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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우주 Mar 18. 2020

꽃게랑과 게맛살

봉준호 감독과의 식사 시간 2

*** [봉준호의 동물들]의 연재 글로 봉준호 영화에 나오는 동물들에 대해서 쓴 글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장편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의 중요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동물이 나오는 장면을 기억하기 쉽지 않기에 영화 장면 일부를 캡처했습니다. ***



우리가 흔히 보는 두 시간짜리 상업영화의 평균 컷수는 1,500컷 정도라고 한다. 액션 장면처럼 컷을 잘게 나눈다면 2,000컷이 훌쩍 넘어간다. (봉준호 영화는 평균 컷수보다 적은 편이다.) 영화 한 편에 이렇게 많은 컷이 있고, 그 한 컷 한 컷마다 공간과 시간이 담겨 있다. 화면은 공간의 영역이다. 관객은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만나기 때문에 감독들은 화면에 잘 보이는 곳부터 구석구석까지 프레임을 알차게 채운다. 편집 단계에서는 주로 시간이 결정된다. 촬영된 컷은 순서대로 배열되고, 각각의 컷은 프레임 단위로 길이가 조정된다. 어느 지점에서 컷을 자르고, 어느 컷끼리 붙여 놓느냐에 따라 영화의 호흡과 리듬이 달라진다.


수천 개의 컷에는 인물, 소품, 배경 등 셀 수 없이 많은 요소가 들어 있다. 그것들을 어디에 어떻게 놓을지, 얼마의 시간동안 보여줄지 고민하는 사람이 영화감독이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동안 이런 요소들을 잘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고, 감독이 의도한 의미나 상징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은 영화에 반복적으로 또는 연달아 등장하는데 비슷한 것들끼리는 연결되고, 다른 것들끼리는 충돌하면서 플롯plot을 이루고, 내러티브를 만들고, 영화만의 시각적 재미를 주기도 한다. 감독들은 이렇게 컷의 구성과 조합과정에서 생기는 ‘유사’와 ‘대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롤휴지를 굴리는 행동이 다른 두 사람에게 반복되고, 그 물건과 행동에서 인물들의 감정을 엿볼 수 있다.


봉준호는 이런 유사와 대비를 단순한 이미지로 명료하게 보여 주는 감독이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윤주는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에 순자(개)에게 먹일 딸기우유를 깜빡했다며 다시 갔다오라는 은실의 말을 듣고 화가 잔뜩 난다. 평소 개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던 윤주는 100m가 넘는 먼 길을 다시 갈 수 없다고 하고 은실은 50m밖에 안 된다고 맞선다. 윤주는 아내에게 100m가 넘는지 내기를 제안하고는 한 걸음씩 걸어가며 거리를 잰다. 그 모습을 본 은실이 그렇게 걸어가서 슈퍼에 다녀오면 되겠다고 놀리자 윤주는 갑자기 100m짜리 롤휴지를 꺼내어 길바닥에 놓고 굴린다. 카메라는 굴러가는 휴지를 뚫어져라 쳐다 보고 있는 윤주를 지나 은실의 얼굴로 향한다. 은실은 집착하는 남편에게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윤주가 순자를 잃어버리고 오자 부부는 크게 싸운다. 쌓여 왔던 윤주의 불만이 폭발하고, 은실도 숨겨 왔던 퇴사 사실을 알린다. 비 내리는 밤, 은실은 혼자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마음을 달래다가 테이블 위에 있던 롤휴지를 굴려 본다. 롤휴지를 굴리는 같은 행동은 다른 사람과 다른 상황에서 반복되며 휴지처럼 풀리지 못하는 두 부부의 갈등과 남편의 입장을 이해해 보려는 은실의 노력을 보여준다.


