화를 통해서라도 완벽하진 않지만 노력하고 있는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 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최근작인 <기생충>에서는 고기보다 과일과 채소가 더 크게, 더 많이 화면을 채운다.


<기생충>을 본 어느 기자가 사회학을 전공한 봉준호의 학력을 거론하며 이 영화를 한국에서 사회혁명을 일으키는 시작으로 봐도 되냐고 묻는다. “오히려 혁명으로부터 거리가 많이 멀어지는 것 같아, 세상이. 혁명의 시대가 지나가고, 뭔가 부서뜨려야 하는 대상이 있어야 되는 것인데 그게 뭔지, 혁명을 통해 깨뜨려야 하는 게 뭔지 파악하기가 힘들고 복잡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예민할 수 있는 질문에 봉준호의 대답이 현명하다고 느껴진다. 무엇을 바꿔야 할지 알 수 없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그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인화된 사진처럼 봉준호는 세상의 변화를 외치는 슬로건과 현수막 앞에 서 왔던 사람이다.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없고, 혁명을 꿈꾸게도 할 수 없다지만 봉준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역량 안에서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그는 영화감독으로서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 등 영화제작의 노동환경과 복지를 챙겨 왔다. 또한 송충이를 던지는 장면에서 송충이가 다치지 않게 바닥에 모포를 깔게 했다는 임순례 감독과 함께 봉준호는 동물보호를 외쳐 온 대표적인 영화감독이다. 개인으로서 동물보호를 실천하는 가장 일상적이고 쉬운 방법은 고기를 덜 먹는 것이고, 영화감독으로서 봉준호는 그런 생각을 자신의 영화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화면을 가득 채웠던 고기가 사라지고 있다. 고기는 다른 것들에 가려지고, 크기가 줄어들고,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다. 동익이 갈비찜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대사로만 처리될 뿐이다. 그 대신 화면에는 과일과 채소가 많아지고 커지고 풍성해졌다. 봉준호의 다음 영화뿐 아니라 앞으로 그의 영화에서 먹는 장면이 어떻게 연출될지 무척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꽃게랑과 게맛살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