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작가 Sep 19. 2023

너의 시간 속으로

곧 남편의 4주기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나에게는 그 시간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남편 없는 삶에 적응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제는 적응하다 못해 남편이 원래 내 삶에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 집에 두 아들과 나, 그리고 반려견 초코까지 이렇게 넷이서만 살아온 듯하다. 남편과 함께했던 삶이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한 적 없는 듯한 느낌. 마치 남편이 내 곁에 있던 시절 속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세계관 속에 존재하는 사람인 것 같다.


약속할게 널 꼭 찾아낼게. 네가 어떤 시간에 있든 어떤 장소에 있든 상관없어. 우린 반드시 만날 거야. 내가 널 찾으러 갈 테니까. 너의 시간 속으로.    


인기리에 방영 중인 넷플릭스 드라마 ‘너의 시간 속으로’에 나오는 대사다. 다른 시간, 다른 세계관 속에 존재하는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가슴 아픈 이별을 하지만, 돌고 돌아 끝내는 만나게 되는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드라마 내내 깔리는 ost ‘네 눈물 모아’, ‘네버 엔딩 스토리’는 과거 언젠 가로 나를 데려다 놓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무언가 눈물샘을 자극했다. 가슴 시린 사랑 끝에 이별을 했을 때의 내가 내 안으로 들어왔던 걸까. 당시 가졌던 감정은 가물가물해졌고, 기억만 조각조각 남았다. 익숙한 멜로디는 과거의 나를 소환했는데, 구체적인 기억이 아닌 어렴풋한 감정만 가슴에 닿아 저릿했다. 확실한 건, 그 대상이 남편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남편아 미안.)

이제는 기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는 혼자만의결혼기념일, 어쨌든 곧 열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있다. 이쯤 되면 남편은 애틋한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험난한 인생길을 함께 헤쳐 나가는 전우애를 나눌 대상이 아닌가! (물론 20주년. 30주년, 40주년에도 애틋한 부부가 있을 거다.)      


남편과 이 세상에서 이별하고 난 후 3주기가 될 때까지는 잊고 지낸 남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살아났었다. 그즈음에 이 드라마를 봤다면, 주인공에 감정 이입되어 남편이 떠나간 세계로, 그 시간 속으로 찾아 떠나는 상상을 해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만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그리움은 결국 슬픔이 되었다. 가슴에 장착된 슬픔이라는 감정은 이 세계에 남아있는 나의 ‘행복’에 침범했다. 그리움은 그저 그리움이기를, 슬픔이 되지 않기를 수없이 되뇌었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건 주문과 시간이라는 약이 그리움도 슬픔도 희미해지도록 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제는 남편과 함께 했던 시절의 나, 이별해서 아파했던 나는 현재의 나와 다른 세계관 속에 존재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느낀 뭉클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설렘을 준 풋풋한 사랑, 가슴이 시릴 만큼 깊었던 사랑은 분명 있다. 시간을 거슬러서라도 찾아가고 싶은 대상은 남편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다른 누군가도 아니다. 지나간 추억이기에, 가슴속 어딘가에 스며든 감정이기에 때로는 이렇게 꺼내어 보고 싶은 게 아닐까.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사랑했던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만나고 싶다. 가슴 아파 눈물 흘리는 지금보다 어린 나의 손을 꼭 잡아주며 지나간 사랑으로, 이별로 인해 슬프고 아프겠지만, 아픔이든 슬픔이든 지나고 나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뭉클할 만큼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고, 그러니 울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다.

이전 05화 나는 솔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