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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작가 Sep 17. 2023

나는 솔로

나는 솔로, 솔로지옥, 환승연애, 하트시그널 등 연애 예능이 인기다. 나 역시 환승연애와 하트시그널을 시즌마다 챙겨보면서 지난 연애를 떠올렸고, 잊고 지낸 그 시절 감정에 젖을 수 있었다. 남녀가 ‘시그널’이 통해 연애를 시작하고, 사랑하고, 이별하기까지의 감정은 결혼 후에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기에, 이십 년 가까이 짜릿하고 달콤하고, 그러다가 쓰라렸던 그 감정을 잊고 지냈다. 물론 아내가, 엄마가 된 후에도 짜릿함이나 달콤함, 쓰라림을 느끼기는 했지만, 연애할 때 느낀 그것들과는 농도나 결이 다르니까. (그 미묘한 감정의 차이를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건 나의 한계다.) 과부가 되어 좋은 점을 굳이 찾자면, 두세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본의 아니게 다시 솔로가 되어 이제 과거에만 머물 거라고 간주했던 연애 감정을 느껴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 연애에 대한 기대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돌싱이 출연자로 등장하는 연애 프로그램도 있다. 기사나 예고편으로 돌싱의 연애 프로그램을 접했을 때 개인적으로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왜 굳이 방송 출연까지 해가면서 짝을 찾으려는 걸까, 특히 자녀가 있는 출연자는 왜 굳이 공개적으로 상대를 찾으려는 걸까? 환승연애나 하트시그널을 보면서는 갖지 않았던 궁금증이었다. 정작 내가 돌싱이면서, ‘돌아온 싱글’의 연애에 보수적이었나 보다.

작년 이맘때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돌싱글즈3를 보게 되었는데, 서서히 감정이입이 되어 매주 본방사수 했었다. 아이가 셋인 한 여자 출연자는 시그널이 통한 상대가 있었지만, 동거 과정을 담는 프로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까 싶어 최종 선택을 포기하고 눈물을 쏟았다. 여자로서 살고 싶어 출연 결정을 했지만, 엄마로서의 삶이 우선이었기에 내린 그녀의 결정에 공감했다.

연애 예능의 인기 요인은 감정이입 내지는 대리만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주 돌싱글즈4에서 한 남자 출연자가 돌싱이 된 이후에 소개팅 앱 세 곳에 가입했지만 결국 ‘짝’을 찾는데 실패했고, 사랑을 찾기 위해 출연 신청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남녀가 서로 시그널이 통해 사랑을 나누는 건 운명이라 생각될 만큼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솔로였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물며 자녀가 있는 돌싱이 ‘짝’을 찾는 건 더욱 쉽지 않을 터이다. 방송 출연까지 해서 사랑을 찾겠다는 사람은 나보다 사랑에 용기나 열정이 많은 사람인 듯하다.




나는 솔로다. 블랙핑크 제니는 몇 년 전, 솔로곡을 통해 “빛이 나는 솔로”를 노래했다. 본의 아니게, 그것도 갑작스럽게 솔로가 된 나는 이 노래에 위로받았다. 단순히 ‘혼자’가 되었음에 위로가 필요했던 건 아니었다. 과부가 되고 나는 진정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어릴 땐 부모님께 의지했고,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의지했지만, 이제야 비로소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의 본질을 찾아 나답게. 그런 의미에서 ‘빛이 나는 솔로’라는 한 구절의 가사는 크게 공감이 됐고, 힘이 됐다.     


만남, 설렘, 감동 뒤엔
이별, 눈물, 후회, 그리움
홀로인 게 좋아, 난 나다워야 하니까
자유로운 바람처럼
구름 위에 별들처럼
멀리 가고 싶어. 밝게 빛나고 싶어.
빛이 나는 솔로

- 제니, solo 중에서 -


20대에 뒤늦은 사춘기를 겪으며 자아를 찾았고,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아를 찾는 과정은 사는 동안 계속되어야 하는 듯하다.     


나는 ‘빛이 나는 솔로’지만, 사랑을 꿈꾼다.

나의 행복에 있어 남녀 간의 사랑이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그것이 주는 달콤한 에너지가 내 행복의 충분조건임은 부정할 수 없다. 훗날 언젠가, 막연한 미래의 사랑을 기대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원래 나는 상대에 맞추는 사랑을 했지만, 이제는 온전한 나로서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다.

나의 상대는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과부, 중년의 나이, 아들이 둘인 내가 누군가를 만나는 건 쉬운 일일까?     


최근에는 소개팅 앱을 통해 ‘짝’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만추,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은 늘 있지만, 그게 쉽지 않으면 소개를 통해 누군가를 만나기도 한다. 나는 소개팅 앱을 통해 누군가를 만났던 세대는 아니다. 주선자가 동행하는 소개팅이나 미팅에 익숙하다.

지난여름, 소개팅 앱에 가입했던 적이 있다. 누군가를 소개받기 위해서는 아니었고, 자료조사 내지는 정보수집의 일환이었다. 소개팅 앱을 소재로 장편소설을 쓴 적이 있다. 공모에는 탈락했지만, 쓰는 동안만큼은 즐거웠다. 프로필 사진 몇 장을 골라 등록하고, 나이는 42세(2022년 기준), 직업은 전업주부라고 입력했다가 고민 끝에 작가라고 등록했다. 생계유지 불가능한 소액의 인세를 받았지만, 작가라고 불리고는 있으니까. 내가 가입했던 소개팅 앱에서는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하트를 보낼 수 있었고, 하트를 받은 상대가 하트를 보내면 대화창이 열렸다. 나는 활동할 생각으로 가입한 건 아니었기에 프로필만 등록해 놓고 유령처럼 하트만 받았다. 몇 번은 호감을 느껴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상대가 있었지만, 끝내 받은 하트에 내 하트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프로필 창에 ‘돌싱, 사유는 사별.’이라는 짤막한 메시지를 적어놓자 나에게 하트를 보내오는 상대는 현저히 줄었다. ‘아들 둘 맘’이라는 메시지를 적으면 하트를 아예 못 받지 않을까 싶다. 나의 객관적인 현실이기에 슬프지는 않다.      


나는 솔로다. 아들 둘을 가진 여자이며, (자칭) 힙한 과부다. 이런 나를 온전한 ‘나’ 자체로 사랑해 줄 누군가를 언젠가는 만나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 남녀 간의 사랑이 내 행복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나는 지금 이대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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