<옥자>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산골장면에서 미자가 민들레홀씨를 불어 날리고 있고 뒤편 산에서 옥자가 내려오며 등장한다. 옥자는 미자에게 다가와 뭔가 불편한 게 있다는 듯 미자를 툭 건드린다. 눈치를 챈 미자가 옥자의 왼쪽 앞발을 들어보니 발바닥에 밤송이가 박혀 있다. 미자는 아프지 않다고 달래며 밤송이를 빼 준다. 미란도그룹에서 옥자를 몰래 데려가자, 미자는 옥자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서울로 향한다. 트럭으로 이동 중인 옥자를 빼내기 위해 ALF(동물해방전선)가 작전을 실행하지만 미자를 만난 옥자는 흥분해서 마구 달리기 시작한다. 지하상가로 들어간 옥자는 이리저리 날뛰다가 결국 쓰러진다. ALF단원들은 미란도그룹 직원들과 맞서 미자와 옥자를 지켜낸다. 그때 제이는 옥자의 왼쪽 뒷발바닥에 박혀 있는 깨진 도자기 조각을 발견하고 그것을 빼 준다. 미자는 그 모습을 본다. 얼마 전 옥자는 밤송이를 밟고 아파했고, 미자에게는 자신이 그것을 떼어 줬던 기억이 떠올랐을 것이다. 미자는 자신이 한 행동을 똑같이 하고 있는 다른 사람을 보면서 복면을 쓴 정체 모를 외국인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봉준호는 특히 씬scene과 씬을 연결할 때, 이전 씬의 마지막 컷과 다음 씬의 첫 번째 컷에서 유사와 대비의 시각적 효과를 높이는 연출을 즐겨 사용한다. <기생충>의 다송이 생일 파티 준비 씬에서 연교는 기분이 들떠 이것저것을 챙기고 준비한다. 이 씬의 마지막 컷은 잠옷차림의 연교가 파티에서 입을 옷을 고르려고 드레스룸으로 들어오는 장면이다. 가지런히 정리된 여러 벌의 옷은 오직 연교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다. 다음 컷에서 임시보호소로 사용되는 학교 강당(체육관) 장면으로 씬이 바뀐다. 홍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바닥에 쌓여 있는 옷 중에서 입을 만한 옷을 고르고 있다. ‘입을 옷을 고른다’는 같은 행위는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감독은 별다른 대사 없이도 극단적인 두 개의 장면을 붙여서 기택네 가족이 처한 참담한 상황을 강조한다. 감독은 이런 효과를 내기 위해 일부러 특정한 요소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다혜의 첫 번째 과외수업에서 기우가 갑자기 다혜의 손목을 잡아올리며 시험은 기세라는 둥, 맥박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둥 이런저런 말을 잘도 쏟아내는 장면이 있다. 기우는 한참 썰(?)을 풀고 나서야 잡았던 다혜의 손을 내려놓는다. 다혜는 손을 잠시 머뭇거리고서는 검지손가락으로 문제집의 위쪽 귀퉁이를 접는다. 알듯 말듯 아리송한 다혜의 이런 행동은 연교가 과외비를 챙기는 다음 컷을 봐야 그 의미가 확실해진다. 돈을 세는 것은 까다롭게 참관 수업을 요구했던 연교가 기우를 과외 선생님으로 인정했음을 알려 주는 장면이다. 이것과 연결되어 감독이 다혜에게 시킨 손가락으로 종이를 접는 행동은 기우의 갑작스런 스킨십과 일장연설에 다혜의 마음이 완전히 넘어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다.



접시를 따라가는 부감 앵글은 단순하고 명료한 시각적 대비를 이룬다.


이 외에도 봉준호가 사용한 유사와 대비의 연출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모든 장면을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스크롤을 내리다가 지칠 것이다. 그래서 연재글의 주제에 맞게 동물들이 나오는 장면에 대해서 남은 글을 쓰려고 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봉준호의 영화에서 유사와 대비가 돋보이는 동물들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동물이 나오는 횟수가 극히 적기 때문이다. 거의 ‘지나가는 행인 3’ 수준의 엑스트라 역할이거나 영화 전체를 통틀어 기껏 한 컷밖에 나오지 않는 동물을 가지고 여러 장면에서 반복되어야 가능한 연출을 언급할 수는 없다. 그 대신에 고기(동물)를 포함한 음식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 봉준호 영화에는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무슨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있다. 바로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은 신분이다. <설국열차>에서는 고기를 먹을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신분이 다르다. 꼬리칸의 단백질 블록과 엔진 칸의 스테이크는 철저하게 나눠진 계급을 상징한다. 한 사람의 신분과 계급이 바뀔 때 그앞에 놓이는 음식도 달라진다. 윌포드는 유일하게 엔진 칸에 다다른 커티스의 눈앞에 스테이크를 내놓는다. 그것을 먹느냐 마느냐는 그의 선택이지만 꼬리칸 사람들은 평생동안 냄새도 맡지 못할 진귀한 음식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혁명군의 포로가 된 메이슨 총리는 수족관 칸에 오자 커티스 일행에게 초밥을 맛보여 준다. 메이슨 총리 자신도 초밥을 먹으려고 하자 커티스는 그를 저지하며 단백질 블록을 던져 준다. 메이슨 총리는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단백질 블록을 한 입 베어 넘긴다. <마더>에서 도준이 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구치소에 갇히자 마더는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변호사를 찾아간다. 뷔페에서 변호사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며 계속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접시에 올리고 먹는다. “이 집은 해산물이 최고야”라는 그의 말대로 손에 든 접시에는 굴, 초밥, 생선회가 가득 올려져 있다. 마더는 잠깐이라도 앉아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변호사는 그럴 여지를 주지 않는다. 마더는 그의 뒤를 졸졸 따르며 “역시 모르는 게 없으세요.”, “바쁘시니까.”라며 쓸데 없는 변호사의 말에 장단을 맞춰 주느라 바쁘다. 마더의 접시 위에는 방울토마토 두 개만이 자리를 잡지 못한 채 균형을 잃고 굴러다니고 있다. 감독은 두 접시를 같은 앵글로 보여 주며 두 사람의 사회적 계층의 차이와 부탁을 하고 받는 사람의 처지를 대비시킨다.


<기생충>에서 부자와 빈자의 음식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기택네 가족은 달걀프라이와 밑반찬 몇 개로 밥을 먹는다. 한 명, 두 명 취업할 때마다 그들이 먹는 음식은 달라진다. 기사식당에서 외식을 하기도 하고, 전원 취업에 성공한 후에는 고기도 구워 먹는다. 반면 박 사장네 가족은 좀처럼 밥을 먹지 않는다. (연교가 짜파구리를 먹는 게 유일하다. 동익이 갈비찜을 먹는 것은 대사로만 나올 뿐이다.) 그들은 직접 깎거나 씻지 않아도 되는 과일만 먹는다. 이 영화에서는 고기보다 과일이 더 높은 계층을 상징한다. 기사식당에서 기택은 아들에게 많이 먹으라며 고기를 덜어주지만, 박 사장네서 과일을 맛본 기우와 기정은 오렌지와 사과에 더 먼저 손이 간다. (근세는 박 사장에게 기생하고 있는 덕에 바나나를 먹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과자도 다르다. 기택네 가족은 동네슈퍼에서 살 수 있는 짱구, 꽃게랑을 먹지만 연교는 대형마트에서 비건(vegan), 유기농과자를 사 온다. 과자 중에서 꽃게랑은 ‘게’라는 점에서 푸푸가 먹는 ‘일본 게맛살(카니가마보코 かに蒲鉾)’과 비교해 볼 수 있다. 가난한 집 청년과 부잣집 개가 먹는 ‘게’는 다르다. ‘일본 게맛살’은 기택네 가족이 저택의 거실을 차지하고 술파티를 벌일 때 기정이 모르고 먹는 ‘강아지용 육포’와도 연결지을 수 있다. 사실 연교가 푸푸에게 준 ‘일본 게맛살’은 반려동물 간식용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먹는 게맛살이다. 개는 사람이 먹을 것을 먹고, 사람은 개가 먹을 것을 먹고 있다. 감독은 이렇게 뒤죽박죽이 된 음식을 통해 가난한 가족에게 속아 넘어간 순진한 박 사장네 가족과 부자 흉내를 내고 있는 기택네 가족의 상황을 한바탕 소동으로 풍자하고 있다.



음식은 그것을 먹는 인물들의 신분, 계급, 성격, 상태 등을 보여 주는 장치로 활용된다.


음식의 유사와 대비는 인물을 설명하는 데도 활용된다. 기택네 가족이 처음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그들은 모두 국산맥주를 마신다. 그러나 온 가족이 취업에 성공하고 축하파티를 벌일 때는 수입맥주를 마신다. 이때, 충숙만 그전부터 마시던 국산맥주를 그대로 마시고 있다. 충숙의 이런 일관된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는 그의 성격과 상태를 보여 준다. 다른 가족들은 일이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지만(심지어 기택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충숙은 언제나 안정을 유지한다. 충숙은 이름에 ‘기’자가 들어가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가족의 나머지 세 사람과 결이 다르다. 그는 유일하게 위장취업을 하는 과정에서 박사장네 가족들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계획을 세우지도 않고, 다음 계획이 뭐냐고 묻지도 않고,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는 폭주하는 근세에 힘으로 맞서면서도 죽거나 다치거나 숨지도 않는다. 충숙은 가장 건강한 상태로 삶을 살아가며 이 가정을 지키는 실질적 가장이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 <괴물>에서는 축축한 물과 물컹물컹한 괴물이 영화를 보는 내내 찝찝한 느낌이 든다. 이 기분을 더 끌어올리는 음식은 골뱅이다. 괴물과 접촉해서 강제로 입원당한 강두는 금식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어기고 몰래 골뱅이캔을 꺼낸다. 물속에 잠겨 동그랗게 말려 있는 골뱅이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괴물이 떠오른다. 괴물과 맞서 싸우다가 도망치고, 그 징그러운 형태를 보고 끔찍해하고, 자신의 딸까지 납치당한 강두에게 하필 괴물과 비슷하게 보이는 골뱅를 먹으라고 하다니... 누가 그런 행동을 시켰는지 정말 지독할 정도로 얄밉다. 강두는 평소에도 즐겨 먹는 음식이었을 뿐이라고 변명을 하려는 듯 세주와 밥을 먹는 마지막 식사 장면에서 밥상 위에 골뱅이캔을 올려 놓는다. 상표가 써 있는 부분을 화면에 보이지 않게 돌려 놓은 채로 말이다. 어느 영화감독이 자신에게 말한 것처럼, 그 감독은 죽어서 정말 지옥에 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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